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다가 좋은 이유를 아시나요?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바다는 자연스럽게 기억 저편으로 잊힌다. 붐비던 사람도, 끝없는 차량 행렬도, 호시탐탐 주머니를 노리는 바가지요금도 모두 사라진다. 그러니 정말 바다를 느끼고 싶다면 지금이 제철이다. 뙤약볕이 사라진 자리에 따뜻한 가을볕이 내리쬐니 걷기에도 그만이다. 걷기 좋은 가을, 바다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태안 노을길을 찾아보자.
노을길은 백사장항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대하 집산지로서 매년 가을 대하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을 파는 어시장은 펄떡펄떡 뛰는 활어를 닮았다. 분주한 상인들과 찬거리를 마련하려는 주부, 구경나온 관광객들로 항구는 늘 시끌벅적하다. 항구를 벗어나자 깊은 바다의 적막이 흐르지만 방풍림으로 조성한 솔숲이 있어 외롭지 않다. 바다의 깊은 울음은 파도가 되어 너울지고, 바다의 깊은 웃음은 바람이 되어 가슴에 담긴다. 2km 정도를 지나면 삼봉해변에 이른다. 삼봉해변의 다른 이름은 삼봉 사색의 숲이다. 서너 명이 걸어갈 수 있는 길목에 키 큰 소나무들이 도열하듯 서 있다. 일상에 지쳐 피곤한 도시인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이슬이 증발되기 전 아침나절에 찾는다면 더 좋다. 번잡하지도 않고 인기척도 없으니 오롯이 숲과 바다가 내 것이 될 터. 이곳의 곰솔은 일반 소나무보다 잎이 짙은 녹색이다. 솔방울 열매도 소나무 것보다 크다. 곰솔을 사이에 두고 고운 모랫길을 걷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될 것 같다. 삼봉해변은 벗어나기 싫은 숲이다. 잠깐 머물다 가기 아까운 그런 숲 말이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키가 비슷한 곰솔들이 서로 힘을 의지한 채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다.
자연과 공존하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다시 길을 나선다. 탁 트인 바다를 15분 정도 걸어 기지포해변에 닿았다. 걸어가야 하는 백사장 2km 구간을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닐 수 있도록 무장애 데크길로 조성해 놓았다. 약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이 구간의 이름은 ‘천사의 길’이다. 해안사구에는 바람이 할퀴고 간 흔적들이 물결처럼 이어져 있다. 백사장과 숲을 잇는 중간 지점의 해양생물들은 벌써부터 성장을 멈춘 채 닥쳐올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좀 더 자세한 해설을 듣고 싶다면 기지포탐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해설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산책로는 다시 곰솔숲으로 이어진다. 파도 소리와 곰솔향이 어우러져 걷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준다. 이어서 나타난 두여해변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습곡과 단층이 드러났고 풍화작용과 융기를 거치면서 역동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멀리 두에기해변 이정표도 보인다. 이 해변은 노을길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놓은 종합선물세트 같다. 곰솔숲, 모래톱, 자갈밭, 갯바위…. 없는 게 없다. 덕분에 다른 해변과 달리 바위에 자연산 굴이 서식하고 있어 만조에는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어느덧 종착지인 방포해변과 꽃지해변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산길이었다면 무척 힘들었겠지만 숲과 바닷길이어서 걸을만하다. 방포항과 꽃지해변을 연결하는 인도교를 지나자 노을길의 하이라이트 꽃지해변에 다다른다. 12km 대장정의 역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드라마틱한 빛의 공연이 막 시작되었다. 서해안 최고의 일몰로 손꼽히는 꽃지해변의 낙조. 할미, 할아비 바위 사이로 태양이 저물고 있다. 마치 태양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태양을 삼기는 것 같다. 태양은 항상 자신보다 강한 그 힘에 이끌려 하루를 마감하고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삼봉 사색의 숲
휴양림 솔숲이 주는 위로
