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구석에서 딱지를 다 접은 조카가 나더러 딱지치기를 하자고 성화였다.
“여자아이가 무슨 딱지를 치니? 이런 건 남자아이들 놀이야.”
“이모, 요즘 딱지치기가 유행인 거 몰라?” 조카는 어이없다는 듯 날 바라봤다.
“정말이야? 여자아이들이 딱지를 친다고?”
초등학교 일학년인 조카의 말에 나는 짐짓 놀랐다. 내가 아는 딱지치기는 남자아이들의 놀이인데 요새는 그게 아니라니. 하긴 놀이로 남녀를 구분한다는 게 어리석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내친김에 해본 딱치치기는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 남자애들이 그토록 딱지치기에 몰두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힘 조절과 정확한 조준이 필요했고 상대방 딱지가 넘어갈 듯 안 넘어갈 때는 조바심이 나며 행여 단번에 뒤집어질 때는 환호성이 터졌다. 비로소 딱지치기의 묘미를 터득하며 새삼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요즘처럼 게임과 인터넷이 없었던 예전에는 아이들이 몸으로 놀았다. 여자애들은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를 주로 했고 남자애들은 굴렁쇠를 굴리거나 자치기, 딱지치기 등을 했다. 집집마다 네다섯은 되었던 아이들이 학교가 파하면 우르르 몰려다녀 시끌벅적했다. 계절에 아랑곳없이 골목 담벼락, 논밭 저수지, 야산 등등 마을 곳곳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흙바닥에서 뒹굴고 산을 타며 저수지를 기어올라 놀았다. 돌멩이, 나뭇가지, 쇠붙이, 대나무 등 지천에 널린 모든 것이 놀잇감이었다.
그중 남자애들이 욕심 부리던 딱지가 우리 집에도 많았다. 앉은뱅이책상 서랍 속 가득했던 딱지를 남동생은 애지중지했다. 색종이는 언감생심, 신문지 딱지도 고급에 속했던 그때 딱지는 요즘처럼 알록달록 예쁘지 않았다. 대부분이 다 쓴 공책이나 종이 포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호주머니 양쪽 한가득 딱지를 넣고 기세등등 놀러 나가던 동생은 어떤 날엔 주머니가 더 불룩해져 들어왔지만 어떤 날엔 주머니만큼이나 얼굴도 홀쭉해져서 들어왔다. 딱지를 많이 딴 날은 발걸음도 가볍게, 탈탈 털린 날은 씩씩대며 토방에 쪼그려 앉아 울기도 했다. 그만큼 딱지는 남자애들이 소중히 여겼던 자기만의 물건이었다. 딱지를 치고 온 날 동생은 밥도 많이 먹었다. 상대방의 딱지를 단번에 뒤집으려면 온몸을 쓰며 순간적으로 뭉치는 힘이 필요했으니 배가 고픈 건 당연했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지금 딱지치기를 하다 보니 새삼 아쉽고 안타깝다.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컴퓨터와 게임기, 휴대폰에 사로잡힌 요즘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나마 학교에서 딱지치기라도 유행하고 있다니 다행이라 여기며, 아이들이 게임이나 SNS에 갇히지 않고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과 놀이가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