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쉬멍 걷는 제주올레
제주의 봄 날씨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었다. 비가 오다 그치고 다시 밝은 햇빛이 비치기를 반복했다. 제주공항에서 600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다. 차창 밖에 보이는 노란 유채꽃 무리가 제주의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1시간 넘게 달려 서귀포 시내에 도착했다. 시장을 찾아가는 길은 여유로웠다.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다. 길을 건너는 사람은 자동차를 보고도 좀처럼 뛰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차들도 알아서 천천히 운전해 주었다. 자동차가 번잡한 서울의 풍경과 분명 다르다. 느리게 걷는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전국적인 걷기 열풍을 일으켰던 제주 올레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올레’란 말은 원래 ‘큰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2010년 중소기업청의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대상자를 선정한 이후로 서귀포매일시장 이름에 ‘올레’가 들어갔다. ‘매일시장’은 5일장이 아니라 매일 장이 열린다는 의미다. 올레 걷기에 관심이 있다면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쓴 책 《제주올레여행》을 읽어보길 권한다. 시장 안에 있는 ‘제주올레안내센터’에 들려 올레 정보도 얻고 수첩이나 마스코트를 사도 좋겠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 info
찾아가는 길
제주공항에서 600번 탑승 후 서귀포 뉴경남호텔 하차. 도보 15분
운영시간 07:00 ~ 21:00
주차 부시장 입구 공영주차장. 30분 무료, 15분마다 300원
문의 서귀포매일올레시장상가조합 064-762-2925
시장 주변 관광지 이중섭 미술관, 천지연폭포, 올레길
한국관광의 별이 되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상인회가 아니라 조합으로 운영된다. 상가조합은 상당히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있다. 덕분에 시장 관리가 매우 잘 된다. 첫째 원산지 표시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방앗간에서 참깨를 산다면 ‘제주산’, ‘중국산’으로 분명히 구분해 놓은 참깨 중에 비교하며 골라 살 수 있다. 말린 고등어를 보며 제주산이냐고 물었더니 노르웨이산이라고 말해 주었다. 제주 고등어는 적당히 기름기가 도는 9~11월에 잡은 것이 맛있다고 한다. 둘째 싱싱한 물건들만 판다. 자체 감사반을 운영해 싱싱하지 못한 상품은 폐기하도록 조치한다. 이를 세 번 어길 시에는 벌칙으로 상점 앞에 판매대를 내놓지 못하는 등의 제재가 뒤따른다. 그래서인지 채소들의 신선도가 무척 좋았다. 제주 집들은 작은 텃밭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제주말로 ‘우영팟’, 여기서 나는 채소는 ‘송키’라고 한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선 신선한 ‘우영팟 송키’를 살 수 있다. 셋째 소방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쓴다. 소방도로를 잘 확보해 놓고 정기적으로 소방훈련도 한다. 그러면서도 원래 있던 노점을 내쫓지 않았다. “30~40년 장사한 사람들인데 한 사람도 내쫓지 않았습니다. 같이 가야죠. 노점들에겐 관리비로 월 5만 원씩 받고 있는데 70대 이상인 분들은 무료입니다.” 상가조합 최용민 이사장의 말이다. 전국 최초로 설치한 아케이드 지붕은 불이 나면 자동으로 열린다. 여름철에 환기를 위해서 개폐하기도 한다. 넷째 주차 문제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시장 안길은 일부 구간 한정된 시간 외에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된다. 주차장은 500대 동시 주차가 가능하며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오후 시간대에는 주차관리인력을 더 많이 투입해 차량 소통이 원활하도록 돕는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의 운영 방식은 다른 시장들의 모범 사례가 되었다. 지난해에만 67개 시장이 벤치마킹을 했고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2016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는 영예도 얻었다.
