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박현(경기도 안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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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문병을 간다. 주말쯤이면 오늘 내린 비로 인해 가을은 더 깊어 있을 것이다. 여고를 졸업한 지 삼십여 년이 지났다.여고 동창 여섯 명이 가끔 만나다가 올가을부터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했다. 단체 카톡에서 의견을 교환하며 만날 날짜를 정하는데 한 친구가 대화 내용만 보고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혹시 모임이 불편하냐고 카톡으로 따로 물어보았지만 글만 확인하고 며칠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전화할까 하다가 카톡으로 솔직한 생각을 말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친구의 답을 받았다. 양평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1년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번 만났을 때가 1년 반 전이었는데 그 후로 입원한 모양이다. 친구는 폐암이라고 했다. 친구들에게 아프다는 말을 하기가 자기 딴에는 많이 고민 되었다고 한다. 자신은 담배도 피우지 않고 남편 역시 담배를 끊은 지 이십 년이 넘었는데 폐암에 걸린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기침이 오래가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폐암이었고 머리와 몇 곳에 전이 된 상태라 수술이 불가하다고 했단다. 친구의 카톡을 읽는데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천명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올 초에도 신혼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유방암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었다. 그런데 친구도 입원했다니 남의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가 벌써 그럴 나이는 아닌데 허탈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떻게 친구를 위로해야 할지 마음이 아팠다. 친구에게 문병을 가도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아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문병을 꺼리는 경우를 봤기 때문이다. 친구는 “와 주면 고맙지”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첫 모임을 요양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여고 시절 인문계라서 대부분 대입 준비를 하는데 친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는지 대입을 포기하고 서울로 학원에 다니며 속기를 배웠다. 나중에 제대로 써먹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에는 속기가 꽤 유행했었다.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슬그머니 가방을 들고 나가던 뒷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었다. 친구는 계속 공부에 대해 미련이 있었는지 만학도로 대학에 입학해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야 아이들을 가르쳐 볼 꿈을 펼쳐 보려는데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꺾여버렸다.
여수에서 금요일에 올라올 친구와 더불어 다섯 명이 친구를 문병 갈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문병이 아니라 놀러 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양평 두물머리에서 액자 사진도 찍고 강바람도 쐴 것이다. 용문사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친구의 쾌유를 빌며 마음으로 기도도 할 생각이다. 노란 은행이 여물어 가듯이 친구의 아픈 몸도 마음도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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