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다 겪은 150년 재래시장
“80년대에는 여기를 ‘도깨비 터’라고 불렀어요.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여기서는 다 큰 돈 벌어갔으니까요.”
흙 밭 위에 파라솔로 지붕을 만들어 장사하던 8~90년대 군포역전시장 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근처 공단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월급날이면 고기며, 과일이며 오랜만에 푸짐한 저녁상을 위해 찬거리를 사가려는 사람들로 시장이 바글바글했다. 근처 금정, 대야미에 사는 사람들까지 다 군포시장으로 왔다. 그때가 군포역전시장의 두 번째 전성기였다.
군포시장의 첫 번째 전성기는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포(軍浦)’라는 이름도 사실 과거 구군포 사거리와 안양천 사이에 있었던 군포장(軍浦場)에서 유래했는데, 1929년 안양천이 범람하면서 군포장이 현재의 군포역 앞쪽으로 옮겨졌고, 군포장 부근으로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 역사가 생기자 역사 이름을 ‘군포장역’이라고 했다. 역이름을 시장에서 따왔을 정도니 당시 군포장의 규모나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군포장은 충청도까지 알려져 충청도와 인근 안양, 수원 등의 모든 장돌뱅이들과 장꾼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군포로 낙향했던 소설가 이무영이 1938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군포장 깍두기>도 그가 10여 년 동안 군포에 거주하면서 겪었던 체험기를 집필한 작품이다.
군포역전시장에 세 번째 변화가 시작된 시기는 바로 지난 2008년이었다. 2005년 전통재래시장으로 정식 인증을 받은 후, 2008년에 시장 현대화 사업이 이루어졌다. 아스팔트로 바닥을 깔고, 파라솔로 가렸던 하늘을 거대한 지붕으로 막아 아케이드를 만들었다. 각 상점의 간판도 깔끔한 원형 모양으로 통일하고 그 아래에는 판매 물품의 특징을 아기자기하게 그려 넣은 일러스트 간판도 달아놓아 친근감을 더했다. 개장 이래 백여 년만의 새 단장하여 시장 분위기도 새로워졌다.
군포역전시장 info
찾아가는 길 군포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시장 입구로 이어짐
운영시간 7:00~22:00 (점포마다 개·폐점 시간이 조금씩 다름)
주차 군포역 앞 주차장 이용,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30분 무료
카드 90% 이상 점포 카드 사용 가능
시장 주변 가 볼 만한 곳 철쭉동산, 수리산, 초막골
마트에는 없고,
군포시장에는 있는 바로 그것
현재 군포역전시장에는 100여 미터 정도 되는 짧은 직선거리 양쪽으로 60여 개 상점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시장 규모는 이리 작지만, 없는 것 빼고 있을 건 다 있다. 야채가게와 정육점, 구수한 냄새가 하염없이 풍겨나는 방앗간과 동네 어르신들의 옷과 신발을 책임지는 명동의류, 시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옛날식 장터치킨과 맛깔 나는 밑반찬이 다양한 반찬가게, 입이 심심할 때 찾게 되는 건어물, 홍삼과 인삼 등의 건강식품, 그리고 저렴한 김치전에 한 장에 막걸리 한 장 걸칠 수 있는 시장 파전집까지 다채롭다. 많았던 주변의 공단이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빠져나가고, 신식 마트가 생기면서 과거 군포장 전성기의 영광은 빛을 바랬지만 여전히 시장의 매력을 찾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가게를 찾아오는 70% 이상의 사람들은 단골이에요. 적게는 2~3년 많게는 20년 이상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사람들은 멀리 화성, 칠곡, 안산에서도 오세요.” 이유는 시장이 ‘마트에 없는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찾아오는 단골처럼 대부분 20년 이상 한 자리에 오래 있었던 가게들은 마트에서 파는 농산물 생산자의 사진보다 더 큰 신뢰감을 준다. 원산지명에 불필요한 과장이나 거짓은 걷어내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손맛과 정성으로 승부하는 것. “시장은 입소문이에요. 시장을 찾는 아줌마의 영향력이 대단하거든요. 한 사람이 이 집 괜찮다 하면 또 다른 손님을 끌어오고, 그렇게 우리 물건이 맛있고 좋으면, 오래된 단골로 굳혀지는 거니까요.” 군포역전시장이 가장 바쁜 시기는 바로 구정과 추석 명절 때다. 슈퍼나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운 제사음식을 찾으러 오는 어르신들은 조상을 모시는 귀한 날에는 꼭 시장을 찾는다. “무엇보다 시장은 덤 문화가 있죠. 손해 보더라도 하나라도 더 얹어주고, 대신 사람을 얻는 거예요. 시장 상인들의 마음이 다 그래요.”
