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옷을 꺼내 놓으려고 옷 정리를 하는데 까만색 손가락장갑이 눈에 띄었다. 이사를 하면서 잃어버린줄만 알고 있던 장갑이었다. 그런데 그 장갑을 다시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몇 년 전, 내 손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장갑은 딸아이가 훨씬 어렸을 때 내게 준 선물이다.
지금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시댁에 문제가생겨 남편 월급의 절반을 시댁으로 보내야 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나는 부업으로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게되었다. 낮에는 시간 내기가 힘들어 새벽이나 밤에 하는 일을 찾다보니 신문배달이 제일 나을 것 같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무척 힘들었다. 신문배달 할 집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였고, 비가 오는 날은 두 배나 힘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내가 신문을 돌릴 구역이 아파트가 많았다는 점이다. 한 달 정도 되자 조금씩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서 추위 때문에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옷을 두껍게 껴입고 나가도 새벽 찬바람은 옷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추위를 이겨보려고 뛰어다녔으나 신문을자전거에 싣고 다닐 때면 바람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정말 추웠던 어느 날, 온몸이 꽁꽁 얼어버린 나는 신문을 다 돌리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스레인지부터켰다. 불앞에 서서 언 손을 비비고 있는데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지 아이가 방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고는 다가왔다. “엄마, 왜 그래?”“응, 엄마 손이 시려서 그래.”그러자 아이는“엄마, 많이 추웠어?”하며 내 손을꼭 잡아주었다. 조막만한 손으로부터 전해지던 온기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책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엄마, 이거 장갑인데 아침에 추우니까 끼고 다녀.”아이가 건네준 건 까만색 손가락장갑이었다. “네가돈이어디있어서이걸 산거야? ”“응, 용돈 모아서 샀어.”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루에 겨우 몇 백 원의 용돈을 주었는데 그걸 모아서 산 모양이었다.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대견했다.
아이가 사준 장갑은 하나만 끼기에는 너무 얇아 가죽장갑 속에 끼고 다녔다. 아이가 나를 생각했던 마음만큼이나 손이 따뜻해서 장갑을 낄 때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아나곤 했다. 아이 마음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데워준 때문이었다. 아이가 사준 장갑 때문에 무사히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신문배달을그만두게 되었다. 이젠 추운 겨울날 새벽 강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장갑을 꺼내 가방 속에 넣었다. 힘들고 지칠 때면 장갑을 보면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것이다. 장갑은 오래도록 내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