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한계를 넘어스스로 리더가 된 홍길동
조선 세종 조, 서울에 사는 홍 정승은 일찍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하나는 이름이 인형으로서 본처 유 씨가 낳은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길동’으로 노비 춘섬이 낳은 아들이었다. 길동은 태어날 때부터 생김새가 비범하고 실로 영웅호걸의 기상인데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백을 깨우치는 영특함까지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자 했으나, 서자의 신분으로 아무리 비범해도 애당초 뜻을 펼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병서와 무술을 익혀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천비 소생이라 가족들의 구박과 학대를 무수히 받았으며, 심지어 길동의 비범함이 장래의 화근이 될까 우려해, 길동을 없애려 모의까지 하였다.
모친에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길동은 충격을 받고 홀연히 방랑의 길을 떠난다. 정처 없이 가다가 우연히 도적굴에 들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스스로 활빈당이라 칭하고, 지혜와 도술로써 팔도 지방 수령들의 불의의 재물을 탈취해 도망하면서, 스스로‘아무날 전곡(錢穀)을 도적한 자는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는 방을 붙여 두었다.
그렇게 탈취한 재물들은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백성의 재물은 추호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는 의적이라며 칭송을 받았지만 조정에서는 길동을 잡아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전국에서 잡혀온 길동이 백여 명이나 되었으나 둔갑술에 능하고 초인적인 도술을 부리는 길동이 잡힐 리 없었다. 조정에서는 홍판서를 시켜 길동을 회유하게 하고 길동의 형 인형도 가세한다.
길동은 서울에 올라와 소원하던 병조판서가 된다. 그러나 곧 병조판서 직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고국을 떠나 남경으로 가다가 경치와 산수의 풍경이 수려한 율도국(琉島國)을 발견한다. 그는 쌀 천석과 삼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율도국으로 가서 이상적인 왕국을 건설하였다.
진정 자기 삶의 주인답게 행동하자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간절하고도 유일할 것 같은 소원도 막상 이루고 나면 곧 또 다른 소원이 생기고, 더 높은 곳에 대한 소망이 간절해지는 만큼 늘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은 좀체 작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는 불만과 불평은 현실에 대한 개선 의지를 높이기보다 스스로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설문조사 결과들을 살펴보면, 현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낮음을 발견할 수 있다. 혹시 당신도 지금 ‘여기가 내 일터가 아니다’하는 생각으로 엉덩이가 들썩이는 사람에 속하지는 않는가. 그러나 그 이전에 나는 내 삶에서 주인의식이 있는가 생각해보자. 환경이나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 삶을 온전히 자기책임으로 가져갈 의지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해보자.
‘홍길동’은 비록 실존인물이 아니라 해도, 불합리한 시대와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킨 실존인물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홍길동 시대의 견고한 신분의 벽이 오늘날에는 또 다른 형태로 우리를 압박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진정한 프로는 결국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주위의 도움이나 학연, 지연의 도움만으로는 프로가 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나 프로의식을 온전히 드러내서‘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로 인정받기도 전에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직장인들은 스스로를‘고용된 머슴’정도의 신세로 전락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나를 머슴으로 깎아 내리는 직장생활은 영원히 즐거울 수도 보람을 느낄 수도 없다.
자신이 곧 기업이요‘대표이사’라고 생각하자. 출근하는 기분도, 업무에 임하는 자세도, 회사를 대하는 태도도 내가 사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에 초점을 맞춰보자. 어떻게 직장생활을 해야 할지 보인다. 평생직장이란‘내가 곧 기업’이라는 혁신적인 사고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대표이사’는 만족하면서도 만족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적지 않다. 대표이사에게도 스트레스는 있다. 아무리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을 갈고 닦아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면 그것을 부작용 없이 잘 풀어내는 길은 쉽지 않다. 우선 힘든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그것을 곧바로 자신의 불행과 연결 짓지 말자. 오늘 하루가 만족스러웠다고 자신을 달래는 연습이 필요하다. 더 나빴을 상황을 연상하며 그만큼 보낸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함이 필요하다. 혁신은 끊임없는 불만족을 통해 만족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만족을 통해 더 큰 만족을 도모하는 일이다. 하지만 습관들이지 않으면 어렵다. 작은 만족도 하늘에서 그저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최선을 다했다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해도 점수를 후하게 주라. 내가 고된 하루였지만 다른 많은 사람이 만족한 하루였다면 더 후한 점수를 준다. 내 하루에 대한 점수 매기기는 내 마음대로다. 그야말로 내가 연습하고 부단히 마음을 갈고 닦아 작은 데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다.
또 자신의 행복지수나 만족지수를 조금은 낮게 잡고 헛된 꿈이나 망상을 버리며 진실한 자신에게 돌아와, 나는“이런 부분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해.”라는 말을 늘 입으로 중얼거려 보라. 웃는 모습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아! 이만하면 그럴듯해.”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만족스러운 부분을 찾아보자. 만족이 자만이 되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면 그 만족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약이 되고 더 큰 행복과 만족을 찾는 데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저 밥벌이나 하게 해달라는 사람에겐 겨우 밥만 먹을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 직장생활을 단순한 밥벌이나 노동이 아닌 최고경영자가 되는 훈련 과정이라는 근사한 동기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적지 않은 불만이 쌓인 직장의 현실도 의미 있는 수련장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