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
조선 숙종 때의 일이다. 이천(利川)의 황계실(黃鷄室)에 임수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성격이 냉혹하고 욕심이 많았다. 어느 날 충주에 사는 임수봉의 매형이 찾아와 며칠 동안 그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끼니때마다 상에 올리는 고깃국이 유별나게 맛이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처남에게 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국인데 이렇게 맛이 있는가?”
“부화되기 직전의 알을 깨뜨려 끓인 국입니다.”
그는 깜짝 놀라며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여보게, 아무리 미물이지만 알 속의 병아리도 분명 살아있는 생명인데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매형도 참 소심하우. 가축들은 잡아먹기 위해서 키우는 것인데, 그까짓 깨어나지도 않은 병아리 몇 마리를 가지고 뭘 그러우.”
임수봉은 오히려 나무라듯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매형은 처남의 냉혹한 태도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참으로 잔인한 사람이구먼. 아직 세상 밖에 나오지 않은 어린 생명을 아무 가책 없이 죽이는 일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네. 자네가 계속 이런일을 하면 자네와 의를 끊겠네.”
매형의 말에 임수봉은 들은 체도 않고 코웃음만 쳤다. 그의 매부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충주로 돌아가서 두 번 다시 처남의 집을 찾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를 곰곰이 뒤돌아보게 한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생명도 유린할 수 있다는 임수봉의 논리는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다. 곳곳에서 남몰래 버려지는 폐수로 죽어가는 생명체들, 파괴되는 자연 환경 등은 모두 인간 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낸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 재앙은 우리가 고스란히 감수해야 될 것이다.
인간은 모든 사물들과 거대한 관계망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 어느 것도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긴밀한 상호 관련 속에서 공생(共生)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적인 삶은 그러한 관계망에 무지할 때가 많다.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즉, 자연을 단순히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고, 인간의 삶과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연을 지배하는 왕이 아니다. 양자는 유기적 관련을 맺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것이 동양적 사고의 기본 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삶은 자기중심주의와 경쟁의 원리에 휘둘리고 있다. 이러한 경쟁의 원리에 지배되는 삶은 생명체의 상호관련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오직 약육강식의 지배 논리에만 집착하여 우주 만물의 오묘한 조화와 통일을 보지 못하고 현실적 이익에만 급급하게 된다.
우리의 이웃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은 모든 사물을 우주적 유기체로 인식할 때 가능하다. 즉 인간, 생물, 무생물들 사이에는 단층이 없이 모두 연속되어 있다는 세계관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물은 제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관련되어 있다는 연속적 세계관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자애
영의정 홍서봉의 어머니 유 씨는 생각이 깊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어느 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하인을 시켜 고기를 사오게 하였다. 그런데 푸줏간에서 사온 고기는 상한 고기였다. 부인은 색이 변하고 냄새가 나는 고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다시 하인을 불렀다.
“푸줏간에 고기가 얼마나 남아 있더냐?”
“아주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부인은 방으로 들어가서 그 동안 모아 놓았던 돈과 패물을 가지고 나왔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푸줏간에 남아 있는 고기를 다 사오도록 하여라.”
“아니, 그 많은 고기를 어디에 쓰시려고요?”
“나중에 알게 될 터이니 어서 다녀오너라.”
하인은 지게를 메고 가서 대부인(大夫人)의 지시대로 남아 있는 고기를 다 사가지고 돌아왔다.
“애썼다. 텃밭 옆에 구덩이를 파고 그 고기를 모두 묻어라.”
하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부인을 바라보았다.
“마님, 이 아까운 고기를 왜 땅에 묻습니까?”
“그 고기는 상했느니라.”
“그런데 왜 사오라고 하셨어요?”
“생각해 보거라. 이 고기를 다른 사람이 먹게 되면 어찌 되겠느냐? 그리고 푸줏간 주인이 고기가 상한 것을 알면 모두 버려야 될 텐데, 그 손해가 매우 클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전부 사서 땅에 묻는것이니라.”
부인의 행동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자애의 표현이다. ‘나’의 존재가 타자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은 부인의 생각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가. 오늘날 극도로 이기적인 삶의 모습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부인의 자세가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일체의 현상은 역동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 인간과 인간, 사람과 자연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고 거대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망에 대한 인식은 존재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삶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한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 한 줄기도, 길가에 무심코 핀 들꽃 한 송이도 나와 무관치 않다. 지금의‘나’는 무수한 다른‘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선인들은 오래 전부터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짐승이나 식물들에게 말 한 마디도 결코 함부로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관계망에 대한 철저한 각성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