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체로 자기의 내면을 응시하지 못하고 바깥을 향해 줄달음칠 때가 많다. 그리하여 항상 만족을 모르고 불평과 원망을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진정한‘나’를 잃고 그저 외물(外物)에 예속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만신창이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부족하나 만족하면 늘 남음이 있고
조선 중기의 유명한 학자 송익필(宋翼弼) 선생은 다음과 같은 한시를 남겼다.
‘君子如何長自足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족하며
小人如何長不足 소인은 어찌하여 늘 족하지 아니한가
不足之足每有餘 부족하나 만족하면 늘 남음이 있고
足而不足常不足 족한데도 부족타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樂在有餘無不足 즐거움이 넉넉함에 있으면 족하지 않음 없지만
憂在不足何時足 근심이 부족함에 있으면 어느 때나 만족할까’
여기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송익필 선생의 지고한 정신의 깊이와 폭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사뭇 부끄럽게 하는 글이다. 추한 욕심의 눈길을‘부족함’에 두고 있으니 인간은 언제나 족함을 모르고 스스로 불행의 구렁 속에서 허우적이게 되는 것이다.
족한데도 부족타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어느 마을에 욕심 많은 양반이 있었다. 그는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양반을 싫어하여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가 좋은 비단옷을 입고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말 뒤에는 소 한 마리가 줄에 묶여 뒤따라갔다.
“저기 거들먹거리며 가는 꼴 보게.”
“야, 저 놈 골탕 좀 먹여 볼까?”
“그거 좋지. 그동안 벼르고 있었는데, 잘 됐다.”
세 사람은 서로 약속을 하고 양반의 뒤를 따라갔다. 그 중 한 사람이 살금살금 다가가서 소의 고삐에 묶인 줄을 끊어 소를 몰고 갔다. 눈치를 채지 못하고 한참을 가던 양반이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라며 말을 세웠다. 양반은 말에서 내려 뒤따라오던 사람을 보고 다그쳐 물었다.
“내 소 못 봤소?”
“나도 이 길을 계속 걸어왔는데, 어떤 사람이 소를 몰고 반대편으로 갑디다. 벌써 십 리는 갔을 거요.”
“허허, 이거 낭패로군.”
“그럼 내가 이 말을 지키고 있을 테니 빨리 따라가 보시오.”
양반은 그 사람 말대로 말을 나무에 매놓고 소를 찾으러 갔다.
양반이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가자 그는 옆에 있는 말을 끌고 재빨리 달아났다.
소를 찾지 못하고 양반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때 있어야 할 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말의 행방은 묘연했다. 양반은 소와 말을 잃고 할 수없이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가 오 리쯤 갔을 때였다. 길가에 있는 작은 늪 앞에서 어떤 사람이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양반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아니, 길바닥에 앉아서 왜 우는 거요?”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울기만 하였다. 양반은 다시 언성을 높여 물었다.
“여보시오. 난 오늘 소와 말을 잃고도 울지 않는데 당신은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울고 있소?”
“댁은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갈 길이나 가시오.”
그러나 양반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그에게 다그쳐 물었다. 그는 마지못하여 우는 까닭을 말하였다.
“내가 보자기에 금덩이를 싸가지고 가다가 잘못하여 이 늪에 빠뜨렸는데, 그게 아까워서 우는 거요.”
“얘기를 들어보니, 사정이 딱하구려.”
양반은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저 늪에 들어가서 금덩이를 찾아줄 테니 그 절반을 나한테 주겠소?”
“그렇게 하지요.”
양반은 좋은 비단옷을 다 벗어놓고 늪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순간 옆에서 울상을 짓고 있던 사람은 비단옷을 움켜쥐고 뛰어 달아났다. 늪 속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양반은 옷과 사람이 없어진 것을 보고 펄펄 뛰었다. 결국 그는 소와 말, 옷까지 모두 잃고 벌거벗은 몸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금덩이라는 외물에 현혹된 부자는 결국 가진 것마저 모두 잃고 알몸이 되었다. 이것이 세상의 자연스런 이치다. 땀 흘려 벌지 않은 것은 자기의 재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와 말, 옷까지 잃어버리고 부자가 당하는 망신은 요즘도 우리 주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일이다. 일확천금을 노린 범죄, 뇌물과 관련된 비리 등은 모두 금덩이에 눈 먼 부자의 어리석은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송익필 선생은 자신의 글에서 ‘천하의 큰 근심은 족함을 알지 못함에 있다.’라고 하였다. 자족을 모르는 사람은 불평과 근심에 사로잡혀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족함과 부족함은 외물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모두 나의 마음과 판단에 따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8월의 땡볕 아래 만물은 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주변을 기웃거리지도, 넘보지도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불볕의 고난을 감내한다. 머지않아 가을은 그들을 풍성한 열매로 축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