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운명을 겪으며 산다. 그 일이 다가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속수무책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기쁜 일을 맞아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지는 일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고 해도 운명을 개척하고 운명의 물길을 바꾸어놓은 일 또한 사람이 한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을 적극 개척하면서 자신의 삶을 노력한 자의 정당한 행운으로 바꾸어 놓는다. 헨젤은 동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운명개척론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을 준다.
시련을 돌아 본래의 행복을 되돌린 남매
옛날에 남매였던 헨젤과 그레텔이 아빠, 엄마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아빠가 새로들인 새엄마는 헨젤과 그레텔을 집에서 내쫓을 궁리만 했다. 하루는 새엄마가 헨젤과 그레텔에게 내일 아침 산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헨젤은 뭔가 이상하다 해서 밤에 몰래 빠져 나와 조약돌을 주웠다.
다음날 아침, 아빠와 새엄마는 헨젤과 그레텔을 데리고 산으로 갔다. 산으로 갈 때 헨젤은 지난 밤 몰래 주워온 조약돌을 하나씩 떨어뜨리며 그 길을 지났다. 새엄마와 아빠는 산에 남매를 버려두고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헨젤은 오는 길에 떨어뜨려 놓았던 조약돌을 이정표 삼아 동생과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무사히 돌아온 헨젤과 그레텔을 데리고 새엄마는 다음날에도 산에 갈 계획을 세웠다. 아침이 되자 새엄마는 헨젤과 그레텔에게 빵을 주었지만 조약돌을 줍지 못한 헨젤은 빵을 반만 먹고 남은 반을 조금씩 잘라 다시 땅에 떨어뜨려 놓았다. 하지만 밤이 되어 아무리 빵조각을 찾았으나 새들이 빵을 다 먹어 버려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숲속을 헤매다가 빵과 과자로 만든 맛있는 집을 보았다. 둘은 그 집에 있는 빵을 먹다가 주인인 마귀할멈 손에 잡혀 헨젤은 감금당하고 그레텔은 궂은일을 했다. 할멈은 헨젤이 살이 찌면 잡아먹겠다고 했다. 그레텔은 오빠를 죽이려는 마귀할멈을 불구멍으로 밀어 넣고 오빠와 함께 그 집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더니 아빠가 헨젤과 그레텔을 정신없이 찾고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새엄마가 떠난 집에서 아빠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절박한 삶 앞에 선 이민자처럼 살아라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들은 원대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할 각오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그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 속에서 책으로 몇 권 써도 부족한 스토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무수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 그들 중 많은 사람은‘한국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머나먼 타국에 와서 굳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민 초기는 대부분 전쟁처럼 매순간 긴장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처절하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적지 않은 고난을 이겨낸 후 그들의 사고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사고, 즉 고난과 역경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다시 태어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성공의 의미를 모르는 것처럼 그들은 국내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람이 되어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개인의 성공시대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 지식과 정보는 넘쳐나고 먹을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절박한 이민자의 사고방식으로 생활한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못 이룰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살 수 있을 것처럼 생활하지 말고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할 때 운명을 개척하는 힘이 생긴다. 헨젤은 어린 나이로 그렇게까지 거시적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내일을 위해 준비하고 용기를 가짐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었다.
열정이 샘솟는 일을 자신의 운명으로 만들어라
‘병신춤’으로 유명한 창무극 분야의 원로 예인인 공옥진 선생은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정읍에서 경찰 일을 하던 남편은 먼저 피난 가고, 태어난 지 사흘 된 딸아이와 경찰 가족이라는 밀고로 인민군에게 붙잡혔다고 한다. 그들이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기에 소리나 한가락 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거기서 선생은‘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불렀는데, 순간 주위가 숨죽은 듯 조용했다고 한다. 소리 한가락 더 하라고 해서‘심청전’도 불렀다. 완장 찬 사람은 그걸 다 듣고 인민군에게 총을 거두라고 하더니, 재주가 아깝다며“우리가 고단할 때 노래나 한두 곡 불러 달라.”고 했다고 한다.
선생은 파묻힐 뻔했던 흙구덩이 앞에서 아기를 다시 품에 안고 나오면서 자신을 구원할 것은‘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신이 죽기 직전 그렇게도 원했던 것이 결국 인생도 살려낼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공옥진 선생은 만들어진 운명 앞에서 초조하고 나약하게 떨지만은 않았다. 죽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자신의 새로운 운명인‘소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구원을 받는모습이감동적이다.“ 살고자 한다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한다면 살 것이다”라는 오래된 말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운명은 내가 모르는 것만이 운명이 아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도 내게 열정이 생겨 공을 들이며 가꾸어가며 내 운명으로 만들기도 한다. 열정이 샘솟는 일을 자신의 운명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결국 성공한 인생이다. 그 일이 지금 하는 일이든 앞으로 다가올 일이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하는 일을 주업이든, 부업이든, 취미든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