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이 선정한 세계의 놀라운 풍경 31선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미세먼지와 황사. 폐혈관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유해물질을 체외로 배출하려면 수분 섭취가 관건이다. 녹차에 들어있는 풍부한 타닌은 미세먼지와 황사에 포함된 중금속과 납 성분이 체내에 축적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커피보다 카페인 함량이 1/4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요즘 녹차만큼 좋은 음료도 없겠다. 우리나라에서 녹차를 가장 대단위로 생산하는 곳은 전라남도 보성이다. 전국 녹차 생산량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비록 예전보다 생산량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 명성은 여전하다. 보성이 녹차 생산지가 된 것은 1939년 일제강점기부터이다. 이후 1957년 대한다원 창립주 장영섭 씨에 의해서 꽃을 피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보성이 녹차 재배에 좋은 이유는 수분공급이 원활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 덕분이다. 대한다원이 자리한 오선봉에는 580여 만 그루의 차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지금은 ‘국내 유일의 녹차 관광농원’으로 단순한 차 재배지가 아닌, 여행객들이 즐기고 감상하는 정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성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 이상을 달려야 도착한다. 보성에 들어서면 새빨간 장미가 환호하듯 길게 이어지며 반긴다. 긴 운전의 수고로움이 잠시 위안을 받는 순간이다. 하지만 보성의 위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드넓은 녹차 밭을 바라보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초록 애벌레가 종족 대이동을 하듯, 산비탈의 굴곡을 따라 이리저리 꿈틀대는 것 같다. 산 그림자의 음영이 길게 드리워지고 오선지 악보가 리듬을 타듯 흘러간다. 이국적이고 강렬한 비주얼에 눈뜬장님마냥 두 눈을 껌뻑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 미국 CNN이 보성 녹차 밭을 세계의 놀라운 풍경 31선에 선정했다. 잠비아의 빅토리아 폭포,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 전 세계의 뛰어난 경치를 소개하는 중에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이곳이 선정되었다.
초록의 물결, 한 잔의 찻잔에 머물다
녹차 밭은 언제나 푸르지만 5월이 가장 싱그럽다. 대한다원 차밭 주위에는 삼나무가 늠름한 병사들처럼 도열해 서 있다. 차 밭을 조성하면서 방풍림으로 식재한 것인데 이제는 어엿한 거목으로 성장했다.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지나 다원 쉼터까지 가는 길목 역시 예사롭지 않다. 어른 허리통보다 굵은 삼나무가 하늘을 뒤덮었다. 밀폐된 차 안에서 답답했다면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청량한 공기 덕분에 코가 뻥 뚫리는 것 같다. 5월은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는 달이다. 그런 만큼 삼나무 그늘이 고맙다. 매표소에서 중앙전망대까지 곧장 걸어가면 10분만에 올라갈 수 있다. 잠깐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초록 물결뿐이다. 틈틈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탐방객들이 화룡점정처럼 색감을 더한다. 바다 전망대까지는 다시 30여 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들숨과 날숨이 순조롭다. 드디어 탁 트인 전망에 닿았다. 남쪽으로 보성 봇재다원이 보이고 그 뒤로 득량도가 두둥실 떠 있는 보성만이 해무에 둘러싸여 서정미를 더한다. 발아래 휘몰아치는 녹차 밭을 보고 있으니 송연우 시인은 ‘녹차를 마시며’라는 시가 떠오른다. 시인은 우리가 마시는 녹차가 단순한 음료가 아님을 노래했다. 시인에게 녹차는 푸른 산바람이며 햇살이며 별빛 이슬의 향기이다. 정성 들여 덖은 차를 두 손 모아 공손히 받아 마심으로써 차는 미로 같은 혈관을 따라 흐르며 시인의 몸에 푸른 피를 공급해준다. 그때야 비로소 시인에게 갇혀있던 언어가 녹아내렸으리라. 바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숲을 통과하여 반대편으로 나오면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먼발치에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바다까지 볼 수 있어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려오는 길목에 유명 CF를 촬영했던 곳도 있으니 놓치지 말고 챙겨보자.
