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맞선
10년 전쯤인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고향 친지분의 주선으로 한 여자를 소개받았습니다. 하지만 소개팅이 아닌 맞선이었죠. 저에겐 첫 맞선이었답니다. 주말을 이용한 만남은 친지분의 배려로 서로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탐색이 가능하게끔 이틀에 걸쳐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온 그녀는 첫눈에 반할 정도로 제 이상형에 가까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모든 주변 조건이 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화려했습니다. 집안, 직장, 주변 환경, 활발한 성격 등….
그에 반해 저는 여러 차례 '언론고시'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본 직후라 패배감에 사로잡혀 현실 도피 차원에서 마지못해 들어간 직장, 평범한 중산층 집안, 내성적인 성격 등 그녀와 비교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이 완전히 게임 아웃된 상황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지금까지 겪어온 과정들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들려주었습니다. 저의 집안, 직장, 인간관계 등 저에 대한 세세한 사항부터, 그녀를 염두에 둔 제 이상형에 대해서까지도.
상당히 진지하게 들어주더군요. 동정심에서인지 가끔씩 동감도 표시해 주었고요. 제가 상당히 많은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녀는 전혀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경청해 주었지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사랑스러웠습니다. 함께 얼굴을 대하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던 건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요.
순간 그녀는 저에게 오랜 방황의 끝을 접고 인생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 여자를 꼭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욕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었고요. 지금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야 할 듯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만난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느닷없이 프러포즈를 했고, 그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그녀는 애써 태연해하며 침묵으로 일관한 뒤 예정된 그녀의 다음 일정을 위해 첫 만남을 미완의 상태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쉽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녀를 영원히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다음 날 두 번째 만남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도 주제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그녀와 붙잡으려는 저와의 묘한 신경전으로 상황은 또 다른 미완을 낳았고, 제 자신이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세 번째 만남은 이어지지 않았고, 그녀에 대한 기억은 한동안 저를 몹시 괴롭혔지만, 그녀와의 첫 맞선은 저에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는데 있어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아주 훌륭한 교훈이 되어 주었답니다.
'과연 그 당시 상황을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희망사항이지만, 혹시 아니 우연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직접 들어보고 싶은 맘 간절 하네요. 서로 옛 기억을 되살려 회포도 풀고, 제 나름대로의 Skill로 만회도 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