근처 공단과 회사의 퇴근 시간인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가 상인들이 흔히 말하는 군포역시장의 ‘장시간’이다. 군포역전시장이 다른 곳과 다른 특이한 풍경은 시장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50% 이상이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외국인 많다는 것이다. 근처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나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들이 많아 외국인, 다문화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 덕분에 베트남과 중국 식료품점이 시장 안에 서너 곳이나 있고, 시장과 붙어 있는 골목 여기저기에 현지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점도 많다.
여긴 꼭 가봐야 돼
군포역전시장 추천 가게
기름 한 방울까지 깔끔하게,
순창방앗간
군포역전시장에서 가장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방앗간 집이다. 들기름, 참기름 등 모든 기름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소하고 깔끔하게 짜주는 덕분에 고정 손님들이 많아졌다. 정확한 원산지 표시와 맛깔 나는 기름을 기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손과 정성으로 만든 우리음식,
즉석손두부
20년째 이곳에서 갓 만든 고소한 손두부를 매일 같이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밖에도 콩국물과 콩비지,재래식 된장과 고추장, 직접 만든 동지 찹쌀 옹심이와 찹쌀가루 등 구수한 음식이 그리운 날 먹으면 좋을 모든 것들이 모여 있다.
순대가 끝내주는,
보통집
한눈에 봐도 인심 좋은 80세 김금주 할머니 사장님이 운영하는 34년 된 순대국집. 단돈 5천 원이면 베테랑 할머니가 푹 끓여 만드는 순대국 한 그릇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술국과 수육, 볶음 순대와 곱창까지 있으니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군포시장과 함께 하는 우리동네 프로젝트
군포역전시장이 일 년 중 가장 활기를 띄는 시기는 군포 철쭉동산에 붉은 철쭉이 천지를 덮는 4월 말 즈음이다. 그때는 시장 입구에 고운 철쭉이 가득하고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품바를 비롯해 판소리 등의 각종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 그리고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야시장이 열린다. 야시장은 옛 주막을 재현해 시장상인들과 전문 배우들이 개화기 시절의 복식을 입고, 분장을 한 뒤 군포철쭉 주막 세트장을 제작해 정겨운 그 시절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야시장에는 군포역장시장에서 내로라하는 상점들이 참여하는데 잔치국수, 파전, 번데기, 인사튀김, 홍어무침, 조개탕, 족발과 홍어, 닭똥집, 순대국 등 각 상점들은 주점의 인기 메뉴들을 들고 나와 시민들의 입맛은 물론 흥겨운 분위기까지 돋아준다.
철쭉 축제 이후에도 군포역장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속 군포역전장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자주 열린다. 당시 성행했던 가축시장이나 야바위, 달고나, 엿장수, 구두닦이, 아이스케키 장사 등을 체험해보거나 시장상인 코스튬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재미난 행사들이 다양하게 개최되어 어르신은 물론 어린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들, 이색 데이트를 찾고 있는 커플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명절 시즌에는 군포역전시장에서 상품을 구입한 영수증을 가져오면 룰렛을 돌려 온누리 상품권을 지급하는 룰렛 추첨 행사와 다문화 가족들이 참여하는 K-POP 공연, 즉석 장기자랑 등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즐거운 공연도 볼 수 있다. 장도 보고 덤으로 기분 좋은 선물도 받아갈 수 있으니, 날 좋은 봄에는 군포역전장으로 마실 한 번 나가보면 어떨까.
Mini Interview
정선순(군포역전시장상인회 회장, 고려인삼사)
군포역전시장에서 1984년부터 고려인삼사를 운영하면서 벌써 이 시장에 30년 넘게 있었어요. 규모는 작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이 30~40년 이상 장사를 해온 아주 오래된 시장이죠. 그래서 그런지 상인들이 가족적이고, 그런 친근한 분위기가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요. 오래된 상인들이 지금까지 가게를 운영해오는 것은 자부심 때문입니다. 그걸 믿고, 계속 찾아와주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가게를 이어받는 자식들과 젊은 사장들도 생기고 있어요. 150년을 넘어 군포역전을 지키는 작지만 단단한 시장으로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키는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