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차림의 고객이 3호 상자 크기의 택배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이게 무엇입니까?” “차뿌리요.”
당연히 택배로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예, 잘 알겠습니다”하고 상자를 저울에 올려놓았다.
서툰 솜씨로 농산물을 클릭하고 옆 공란에 ‘차뿌리’라고 기재했다. ‘소포’, ‘익일특급’을 확인하고 무게와 규격을 체크했다. 그런 다음 발송인과 수취인의 주소, 성명, 전화번호를 차례차례 입력한 후 손님에게 말했다.
“손님, 4,000원입니다.”
손님은 깜짝 놀라면서 되물었다.
“어! 이거 착불인데요?”
‘오, 이런! ‘차뿌리’가 아니라 ‘착불’이었구나.’
다시 메뉴로 들어가 수취인 부담을 클릭하려 하니 프로그램이 작동되지 않는다. 옆에서 바삐 일하는 노 대리에게 물으니 화면을 초기화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난감할 데가! 결제 방식만 변경하도록 프로그램만 잘 만들어놨으면 간단히 해결될 것을 프로그램을 다시 초기화시키고, 또 주소를 입력해야하다니.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손님을 기다리시게 해놓고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입력해나갔다.
일 처리가 끝난 후에 우리 직원들은 가가대소(呵呵大笑)했다.
내 옆자리의 어여쁜 노 대리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며, “CNN방송만 듣다가 모처럼 한국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요”라며 비꼰다.
배려 깊은 ‘복길이’ 김지영 팀장과 국장님은 “음, 나도 차뿌리라고 들었는데”라고 능청을 떤다. 즐거운 하루였다.토요일은 휴무라 양천도서실에서 잠깐 책을 읽다가 입사동기 김 대리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양천우체국을 찾았다.
마침 타국에서 이번에 이곳으로 발령받은 박미숙 대리가 반갑게 맞아주며 커피 한 잔을 대접한다. 김상은 대리를 만나러왔다고 하니 우편 집배실에서 일한다고 하면서 한 남자에게 안내한다.
‘어! 이분 누구지?’
알고 보니 지난 수요일 발령 인사 때 인사한 적이 있는 김상환 씨다. 아무튼 박미숙 대리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김상환 씨에게 인사를 했다.
김상환 씨는 사연을 듣고 나더니 “하하하! 김상은 씨를 김상환으로 잘못 알아듣고 제게로 안내했군요”한다. 우리는 잠깐 대화를 나누고 껄껄 웃고는 헤어졌다.우체국을 떠나기 전 “박미숙 대리님, 수취인 주소 잘못 적어 소포가 잘못 배달되었어요.”라고 말하고 떠났다.
그동안 내 입과 귀가 녹슬었는지도 모르고 다른 세상에서 지내온 것 같다. 이제부터 멋진 신세계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