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로 심플 라이프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킨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언젠가는 이 물건을 쓰겠지’라는 생각이 우리 삶을 점점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언젠가 어딘가에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잘 보관해두는 빈 과자 통이나 예쁜 종이봉투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시작하겠다고 방치해둔 영어 회화 교재와 도중에 팽개친 취미용품들.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언젠가’라는 기대를 이제는 미련 없이 버려라. 지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앞으로도 필요 없다.” 다소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만약에, 언젠가, 혹시라도는 없다!’는 생각이 현재의 삶을 좀 더 가볍고 겸허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 혹시라도 할지도 모를 일’에 복잡한 미련을 갖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상쾌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을 간소화하는 첫걸음은 우선 물건에 대한 소유와 집착을 버리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집 안의 물건을 줄이고 나면 ‘내가 무엇을 버릴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꼭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 ‘반드시 신경써야 할 것’과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떠진다. 자잘한 고민거리 자체가 줄어들고, 진정으로 중요한 일들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게다가 물건을 줄이는 일 자체가엄청난 고민과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하므로, 우리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내 삶 속에서 무엇을 덜어내야 더 행복해질까’라는 고민을 치열하게 해볼 수 있다. ‘쟁여놓는다’는 표현 자체에 욕심과 집착이 들어 있다. 아무리 값이 싸도, 아무리 품질이 좋아 보여도, 지금 당장 쓰지 않는 물건을 사서 쟁여두는 것은 돈 낭비일 뿐 아니라 ‘공간의 낭비’다. 물건이 차지하는 만큼 우리가 쓸 수 있는 공간의 여백이 줄어드는 것이다.
“지나치게 많이 소유한 물건이
당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정말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have-item:반드시 필요한 물건)’ 이라는 것이 있을까. 꼭 그 물건을 사야만 인생이 행복해지는 그런 최고의 물건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무엇을 가져도 ‘더 좋은 것, 더 대단한 것, 더 완벽한 것’을 찾아 헤매지 않겠는가. 상품광고의 메시지는 수백 년이 지나도 늘 똑같을 것이다. ‘이건 꼭 사야해!’라는 메시지를 세련되게 담아내는 것. 하지만 한 사람이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는 상품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우리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수많은 상품들에 짓눌려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결핍’을 느끼지 않는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는 상품의 과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이 느낀 불안감을 이렇게 고백한다.
“늘어난 물건에 휘둘려 에너지를 소진했다.
모처럼 사들인 물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늘 자책하기만 했다. 물건이 아무리 많아도 내게 없는 물건만 눈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시샘했다. 너무나 많아져버린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변명만 늘어놓다가 자기혐오에 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는 물건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이 진정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만일 예전의 나처럼 불만투성이에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물건을 줄여보라. 반드시 뭔가가 바뀔 것이다. 유전이나 환경 탓이 아니다. 성격이나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도 아니다. 지나치게 많이 소유한 물건이 당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과도한 소유의 문제점은, 소유가 또 다른 소유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목걸이를 사면 그에 어울리는 옷을 사고 싶고, 옷을 사면 구두를 사고 싶고, 이것저것 사고 나면 둘 곳이 없어 옷장을 사고 싶지만 결국 먼저 사둔 물건들이 집을 온통 점령해버려 ‘더 사 쟁여둘 공간’이 없어지고 만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라고.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기를 시도해보면, ‘지나간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추억이 깃든 물건은 절대로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다면, ‘물건 속에 담긴 추억’을 글로 정리해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두면 된다.
소비의 그물에서 탈출하면
얻을 수 있는 것
<단순함의 즐거움>을 쓴 작가 프렌신 제이는 사람들에게 ‘컨슈머(consumer : 소비자)’가 아닌 ‘민슈머(minsumer :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사람)’가 되자고 이야기한다. 우리를 계속 목마른 소비자로 묶어두고 싶은 사람들은 광고주들, 기업가들, 그리고 정치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사라!’고 권유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윤과 이권을 챙기고, 선거에 당선되고,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잠깐의 충동을 못 이겨 무이자할부로 비싼 물건을, 심지어 비싼 자동차와 집까지 구매한 소비자들은 어떻게 될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열심히 일 한다. 몇 달 뒤면 쓸모없거나 유행에 뒤처질 물건을 구입하느라 초과근무를 한다. 결국 집구석의 쓸모없는 잡동사니로 전락할 물건의 카드 대금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소비부터 먼저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삶, 일단 카드부터 긁고 몇 개월, 많게는 평생을 갚아야 하는 ‘소비의 그물’로부터 탈출함으로써,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함의 즐거움>에서는 미니멀 라이프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수준으로 소비를 최소화하고, 우리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하며, 우리의 소비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하라는 말이다.”
작가 가비 림멜레는 <버리고, 비우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물건은 수북이 쌓여 있으면 ‘가치’를 잃고 만다고. “절판된 책, 고장 난 악기는 제아무리 멋진 추억을 담고 있어도 지금의 내겐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한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 고물일 뿐이다. 정리 정돈은 가치를 잃은 물건에 다시 제 가치를 되찾아 준다는 의미이다.”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버려서 없앤다’는 뜻이 아니라, 가치를 잃어버린 물건에 제 자리를 찾아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자신의 쓸모를 발휘하지 못한 물건들에게 진짜 주인을 찾아주는 일. 그리하여 그 사물과 나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는 일. 나아가 심플라이프는 물건들이 버려지거나 쌓이지 않도록 스스로의 공간을 좀 더 지혜롭게 배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꾸만 쌓여만 가는 물건 때문에 오히려 공허해지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자리를 비움으로써 마음의 쉴 자리를 되찾아가는 것.
심플 라이프는 상품의 소비를 통해 우리 자신의 소중함을 증명하는 끝없는 인정투쟁과 결별하는 것이며, 우리를 신상품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상 속의 실천이다.
진정한 심플 라이프를
향하여
물건이 떠나간 자리 위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좀 더 창조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어 보자.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모으는 수많은 가구나 물건들이 결코 내면의 힘을 키워주지는 못한다고. “온갖 편의를 짜 넣은 주택은 우리가 약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갈 힘을 잃을수록 재화에 의존합니다. 사람들의 건강은 병원에 의존하고 우리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에 의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애석하게도 병원도 학교도 한 나라의 건강이나 지성의 지표가 되지 못합니다.” 아플 때엔 무조건 병원에 의존함으로써 몸의 자연치유력이 약해지고, 교육은 학교에만 맡겨놓음으로써 가정교육과 주체적인 독학의 중요성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우리는 ‘상품’에 의지함으로써 그 상품들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자율성을 잃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 수많은 상품들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들 없이도 우리 자신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심플 라이프란, 삶의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상품에 의존하지 않고, ‘내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들’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하면서, 마음의 독립성을 키워가는 것이다.
소유를 줄이고, 신경 써야 할 물건들의 범위를 줄이면, 그 빈 공간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또 다른 물건이 아닌 ‘새로운 생각을 할 권리’가 아닐까. 심플 라이프를 향한 현대인의 갈망은 결국 물건이나 소유에 휘둘리는 삶이 아닌 내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마음챙김의 몸짓이다.
작가소개 정여울 작가
소통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저서로는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공부할 권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