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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영 고문


지금도 생생한 《체신》과의 첫 만남
1976년 광화문우체국에 첫 발령을 받던 날, 정순영 고문은 수북이 쌓인 연하장과 성탄카드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의 의미를 처음 느꼈다고 회상한다. 흰 봉투마다 주소를 적고, 하루 종일 우편번호를 확인하고 손으로 분류하던 시절이었다. 모든 게 수작업이었지만 그만큼 사람 냄새가 짙었다.
그 시절 젊은 직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배부되던 사보 《체신》은 작은 교류의 장이었다.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를 공지하는 내용도 중요했지만, 전국의 우체국 사람들이 그 책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점이 특히 좋았어요.”
《체신》은 낭만의 시대를 담은 사보였다. 장관·고위직 이야기부터 독자 수필·회고록까지 담아 직원과 시민이 교류하고 소통했다. 이후 《정보와 통신》, 《디지털포스트》, 《우체국과 사람들》로 제호가 변천하며 시대정신을 반영했지만, 소통의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사보와의 인연, 그리고 글쓰기의 시작
1991년 체신부 국내우편과로 부임했을 당시, “전국의 직원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아직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주무관이었지만 그는 기꺼이 원고를 맡았고 3년 동안 《체신》의 ‘알기 쉬운 우편상식’을 책임졌다.
“처음엔 단순히 행정 절차를 안내하는 글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이야기를 담을수록 독자들의 반응이 돌아왔어요. ‘덕분에 민원이 줄었다’라는 감사 전화도 있었죠. 그때 처음으로 글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3년간 연재하면서, 전국의 동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듯한 기분이었죠.”
우체국 직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업무인 ‘내용증명 접수 방법’ 원고를 작성할 때는 변호사의 자문까지 받았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물론, 우체국과 직원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이후에도 그의 펜은 멈추지 않았다. 외부 원고 칼럼을 통해 근무했던 동해·여수·전남청·의정부 직원들의 지역 보듬기 사례(집 수리, 가전제품 수거, 산불예방 신고, 경로잔치 등)를 글로 엮어 전하기도 했다.
우체국은 문화가 있는 따뜻한 조직
그는 우정 현장을 떠난 뒤에도 별정우체국중앙회 상근부회장으로 5년 동안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포스트》에 ‘총괄국장 리더십’을 연재했다. 현재는 계간 《정우소식지》 대표편집위원으로서 10년 넘게 재능기부 중이다.
그는 오늘의 우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소통과 교감’에서 찾는다.
“우체국은 단순한 정부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일상 속을 헤아리는 문화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더 따뜻해야 하고, 더 품어야 합니다. 앞으로 다문화가정, 복지의 사각지대, 환경문제까지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우정의 역할이 필요하죠.” 사람과 사람을 잇던 작은 봉투 한 장의 기억에서 시작해, 수많은 세대를 이어온 우정의 역사를 글로 엮어온 정순영 고문. 그의 50년은 기술의 진보보다 ‘마음의 전달’을 지켜온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