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명인│택견 인간문화재 정경화씨
택견 인간문화재 정경화 선생(50세)
국내 유일의 택견 인간문화재인 선생은 택견의 원형 보존과 전파에 함쓰고 있다.
'얼쑤! 이크!'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이라 했던가. 굼실거리고 능청거리는 부드러움인가 싶으면, 추임새인 양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전광석화 같은 발차기가 허공을 가른다. 강력한 몸놀림에 압도되는 찰나 우아한 한 마리 학 같은 활개 짓이 아름답다.
단아한 고의적삼 차림의 택견 인간문화재 정경화 선생(50세). 국내 유일의 택견 인간문화재인 선생이 선보이는 택견은 무술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린다. 박력과 파괴력의 결정체라고 생각해 왔던 무술에 이렇게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다.
'택견은 확실히 다른 무예들과 다릅니다. 다른 무예들이 손 기술과 발 기술이 따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택 견은 손 기술과 발 기술, 몸놀림이 한데 어우러집니다. 태권도는 발차기 중심이고 유도는 발걸이 중심인데, 택견은 복합적이죠. 걸어차기도 하고 걸어메치기도 하고…. 삼각보법의 품밟기로 버드나무처럼 능청거리고 벌레처럼 굼실거리다가 다리를 들어 안에서 밖으로 크게 내차는 '째차기'나 360도로 돌려차는 '돌개차기'가 순식간에 이어집니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지는 택견의 선은 부드럽습니다. 우리나라의 산 모양처럼 둥글둥글하고, 기와집 처마 끝이 부드럽게 치며 올라간 형상과 꼭 같아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무술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 태조왕 때(53년~146년)부터 있었음이 기록되고 있는 택견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 고유의 무예로서 그 생명을 이어왔다. 육체적인 수련 기법뿐만 아니라 택견의 정신은 고구려의 '선배정신', 신라의 '화랑도정신', 조선의 '선비정신' 등의 뿌리를 이루었다. 이러한 택견이 위기를 맞은 것은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 일제와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해 택견은 사라져갈 위기에 놓였었다. 꺼져가는 택견의 불씨는 택견 1대인 고 임호 선생에 의해 살아났고, 그의 제자인 택견 2대 송덕기 선생을 거쳐, 3대 신한승 선생의 노력으로 1983년 6월 1일 택견이 무형문화재 76호로 지적되었다. 그의 수제자로서 택견 4대인 정경화 선생은 택견을 전국에 보급하는 일에 뛰어난 공을 세우는 한편, 택견의 원형과 이론을 전수 받은 것이 인정되어 지난 1995년 중요인간문화재 76호 택견 보유자로 인정 받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00개가 넘는 무술단체가 있습니다. 택견은 그 중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무술입니다. 서구 중심의 신체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자 우리 민족의 정서와 우리 몸짓이 표출된 대표적인 신체문화죠. 이것을 우리 후손들과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택견의 원형을 살려내고 전수한 스승님들에 비하면 갈 길이 멀었다고 말하는 정경화 선생은 택견원형보존회를 이끌어가는 한편, 정부로부터 학점보유제를 인정받아 학점 은행 제도를 도입하여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자연스럽고 유연한 택견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가장 우리다운 몸짓입니다. 무예는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무예는 승부를 겨루는 기술이라기보다 자기 수련과 심신의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학교체육으로 택견이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금실거리고 능청거리는 부드러움 인가 싶으면, 추임새인 양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전광석화 같은 발 차기가 허공을 가르는 택견.
참된 자세로 쉼 없이 정진하라
택견 4대로서 정 선생은 고비도 많이 겪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활인으로서의 역할과 택견인으로서의 역할을 병행하기 위해 18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체력의 한계는 그나마 나았다. 택견을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법정투쟁은 힘겨웠다.
'그때마다 스승 신한승 선생님이 가르치신 택견정신, '참 진(眞)'을 가슴에 새기며 정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무예의 완성은 기술보다 인내력입니다. 진정한 무예는 평생 하는 거죠. 흐르는 물이 강한 바위를 뚫듯이 말입니다. 그런 자세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선생의 말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苦水)' 곧,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가르침을 되새기게 한다.
정경화 선생은 후배들에게 '잔기술'을 경계하고 '정신'을 가다듬을 것을 강조한다. 무예의 완성은 기술보다 인내력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