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지천명을 코앞에 두고 새로운 것에 또 도전장을 냈다.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다 3년 가까이 아이돌보미 일을 하고 있어서, 이게 마지막 직업이 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동안은 좋아하는 영아들을 주로 돌봐왔지만, 평일엔 종일반,
휴일엔 시간제로 일하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가서 디스크에 걸리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조금 큰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는데, 요즘엔 첫돌 전부터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니 조금 자란 아이들의 돌봄 시간은 자연스레 아침과
저녁으로 몰린다. 현재 1년 가까이 돌보고 있는 아이도 부모님이 늦게
귀가하니 낮에는 유치원에 가고 저녁에는 내가 돌본다.
처음에는 시간이 비는 낮 동안 극장도 가고 운동도 가며 한산한 여유를 마음껏 즐기니
좋았다. 하지만 남들 퇴근하는 저녁에 일을 하고, 낮에는 시간이 남으니 게으름뱅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이 너무 아까워 새로 알게 된 ‘생활지원사’라는
직업에 도전했다. T/O가 잘 나지 않는 편이라 하여 일단 서류를 낸 다음,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내 직업도 있으니 말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갑자기 퇴직하게 되어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다. 서류 낸 사람들이 100명도
넘었다는데 난 참 행운의 아줌마였다. 그렇게 낮에는 생활지원사, 저녁엔 아이돌보미로
일명 ‘투잡’을 시작했다. 전 담당자가 갑자기 퇴직을 해 인수인계를 못 받은 상태다 보니,
배정받은 어르신들을 두서없이 찾아가며 돌봤다. 게다가 일일제공지도 써야 했고
전산입력도 해야 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혼자 터득해가며 ‘처음엔 다 힘들지.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내 의지와 열정과는 달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 보다. 몸에 소양증이
생기고 눈도 가렵다 못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이상이 없단다. 안과에서도,
피부과에서도 원인과 병명을 말씀 못 하시고 약만 처방해주셨는데 나아지질 않아
생활을 제대로 못 할 정도가 됐다. 어떤 때는 허용량의 두 배씩 약을 먹어댔다.
나만은 늙지 않고 늘 청춘일 줄 알았는데, 검사에서도 갱년기로 결과가 나와 호르몬제를
처방받았다. 갱년기라는 말에 웃음이 났지만, 이젠 흘러가는 세월의 변화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몸 관리에 더 신경 쓰자고 다짐했다.
지금 돌보고 있는 어르신들은 날 보고 참 좋은 나이라고 하시며 부러워한다. 그런
어르신들을 보며 난 꿈을 꾸어본다. 나는 오늘, 지금까지 한 번도 살지 않았던 삶을 살고
있고, 남은 날들 중에서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다. 그러니 난 늘 젊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