초록 물결, 언덕 아래 굽이 치며 바다로 흐르다
대한다원에서 영천 저수지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봇재다원이 발길을 붙잡는다. 대한다원이 차밭의 속내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전망대까지 올랐다면 이곳은 눈치 빠른 강아지가 서열을 알아보고 복종하듯 벌러덩 드러누워 배를 보이는 형상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영천 저수지를 향해 경사져 있다. 그 끝은 당연히 남해가 있는 보성만으로 향한다. 끝없는 차밭의 행렬은 거대한 애벌레가 언덕 아래로 내려가 율포해수욕장까지 돌진할 기세다. 초록색의 롤러코스터가 반원의 형태로 레일을 타듯 급한 경사각을 이루며 지나간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향각 아래의 봇재다원 산책로로 향한다. 녹차 언덕을 지그재그로 연결하는 오솔길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위에서 본 풍경과 사뭇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숙련된 정원사의 손길이 거쳐 간 듯 차밭은 정성스럽게 다듬어져 있다. 행여 녹차 향이 날까 코를 킁킁대어 보지만 풀잎 향기만 날뿐이다. 손으로 직접 따서 말리고 불에 덖고 또 말리는 여러 과정을 통해서 진한 녹차 향이 풍겨 오리라. 눈으로 보는 녹차만으로 아쉽다면 녹차 아이스크림, 녹차 빵, 녹차 과자 등을 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8번 도로를 따라 밤고개 삼거리에서 좌회전했다가 직진하면 회해변이 기다린다. 여름 바다보다 봄 바다는 한적하고 여유롭다. 주변에 해수탕, 녹차탕 등 건강에 좋다는 온천탕과 율포 오토캠핑 리조트가 자리한다.
보성을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
18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주암호에 못 미처 서재필기념관이 있다.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면 역사 공부를 겸할 수 있는 곳이니 들러보자. 1864년 1월 7일 보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21살의 나이에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갑신정변의 주역으로 참여했다. 청나라의 무력개입으로 3일 만에 뜻을 접어야 했지만, 당시 조선을 개화시키겠다는 포부만큼은 대단했다. 정변에 실패한 이후 가족은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어렵게 목숨을 건진 선생은 일본을 거쳐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제2의 인생이라 불릴 만하다. 우리나라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과 국제결혼 1호, 미국시민권 1호라는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다시 조선에 돌아온 선생은 배재학당을 중심으로 미국 선교사들과 함께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독립운동에 열정을 쏟았다. 3.1운동 때에는 재미한인 전체 대표회를 개최했었다. 기념관에는 서울에 있는 독립문과 똑같은 독립문에 세워져 있다. 그 뒤로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이 자리한다. 주변 환경이 좋아 산책을 겸해 돌아보기 좋다.
Information
● 찾아가는 길
대한다원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녹차로 763-67(061-852-4540)
www.dhdawon.com
봇재다원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녹차로 745-4(061-853-1117)
www.botjae.com
서재필 기념관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길 8(061-852-2815)
● 별미
벌교 먹거리 하면 꼬막을 바로 떠올릴 정도로 벌교꼬막은 유명하다. 여자만의 청정하고 깊은 갯벌에서 잡아 올린 꼬막은 겨울이 제철이나 보관방법이 발달한 덕에 사계절 먹을 수 있다. 벌교꼬막 정식을 시키면 꼬막찜, 꼬막전, 꼬막무침, 꼬막구이, 꼬막탕수육까지 꼬막으로 한상 가득 나온다. 국일식당 (061-857-0588)과 종가집 꼬막회관 (061-858-1717)이 유명하다.
● 문의
보성군청 문화체육관광과 (061-850-5211~4), 대한다원 (061-852-4540), 봇재다원 (061-85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