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김영매(광주광역시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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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라남도 해남군 월교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광주로 맞벌이를 나가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늘 제 곁은 할머니가 지켜주셨습니다. 할머니는 고구마와 감자, 고추 같은 작물들을 키웠습니다. 특히 저는 할머니가 직접 키운 고구마를 구워 동치미와 함께 먹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 사실을 아시는 할머니는 제가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서 서울 집으로 이사할 때까지 우체국소포로 직접 키운 작물들이나 고구마를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집을 옮기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한 번도 주소를 틀리지 않으셨던 할머니가 새집 주소를 몇 번이고 알려드렸는데도 자꾸 전에 살던 집 호수인 202호로 소포를 보내셨던 것이지요.
작물이다 보니 부피가 꽤 큰 소포는 202호 앞에 며칠씩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202호에 살던 남학생이 가뜩이나 좁은 빌라에서 무슨 민폐냐며 화를 냈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속상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는데, 그제야 할머니가 작년에 치매 진단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너무나 죄송하고 속상한 마음에 한참을 울다 사정을 설명하고자 202호 문 앞에 편지와 고구마를 놓아두었습니다.
다음날 저녁에 사정을 알게 된 202호 학생이 찾아와 그날 자신이 예민했고 너무나 미안하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희는 고구마를 나눠 먹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이후로도 가끔 202호로 소포를 보내신 적이 있었지만, 202호 남학생은 그 소포를 손수 저희 집으로 배달해 주었고 저는 답례로 고구마를 나눠주었습니다. 졸업 후 그 집을 떠나게 되면서 연락은 끊겼지만, 겨울이 다가와 길거리에 군고구마가 보이면 항상 그때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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