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어 온 가족이 사돈이 될 가족과 함께 모여 조촐하게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엄마가 뜬금없이 우리들 키울 때를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여동생을 지칭하면서 “진짜 공주처럼 키웠어요”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때 마침 물을 한 모금 입에 딱 머금고 있었는데 동시에 그 말을 들었으니 어쩌랴. 정말로 물을 뿜을 뻔 했었는데 바로 앞 사돈 가족에게 어찌 물을 뿜겠는가. 그걸 참기 위해 물을 꿀꺽 삼켰는데 진짜 물을 마시고도 체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쿨럭쿨럭 웃음은 터질 것 같은데 속으로 웃음을 밀어 넣으며 물을 삼키니 갑자기 딸꾹질이 일어났다. 웃을 수도 없고, 뭐라고 말도 못 하겠고. 당황한 마음으로 옆의 동생을 보니 동생도 엄마의 갑작스러운 말씀에 당황했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곧 웃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생이 엄마한테 “엄마, 진짜로 나를 공주처럼 키웠어요? 나는 공주처럼 자란 기억이 없는데?” 하며 참았던 웃음을 드디어 폭발시켰다.
그 말에 나도 이때다 싶어, “아니, 나 결혼할 때도 진짜로 공주처럼 키웠다고 하도 자랑을 하셔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나는 공주 대접받고 자란 기억이 전혀 없는데 왜 엄마만 우리를 공주처럼 키웠다고 하시는 거예요?”하며 깔깔깔 웃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엄마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또 펄쩍 뛰셨다.
“내가 그럼 너희들을 공주처럼 키웠지, 하녀처럼 키웠냐?”
“아니, 엄마, 무슨 공주가 빨래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그래?”
“맞아. 심지어는 종이봉투 붙이고, 스프링 끼고, 나무젓가락 넣는 부업도 했네. 부업하는 공주가 어디에 있어요? 언니가 입던 옷 물려 입고, 등록금도 밀리고. 패망한 국가의 공주였나?” 우리가 하는 말에 웃겨서 더 크게 웃었더니 오히려 아버지가 서운하셨나 보다. “솔직히 얘기해서 너희 엄마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냐? 아침에 너희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들 다 챙기
고, 빨래하고, 너희들한테 일 안 시키려고 하루 종일 엄마 혼자서 동동거리며 일하고, 겨우 설거지 몇 번 한 거 갖고 그럼 안 되지.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서 일손을 좀 도와주긴 했지만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너희들이 도와준 거 아니냐? 진짜로 마음만은 공주처럼 생각했다” 하고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갑자기 분위기가 또 숙연해지는 것 아닌가.그래서 “엄마, 아버지 마음 다 알지요. 우리를 공주처럼 키우고 싶어 하셨다는 것 다 알지요. 사돈댁에 우리들을 이렇게 잘 키웠으니 진짜 공주처럼 마음 써 달라고 걱정스러워 하시는 말씀인 거 다 알아요” 하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얼굴 표정이 밝아지셨다. 말을 해놓고 보니 울컥한다. 왜 모를까? 어려운 살림에 우리를 위해 애쓰며 살아오신 그 세월을 옆에서 그대로 보고 자랐는데 왜 부모 마음을 모르겠는가.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부모님의 사랑만큼은 듬뿍듬뿍 받고 자랐으니 공주였던 게 확실하다.
동생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너도 공주, 나도 공주, 우리는 공주야” 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웃고 또 웃었다. 우리들의 정체성을 새로이 확인한 날이어서 그런가, 날씨가 참 맑고 푸르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