싱싱한 당일바리 생선 팔아요
시장 안쪽 사거리에 노란 플라스틱 박스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 가게가 있다. 안에는 큼직큼직하게 쪼개놓은 얼음이 채워져 있다. 그 위로 붉은빛 생선들이 가득하다. 큰놈은 큰놈 끼리, 작은놈은 작은놈 끼리 모아 놓았다. 입을 벌린 녀석도 있고 꽉 다문 녀석도 있다. 제주도 특산물인 옥돔이다. 제주도에선 옥돔만 생선의 지위를 누린다. 다른 물고기들은 이름을 부를 뿐 생선이라 하지 않는다. 시장 구경을 다니다 보면 유난히 손님이 많은 가게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 주민이 많다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옥돔을 파는 ‘함평수산’도 그렇게 사람들이 줄 서는 가게다. 안에는 세 사람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체구가 건장한 젊은 남자는 도마 위에 옥돔을 올려놓고 비늘을 벗겼다. 분홍 모자를 쓴 젊은 여자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는 배를 갈라 깨끗이 손질했다. 이곳에서 파는 옥돔은 ‘당일바리’다. 당일바리란 당일 잡은 생선을 뜻한다. 매일 새벽에 고기를 잡는다. 배가 들어오면 장사를 시작하고 다 팔리면 마친다. 여름 금어기 1달과 날씨가 안 좋은 날을 제외하곤 늘 신선한 당일바리 옥돔을 살 수 있다. 그날 잡은 옥돔은 대부분 그날 다 팔린다. 단골손님이 주인 아주망(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언니 자잘한 거 없수꽈?” “다 나갔어.” 옥돔은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kg당 3,4,5만 원으로 나뉜다. 주인은 손님이 원하는 옥돔을 고르면 바로 저울에 달아 가격을 알려준다. “나 이거 1kg만 줘.” “3만 5천 원입니다. 1kg를 정확히 맞출 수는 없어요.” 옥돔은 미역국을 끓여 먹어도 좋고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워 먹어도 맛있다. 옥돔을 구입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있다. 옥돔과 비슷하게 생긴 중국산 옥돔어도 있다는 사실이다. 진짜 옥돔 구별법을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진짜 옥돔은 눈 옆에 흰색 삼각형 모양의 무늬가 있다. 몸통 중앙에는 노란색 세로줄 무늬가 보이고 꼬리 지느러미에도 노란 줄무늬가 선명하다. 특히 말린 옥돔을 구입할 때는 꼼꼼히 살펴보는 게 좋다. 단, 함평수산이라면 그런 걱정은 전혀 필요 없다. 이곳뿐 아니라 많은 수산물 가게에선 그날 잡은 당일바리 해산물을 판다. 그래서 갈치나 고등어도 회로 먹을 수 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맛집이 많다
시장 안길을 따라 생태수로가 있다. 마치 공원 같은 분위기도 나고 여름에는 아케이드 내부 온도를 낮춰주는 역할도 한다. 수로 옆에는 긴 벤치가 놓여 있다. 사람들은 벤치에 삼삼오오 앉아 시장 안에서 산 음식을 먹는다. 벤치에 앉아 뭐부터 맛볼지 고민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우도 돼지네 땅콩 만두’다. 솥 두 개에서 풍겨오는 만두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만두를 주문하면 3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고기만두는 흰색 종이, 김치만두는 갈색 종이에 담아 준다. 만두가 두툼한 땅콩 모양이다. 100% 제주산 생고기를 넣어 만드는데 양파가 아삭하게 씹힌다. 특허받은 만두다. 땅콩 아이스크림도 함께 판다.
흑돼지 꼬치구이는 기다리는 줄이 길다. ‘옆 가게에서 민원이 들어오니 일행 중 한 사람만 줄 서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흑돼지를 꼬치에 끼워 꾹꾹 눌러가며 구운 뒤 그릇에 담아 가쓰오부시와 소스를 뿌려 준다. 소스의 매운 정도를 선택할 수 있다. 흑돼지와 파인애플, 떡의 조화가 좋았다.
‘귤하르방’ 빵은 감귤 커스터드를 넣어 만드는데 맛도 좋지만 귀엽고 앙증맞은 모양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먹기 아까울 정도다. 물을 넣지 않고 100% 착즙해 만든 주스도 함께 팔고 있다. 역시 하르방 모양의 병이 귀엽다. 어벤저스 주인공들로 채색해 전시해 놓은 주스병도 눈길을 끈다. 우정회센터에서 파는 꽁치김밥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김밥 안에 구운 꽁치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다. 꽁치 대가리와 꼬리는 김밥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 소금간이 적당히 되어 있다. 통닭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이 몰리면 바로 살 수 없으므로 한 시간 정도 전에 가서 미리 대기표를 받아두는 게 좋다. 언니네 분식에선 ‘모닥치기’를 판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내용물은 익숙하다. 김치전, 김밥, 군만두, 어묵, 떡볶이를 한 접시에 담아 내주는 것을 모닥치기라고 한다.
40년 전통 ‘할머니떡집’에서 만든 오메기떡은 달콤하고 쫄깃하다. 오메기떡이란 차조, 쑥, 찹쌀 등을 반죽한 뒤 속에 팥앙금을 넣어 만든 떡이다. 떡 바깥쪽에는 견과류나 팥고물, 흑임자 등을 묻힌다. 떡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냉동보관하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 제주말로 ‘아강발’이라 부르는 미니족도 별미다. 한라산 소주와 함께 먹으면 좋다.
마침 찾아간 날 ‘서귀포 봄맞이 축제’가 열렸다. 걸궁패가 시장 입구를 가로지르며 길놀이를 시작했다. 걸궁패의 신나는 장단에 몸을 맡기며 따라가니 이중섭 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선 매주 토요일마다 예술가들이 여는 ‘서귀포예술시장’이 열린다. 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구경하고 살 수 있다. 미술관 앞마당에 도착하니 돗국과 제주산 돼지고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배가 부른 상태인데도 무척 맛있다. 제주 음식 맛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제 제주 올레를 걸을 차례다. 서귀포 바다를 따라 놀멍 쉬멍 걷는 길. 제주 올레에서 간세다리가 되어보자.
Mini Interview
최용민 | 서귀포매일올레시장상가조합 이사장
시장에서 장사한 지 33년째. 풍년농산물직판장 대표이며 5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우리 시장은 노점을 포함해 380개 점포가 있어요. 그중 빈 점포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그만큼 장사가 잘되기 때문이죠. 지난해 제주경제대상 수상의 영광도 얻었습니다. 우리 조합은 단합이 잘 되고 자체 자정 노력이 많아요. 여행객들의 쉼터가 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