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우정렬(부산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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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에 새 달력을 가져오면 아내는 꼭 제사나 가족들의 생일 등 집안의 대소사가 있는 날에 동그라미를 해 메모하는 습성이 있다. 물론 아내는 내가 더욱 관심을 갖고 기억해주고 은근히 챙겨주기를 바라는 눈치임이 뻔하다. 하지만 무뚝뚝하고 멋없으며 감동적이지 못한 나는 매번 그런 아내의 마음을 몰라준 적이 많았다. 아내와 결혼한 지 38년이 지났지만, 아내의 생일을 직접 챙겨준 적은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얼마 전에도 어머니 제삿날이 되어서야 아내의 63번째 생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 생일은 자녀들과 함께 꼭 축하해 주겠다고 굳게 약속했지만, 고향 친구들이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바람에 생일 파티 약속을 어기고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2차까지 하고 고주망태가 되어 자정이 약간 지나 귀가했더니 아내는 어이가 없었던지 날 보고도 못 본 사람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무조건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당신 생일인 줄은 알았지만, 갑자기 밀어닥친 고향 친구들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었지.”하고 변명했더니 섭섭하고 황당한 표정이 된 아내는 “내 생일인데 주인공도 없이 왜 자기가 친구들과 기분을 내요.”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어쨌든 미안하게 되었네. 다음부터는 절대 생일을 빠뜨리지 않을게. 약속할게.”라고 하여 겨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술이 깨고 나니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 아내의 생일을 핑계 삼아 술 먹고 늦게 들어온 것도 모자라 2차까지 계산한 술값 영수증도 만만치 않았다. 그 영수증을 들여다보던 아내가 “우리 식구 일주일분 반찬값이네요.”하고 씁쓸히 내뱉으며 실망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올해에는 꼭 아내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늦게나마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꼭 보여 주고 싶다. 궁색한 변명과 핑계로 들리겠지만 그저 내가 사랑하고 반려해 주는 1순위가 아내임을, 아내가 잊지 말아 주기를 소망, 또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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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이겨내는 작은 마음
글. 장미숙(서울시 송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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