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은 결혼 37주년 기념일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 부부는 벌써 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뀌는 세월을 함께 살아온 셈이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세월은 지나가는 화살처럼 빠른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서른 전후해서 여자들이 시집가는데 스물네 살의 나이에 4남 2녀, 6남매의 가정에 시집와서 숱한 어려움과 역경도 있었지만 늘 따뜻하고 자상하게 대해 주고 정의롭게 양심적으로 살아가려는 남편이 있었기에 마음만은 푸근한 부자였다. 이제 서른다섯 살 된 딸과 서른두 살 된 아들이 그 세월을 입증해 주고 있지 아니한가.
현재의 남편은 38년 전 직장에 다니면서 사귀게 되었으며 1년간의 연애 끝에 부모님의 강하고 거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셋째 며느리로 들어왔다. 하지만 거의 맏며느리에 가까운 각종 집안일을 처리하면서 살아왔기에 결혼기념일만 되면 남편에게 무언가를 많이 기대하기도 했었다. 은근히 부화도 났지만 어쩌랴. 다른 여자들은 매년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때마다 흔히 받는 꽃바구니지만 그간 37년 동안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해 못내 아쉽고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이번 결혼기념일엔 그토록 많이 들어 귀가 따가웠는지 처음으로 장미 꽃바구니를 보내준 것이 아닌가. 올해도 ‘응당 그냥 넘어가겠지’ 하고 아예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적처럼 결혼 후 처음으로 꽃바구니를 선물로 받았을 때의 기쁨과 흥분, 설렘은 마치 처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말로 따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결혼기념일이면 여행을 간다느니 고가의 선물을 받았다느니, 하다못해 분위기 좋은 데 가서 식사라도 한다는데, 여태껏 나는 남편에게서 그 흔한 장미꽃 한 송이 받아 보지 못했던 것이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 남편은 몰라 더욱 화나고 섭섭했다. 어느 해에 너무 화가 치밀어 올라 다그쳐 물었더니 남편은 마음은 있는데 표현을 하지 못할 뿐이라며 은근 슬쩍하며 넘어가려는 것이 아닌가. 물론 경상도 남성들이 무뚝뚝하고 애정 표현이 무딘 것은 알지만 그래도 수십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꽃 한 송이 받지 못한 것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그런 남편이 결혼 37년 만에 마음이 돌변했든지 하루 전에 꽃 배달 서비스에 주문해 너무도 예쁘고 탐스러운 꽃바구니를 내게 보낸 것이다. 그동안 해 주지 못해서, 화끈하게 해 주고 싶었나 보다. 꽃바구니를 처음 받았을 때는 그 기쁨에 눈시울이 뜨거울 만큼 감사하고 고마웠다.
꽃바구니에 꽂혀 있는 작은 쪽지에는 ‘바쁘게 살다 보니 자상하게 챙겨 주지 못한 점 미안하게 생각하며 늘 내 곁에서 나를 돌보고 내조하며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몸이 불편하신 시어머니께도 애쓰는 당신과의 소중한 날을 맞아 모처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앞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서로 이해하고 열심히 살아가길 바라. 앞으로는 결혼기념일만은 꼭 반드시 당신이 받고 싶어 하는 꽃 챙겨줄게 영원한 당신의 남편이’라고 적혀있었다.
꽃바구니를 맨 처음으로 받았을 때도 감동을 받아 기쁘고 고마웠는데 그 글을 읽고 난 결국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이 무디고 감정이 메마른 이 사람한테도 이런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면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하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은근히 결혼기념일이 기대되면 남편과 자식, 시어른들에게 더욱 잘하여 가정 화목하고 남은 생 남편과 함께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것을 다져 보는 뜻깊고 의미 있는 결혼기념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