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람들의 행복, 휘게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을 상징하는 단어 ‘휘게Hygge’ 또한 새로운 행복의 기준을 암시한다. 휘게는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나 경쟁을 중시하는 삶이 아닌, 소박하고 느린 삶, 여백이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휘게는 화려함이 아닌 단순함에서, 빠름이 아닌 느림에서, 사치스러움이 아닌 소박함에서 행복을 느끼는 마음이다.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위즈덤하우스, 2016)의 저자 마이크 비킹은 이렇게 말한다. 비싼 샴페인이나 향기 좋은 굴 요리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이 꼭 휘게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디 멀리 나가지도 않고 잠옷을 입은 채로 편안하게 집에서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 향기로운 차 한 잔 마시면서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며 오후의 여유로움을 느껴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속에서 행복의 기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그것은 바로 ‘휘게’다. 덴마크에 있는 행복연구소에서 일하는 저자 마이크 비킹은 ‘휘게’의 핵심적인 느낌을 이렇게 묘사한다. “휘게는 사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정취나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느낌과 관련이 있다. 집에 머무는 느낌,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 그래서 긴장을 풀어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Hygge Life
휘게 라이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이렇듯 행복이란, 저 멀리 바깥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마음 속에서 ‘기쁘다’고 느끼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그저 내가 좋으니 그만이구나’하는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인 셈이다. 우리는 ‘행복’과 ‘소비’를 연관시키는 오래된 습관으로부터 작별하지 못했다. 어떤 물건을 사야, 어떤 사물을 지니고 있어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또한 어떤 ‘지위’ 와 ‘행복’을 연관시키는 관습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오래된 마음의 습관이야말로 우리를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음의 장애물 아닐까.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 또는 웰빙을 가리키는 ‘휘게’라는 단어는 소유나 지위 같은 것들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충족감이다. 누군가에게 주목받음으로써 행복한 것이 아니라(사실 그것은 행복이라기보다는 우월감이며 타인을 향한 승리감에 기초하는 것이기에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감정이다), 누군가와 소중한 일상을 ‘함께’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 휘게 라이프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 값비싼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박한 저녁식사를 함께 준비하고 담소를 나누며 평등하게 가사를 분담하는 것에서 더욱 일상적인 행복을 느끼는 것이 휘게 라이프의 본질이다. 행복은 누군가가 타인을 향해서 선물하거나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조금씩 천천히 만들어가는 보다 평등하고 공동체적인 즐거움인 것이다.
Art of Hygge
덴마크에서는 누구도 남들의 주목을 받으려 하거나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독차지하지 않는다. 평등은 덴마크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휘게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는 실제로 덴마크 사람들이 휘겔리한 저녁을 준비할 때 구성원 모두가 일을 평등하게 분담한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인 혼자 부엌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보다는 모두가 각자 자기 몫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더욱 휘겔리하다. 편안한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따스하고 친근하다. 또한 허물없고 포근하며 아늑하다. 신체적인 접촉이 없을 뿐이지 따뜻한 포옹과 같다. 이런 때는 누구나 긴장을 풀어 놓은 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휘게의 예술’이라는 표현에서 ‘예술’은 자신의 좁은 세계를 활짝 열어서 타인을 포용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마이크 비킹,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위즈덤하우스, 2016)중에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휘게’에서 새로운 행복의 가능성을 엿본다. 우리가 행복이라 믿었던 것들이 알고 보면 새로운 스트레스를 야기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넓은 집을 사면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을 매일 청소하고 관리하는 수고로움을 생각한다면, 게다가 집값이 떨어질까 늘 걱정해야 한다면, 그것을 과연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젊었을 때는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정작 나이 들었을 때 건강을 잃고 마음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진정한 친구도 없으며 가진 것은 ‘돈’밖에 없다면, 그것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우리 사회가 행복이라 믿었던 것은 어떤 가치나 재화를 ‘독점’ 하는 데에 치중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물음 속에서 휘게는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을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라는 깊은 성찰의 화두를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휘게는 내향적인 사람, 소극적인 사람에게도 활짝 열려 있는 행복의 문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어떤 미국인 출신 여학생이 자신은 미국에서의 삶보다는 덴마크에서의 삶이 훨씬 행복하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내향적인 사람인데요. 그래서 저한테는 휘게가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은 ‘적극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재빠르게, 경쟁적으로, 눈에 확 띄게 보여주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탁월함’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투하지만, 사실 모든 탁월함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닐뿐더러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 적응할 수가 없다.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소극적이고 내향적이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사람들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진정으로 살기 좋은 곳이 아닐까. 승리나 성취감은 짜릿한 쾌감이지만 오래 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평등하게, 아늑하게 삶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따라가는 일은 우리가 바로 지금 여기서 언제나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이다.
더 느리게, 더 소박하게, 더 느슨하게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욕심, 그것은 결과에 대한 집착이다. 일을 하면서 그 과정에 몰입하지 말고 그 결과나 성취에 목을 매다 보면, 일은 그저 힘겨운 노동이 되어버리고 만다. 휴식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일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방법, 그것은 지금 일을 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평등한 기쁨을 추구하고, 누군가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키거나 강요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과정의 즐거움’ 을 배워나가는 것. 나아가 휴가 때만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일 자체에서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마음가짐이 있을 때 ‘휘게’를 향한 첫걸음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어여쁜 북유럽 인테리어 소품을 내 방 속에 빼곡히 들여놓지 않아도,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서 휘게 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다. 행복의 기준점을 ‘먼 훗날 성공한 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꾸밈없는 나’로 잡으면 된다. 행복의 가치를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가 아니라 ‘더 느리게, 더 소박하게, 더 느슨하게’ 스스로를 이완시키는 것에서 찾으면 된다. 우리는 ‘머나먼 훗날’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성공했을 때 느끼는 잠깐의 짜릿함이 아니라, 365일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느릿느릿한 삶의 여유, 그것이 내가 꿈꾸는 행복의 민얼굴이다.
작가소개 정여울 작가
소통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저서로는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공부할 권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