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바다 정원 장사도
‘그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 년 푸른 아래 소리 없이 피었나니…
아, 나의 청춘의 이 피 꽃’
청마 유치환의 시 ‘동백꽃’ 일부이다. 꽃송이째 툭툭 떨어지는 동백꽃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애잔한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핏빛처럼 붉디붉은 치명적인 색 때문일 것이다. 젊음을 잃지 않은 채 동백꽃은 청춘의 정열을 한껏 발산하다가 시들지 않고 절규하는 몸짓으로 길가에 나뒹군다. 그것은 동백꽃의 꽃말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며 외치는 소리 없이 몸부림이다. 동백꽃은 12월에 피기 시작해 봄이 시작되는 3월에 꽃이 떨어진다. 남녘땅 여러 곳에 동백꽃 군락지가 있지만 외딴 섬 장사도는 그중에서 으뜸이다. 통영 한산도에 딸린 섬이지만 통영보다 거제에서 가깝다. 거제 대포항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섬이다. 주변 풍광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2년 전 수많은 언니, 이모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모았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장사도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특히 주인공 천송이(전지현 분)와 도민준(김수현 분)의 키스 장면이 전파를 탄 이후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드라마에서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섬으로 소개되었지만 장사도는 봄에 가장 핫한 곳이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촬영 당일 조용한 분위기 연출을 위해 임시휴장이라는 극단의 조처를 했다고 한다. 이외에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예능프로그램 ‘런닝맨’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장사도, 까멜리아로 거듭나다
장사도는 섬의 모양새가 뱀처럼 길게 생겼다고 해서 ‘진뱅이섬’이라고도 하고, 누에처럼 길다 하여 ‘누에 섬’ 또는 ‘잠사도’라고도 불렸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장사도가 되었다고 한다. 섬은 실제로 길이 1.9km, 폭 400m로 뱀처럼 가늘고 길게 생겼다. 장사도는 1980년대까지 14가구에 80여 명의 주민이 살았다. 하지만 주민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더니 어느 순간부터 거주민이 전혀 없는 무인도가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2012년. 장사도가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Camellia’로 재탄생했다. 거제 외도 보타니아처럼 사유지가 된 탓에 공원 입장료를 내고 섬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딱 2시간 동안만 체류가 허용되는 도도한 섬이다.
장사도에는 10만여 그루의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가 주인이다. 특히 동백나무는 수령이 수백 년을 넘었다. 운이 좋을 때는 제주도와 울릉도에 주로 서식하는 동박새가 동백꽃의 꿀을 따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색조도 서식하고 있는데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동백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해상공원
“잠시 후면 우리 배가 장사도 해상공원에 도착합니다. 음식물이나 배낭은 가져갈 수 없으니 배에 두고 가시기 바랍니다.” 장사도 도착에 앞서 선장의 안내방송이 이어진다. 장사도가 천상의 낙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선장의 안내방송처럼 음식물 반입금지와 채취 활동금지라는 극단의 조치 덕분이다. 장사도를 가꾸기 위한 노력도 남달랐다. 인공정원처럼 사람의 편리에 따라 나무를 이리저리 옮겨 심지 않았다. 오히려 원주민이 다녔던 옛길을 정비하고 연결했다. 온실, 공연장, 카페테리아 등도 빈터를 활용해서 지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그래서 비슷한 조건을 가진 외도 보타니아 해상공원이 아기자기한 인공정원의 정수라면 장사도는 자연미가 살아 있는 바다 정원의 모습이다. 장사도는 입항장과 출항장이 서로 다르다. 짧은 시간에 섬 구석구석을 효율적으로 돌아보려면 배에서 나눠주는 안내지도를 따라 번호순으로 탐방하는 편이 좋다. 배에서 내려서면 인어 동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모습이 왠지 서글프다. 인간이 되고 싶지만 절대 될 수 없는 한계를 깨달은 표정이랄까. 인어 동상을 뒤로하고 중앙광장을 향한다. 해발 108m의 나지막한 섬이지만 제법 숨이 차다. 하지만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탁 트인 전망에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전망이 좋은 만큼 바람도 많지만 바람에 봄기운이 녹아 훈훈하다. 봄은 남쪽에서 온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장사도 하이라이트, 동백 터널 길에서 장사도 교회까지
장사도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별 그대’에서 남녀 주인공이 키스한 동백 터널 길이다. 100여 미터의 좁은 오솔길에 동백나무가 빈틈없이 빽빽하게 심겼는데 하늘을 가릴 정도로 아늑하다. 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드라마 상영 이후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야외공연장에는 열두 점의 ‘머리’ 조각상이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을 법한 여러 문제를 ‘머리’라는 주제로 재밌게 표현했다. 대덕도, 소지도, 좌사리 군도 등 크고 작은 섬들도 조망할 수 있다. 미인도 전망대 못미처 영화세트장 같은 작은 교회당이 나온다. 교회당을 세운 이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2년에 장사도 분교 교사로 부임한 옥미조 선생이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선착장을 만들고 교회를 세웠으며 농토를 개간하고 가축을 길러 주민 소득을 향상시켰다. 이런 활동을 통해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으며 그의 활동상을 담은 <낙도의 메아리>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교회 예배당은 1973년 5월에 완공되었는데 장사도가 공원이 되면서 복원했다. 옥미조 선생은 교회를 짓기 위해 선착장에서 산꼭대기 교회 부지까지 최소한 1천 번 이상 자재를 옮겼다고 한다. 좀 더 긴 시간 동안 섬에서 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계절 중에서 가장 짧은 게 봄이 아니던가.
그러니 동백꽃 길을 따라 걷는 봄 마중 여행도 짧아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게다.
Information
● 찾아가는 길
장사도 유람선(경남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247-8, 문의 055-638-1122).
장사도 유람선터미널(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해안길 16-6, 문의 055-632-4500)
● 숙소
통영 강구안에 자리한 통영 엔쵸비관광호텔(055-642-6000)은 교통이 좋다. 걸어서 동피랑 마을까지 5분, 이순신 공원까지 10분, 남망산 조각공원까지 5분정도 소요된다. 또한 강구안의 야경을 볼 수 있어 통영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 별미
제철 맞는 도다리쑥국은 통영과 거제에서 꼭 먹어봐야할 봄철 별미. 통영 강구안에 있는 대부분 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을 내놓다. 애주가라면 다찌를 찾아보자. 다찌란 통영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음주문화인데 일본어 다치바에서 유래했다. 1인당 2~3만 원씩 하는 술상을 주문하면 술과 안주가 코스요리에 버금갈 정도로 이어진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물보라다찌(055-646-4884)와 론니플래닛에 소개된 벅수실비(055-641-46684)가 유명하다.
● 문의
통영관광안내소 055-650-4680~1, 거제관광안내 055-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