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송선아(구리시 인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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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달아나기 쉬운 계절이면 나는 예전에 먹었던 음식을 준비하곤 한다. 고구마줄기 반찬도 그중 하나다. 오늘은 고구마줄기를 푹 삶아 생새우를 넣고 탕을 만들었다. 고구마줄기 탕은 엄마가 해주셨던 특별한 음식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깊은 맛을 낼 수 없었다. 그래도 추억의 맛이 주는 효과 때문인지 입맛이 돌아왔다. 입맛과 함께 어린 시절 고구마밭에서 놀던 기억도 파릇파릇 살아났다.
어려서부터 나는 고구마줄기 반찬을 좋아했다. 태어난 곳이 시골이다 보니 여름이면 지천에 널린 게 고구마줄기였다. 딱히 반찬이 없을 때면 광주리 하나 옆구리에 끼고 고구마줄기를 뜯으러 갔다. 굵고 튼실한 줄기를 톡톡 따다 보면 어느새 광주리가 가득 찼다. 따온 고구마줄기는 감나무 밑이나 평상에 앉아 껍질을 벗겼다. 껍질을 벗기는 건 놀이처럼 재미있었다. 껍질을 벗길 때 쓰윽쓱~ 나는 소리가 좋았다.
엄마는 우리가 벗겨놓은 고구마줄기를 푹 삶아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주었다. 된장만 들어가도 맛있는 반찬이 되었다. 특히 연한 부분인 고구마 웅지뱅이(줄기끝부분)는 더 맛있었다. 보리밥을 담은 큰 양푼에 풋고추 썰어 넣고 싹싹 비벼서 식구들과 함께 먹다 보면 어느새 양푼은 바닥이 났다. 엄마는 고구마줄기 무침 말고도 탕을 만들어 주셨다. 새우나 바지락 살을 넣고 들깨가루와 밀가루 풀을 약간 섞어 걸쭉하게 만든 탕은 별미였다. 고향을 떠나온 뒤에도 그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며칠 전, 고향에 갔다가 고구마줄기를 뜯어오게 되었다. 덕분에 두고두고 고향의 맛을 즐기게 되었다. 반찬 하나에도 추억과 그리움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음을 느낀다. 새삼 고향이 있다는 게 알싸한 행복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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