안면도자연휴양림에는 올곧은 소나무가 430ha의 면적에 울창하게 심겨있다. 이 나무들은 고려 때부터 왕궁을 짓거나 배를 만들 때 재목으로 사용되었고, 무분별한 벌목을 막기 위해 왕실에서 특별 관리했다고 전한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도 이순신 장군이 안면도 소나무를 벌목해서 배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소개될 정도로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보낸 솔숲이다. 이처럼 나라에서 관리하던 소나무가 이제는 현대인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휴양림은 정오보다 아침 시간이나 오후 시간이 더 아름답다. 소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빛의 굴절 때문이다. 거친 소나무 껍질 사이로 묻어나는 솔향 역시 정신을 맑게 해준다. 숲에는 평상과 나무의자, 나무침대가 여럿 놓여 있어 반나절 충분히 쉬어가도 좋다. 보도블록을 깐 길을 따라 걸어가면 산림전시관이 나온다. 숲과 나무가 주는 다양한 혜택을 일목묘연하게 설명해 놓았다. 숲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면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숲 속의 집 18동, 휴양관 1동, 저렴한 것은 1박에 2만6천 원부터 시작한다. 솔숲을 따라 연결된 산책로는 총연장 3.5km에 달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전망대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한눈에 조망될 정도로 주위가 탁 트였다. 휴양림 길 건너에 자리한 수목원도 잊지 말고 챙겨봐야 할 곳이다. 휴양림이 자연 친화적인 솔숲이라면 수목원은 아기자기한 정원이 있어 매력적이다. 한국전통정원을 비롯한 각종 테마정원이 있어 계절마다 다른 꽃들을 피우고 다른 색을 선보인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국화를 시작으로 투구를 닮은 투구꽃, 땅귀개, 자주쓴풀, 분꽃 등 가을이 제철인 꽃들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한다.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백두산에 서식하는 만병초 등 이색식물도 볼 수 있다.
최고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태안 ‘주말 미식회’
태안은 풍요로운 땅이다. 사시사철 싱싱한 해산물이 넘치고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어린아이부터 몸보신을 고민하는 어르신까지 태안은 모두 만족시킨다.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유별나게 밥맛이 좋다. 태안에서 생산한 ‘갯바람 아래쌀’로 지어서 그렇단다. 갯벌에 특히 많이 함유된 마그네슘과 각종 미네랄이 밥맛을 좋게 한다고 한다. 차지고 윤기가 반지르르 한 것이 특징이다. 태안의 꽃게장은 전국 최고다. 크기만 놓고 봐도 헤비급에 속한다. 짜지 않으면서 감칠맛과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게 눈 감추듯 밥그릇을 비우게 된다. 게, 새우가 통째로 들어가서 국물 맛을 내고 시원한 통배추가 개운한 맛을 더한 게국지도 지역별미다. 국물 맛이 충분히 우러나올 수 있도록 오래 끓이는 게 포인트다. 낙지와 박을 이용한 태안의 토속 음식인 박속밀국낙지도 좋다. 칼칼하고 시원한 맛 때문에 주당들에게 인기다. 가을까지 제철이라고 하니 이때가 마지막이다. 가을에는 역시 자연산 왕새우, 대하가 좋다. 9월부터 10월까지 제철이다. 백사장항에서 대하축제도 열린다.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해 식감이 좋다. 수컷보다 큼직한 암컷이 더 맛있다. 간장게장과 게국지는 딴뚝통나무식당(041-673-3340), 박속밀국낙지는 원풍식당(041-672-5057)이 맛있다.
Information
● 버스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태안까지 고속버스 운행 (첫차07:10, 막차20:10, 11회 운행)
안면도(꽃지해변, 안면도자연휴양림)방면 : 안면도터미널-영목(첫차06:20, 막차19:30, 21회 운행)
안면터미널-백사(첫차 08:00, 막차18:30, 13회 운행)
남면(몽산포, 삼봉해변, 백사장항)방면 : 태안터미널-남면, 안면 (첫차 06:15, 막차 20:00, 43회 운행)
문의
태안여객 041-675-6672
● 자가용 내비게이션 검색어
백사장항(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2200),
삼봉해수욕장(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꽃지해수욕장(태안군 안면읍 꽃지해안로 400),
기지포해수욕장(태안군 안면읍 해안관광로 745-19),
안면도자연휴양림(태안군 안면읍 안면대로 3195-6)
문의
안면도분소 041-673-1066
태안해안사무소 041-672-9737
●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