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나만의 피서
서우는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다. 뉴질랜드에 잠시 살고 있던 어느 여름날 밤, 꿈에 그리던 별똥별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별똥별은 사람이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거야. 하늘에 사람들이 있을 자리가 없는데, 별이 떨어지면서 자리를 만들어주는 거지.'
어느 시인이나 나잇살 먹은 자가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웃어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던진 내 딸 서우는 열 살 먹은 아이였으니, 도대체 이 아이가 상상력도 이만저만한 상상력으로는 불가능한 우주관을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는지 지금도 수수께끼다. 약간 얼이 빠져버린 나는 아이가 명쾌하게 규정해 버린 저 하늘의 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 자리바꿈 없이 어떻게 삶이 가능할 것인가. 서우는 일찌감치 삶과 죽음, 머뭄과 이동의 미학을 깨달았기에 지금도 여유만만하게 십 년째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휴가.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말 그대로 세상 까맣게 잊고 놀다가 돌아오는 행위다. 해마다 7, 8월이면 대한민국의 산과 들과 바다는 사람들로 뒤덮인다. 산과 바다가 그리웠던 사람들이 모조리 이동하는 것이다. 50년 전 낡은 흑백사진 속에서도 똑같다. 왜 일 년 중에 이동하기 가장 힘든 두 달 동안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계절에도 여행은 참으로 재미나다. 삶의 터전을 잠시 떠나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그래서 삶에서 얻지 못한 여유를 얻고 대신에 삶의 먼지를 털어내고 돌아오기─이 계절, 사람들은 그런 환상을 꿈꾸며 휴가철을 기다린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여행가였다. 다행하게도 내 업(業)이 여행기자라, 꿈은 이뤄지는 중이다. 통계에 따르면 세상 사람 가운데 열의 여덟은 그저 꿈을 꾸며 살다 죽는다고 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전화가 없고 인터넷이 없고 그래서 이메일이나 화상채팅 대신에 편지를 주고받던, 그 '아득한' 옛날 여행은 참으로 행복하였다. 사람들은 모나미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지를 아름답게 장식한 편지봉투에 담았다. 그것도 아쉬워 자기 몸의 일부인 침까지 우표에 묻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곤 했다. 내 사랑, 어제 별똥별이 떨어졌어요 … 당신이 보고 싶어요 … 때로는 미리 보낸 기별보다 자기가 먼저 사랑에게 돌아가 함께 편지를 읽는 일도 있었으니, 참으로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세상 변하는 속도가 빛보다 빨라진 이 시대, 그런 낭만과 여유가 그립다.
올 여름, 배낭 속에 우표 한 장과 손으로 만든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넣어보면 어떨까. 내 생각에 7월과 8월은 여행하기 꽤 적당한 달이다. 그런데 비슷하게 좋은 달로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9월, 10월, 11월과 12월 등도 있다. 직장 선배들한테 순위에서 밀려 여름을 놓쳤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사람들은 일생에 오직 한번 별똥별과 자리를 바꾸며 여행을 떠난다. 그 마지막 여행을 기다리며 이 생, 즐겁게 살고 즐겁게 여행을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