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일학년인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놀이터를 지나는데 아이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방과 후 학습을 하느라 지루했던지 놀다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할 일이많아 곧장 집으로 오고 싶었지만,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린 딸아이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함께 놀아주기로 했다. 아이는 그네를 밀어 달라, 시소를 같이 타자며 날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아이의 요구대로 해주다가 힘들어서 잠시 의자에 앉았다. 그때였다. 흙모래 사이에 노란색 종이 같은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주웠더니 앗, 오천 원짜리가 아닌가. 솔직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순간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만 “횡재했네. 맛있는 거 사 먹으면 되겠다.” 하며 큰 소리로 말하고 말았다. 솔직히 그 순간은 내 손을 이끌어준 아이가 고마웠다. 집으로 그냥 갔더라면 줍지 못했을 돈이기 때문이다. 오천 원으로 무엇을 하나, 과일이라도 사갈까 하며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아이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더러 횡재가 뭐냐고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횡재란 말을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의 다음 말은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엄마! 그 돈 엄마 꺼 아닌데 왜 맛있는 걸 사 먹어?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아, 그렇구나. 그런데 어떻게 주인에게 돌려주지?”
나는 얼른 속마음을 감추고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당연한 듯이
“여기다가 ‘주인을 찾는다’라고 써 놓고 가면 되지. 돈이랑.”
천진한 아이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그렇게 해 놓으면 그 돈이 그대로 주인에게 돌아갈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질 못했다. 솔직히 그 돈이 주인에게 돌아가기보다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될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이에게 설명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SNS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러이러한데 돈을 어찌했으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더니 50% 이상이 그냥 맛있는 거 사 먹으라는 대답이었다. 주운 돈은 그렇게 써야 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부는 뭔가 의미 있는 물건을 사라 했고, 어떤 이는 꽃씨를 사서 심으라고 했다. 장난기 심한 이는 자기를 주면 아주 요긴하게 쓰겠다고 했다. 두어 명은 기부를 하라고 했다. 최종적으로 나는 아이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초등학교 일학년 아이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이는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자고 했다. 언젠가 학교에서 장애우 친구를 본 게 생각난 모양이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기부가 필요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여러 사연 가운데서 아이에게 고르라고 했다. 아이는 아파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도와주자고 했다. 나는 오천 원을 더 보태 만 원을 기부하는 걸로 결정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내 마음이 뿌듯했다. 한낱 헛되이 사라졌을 오천 원이딸아이 덕분에 의미를 찾은 때문이었다. 아이의 한마디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시장 보는 데 그 돈을 보탰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이들에게서 진리를 배운다고 하더니 내가 그랬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의 탁한 마음을 씻어주는 소나기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