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으로 고된 작업을 이겨
장영범씨/여의도 우체국 발착계
편지 하면 우리들은 흔히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집배원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우편물을 소통시키는데 있어 집배원들 못지 않게 수고를 아끼지 않는 또 다른 우체국 직원들이 있다. 바로 “우편원”이라 불리우는 직원들인데, 이들은 우편물을 창구에서 접수하지도 않으며 대문간에서 교부하지도 않는 업무적인 특성 때문에 별로 알려질 기회가 없다.
한통의 편지나 한개의 소포가 우체국 창구에 접수되고 그것이 집배원의 가방에 챙겨져 각 수취인에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눈에 뜨이지 않는 여러 과정의 많은 일손을 거치게 된다. 우체국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온갖 우편물은 모두 앞면과 뒷면을 살펴 가지런히 추려지고(표리정리), 일부인이 찍히고(소인), 벌집처럼 생긴 구분붕에 우편번호별로 나뉘고(구분), 나뉜대로 끈으로 묶여지고(파속), 행선지별로 우편물 자루에 담기고(체결), 그런 다음에 전국의 곳곳으로 보내지는데(발송), 이 일을 모두 우편원이 맡는다. 더 빠르고 정확한 우편물 송달을 위해 집배원이 눈과 비를 마다 않는다면, 우편원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여의도우체국(국장 : 한태봉)의 우편과 발 서 착계원인 장영범씨(38세)가 출근을 위해 아침에 집을 나서는 시각은 대개 7시 30분쯤. 아빠를 배웅하며 잠이 덜 깬 채 고사리손을 흔들어대는 막내 꼬마와 작은 얼굴의 아내를 뒤로 하며, 장씨는 요즘 들어 부쩍 쌀쌀해진 날씨를 피부로 느끼지만 애써 심호흡을 고르며 발걸음을 다 잡는다.
이렇다 하게 배운 것도 없고 또 마땅한 일자리도 없어 우연한 기회에 광화문우체국의 임시직 집배원으로 출발했던 일이 장영범씨가 체신 공무원이 된 계기였다. 그 동안 임시직이든 고용직이든 탓하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마다에 열과 성을 다해 오기 12년, 그새 장씨는 광화문 우체국에서 여의도 우체국으로 옮겨 지금은 10등급 우편원이 되었다.
나이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인생의 황금기에 그는 화려하지도 않은 자기의 직업을 땀 흘려 가꿈으로써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한 사람의 안정된 직장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어엿한 한 가장으로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불어 착실하게 사는 재미를 늘리며, 크고 작은 삶의 꿈들도 알뜰하게 가꾸어 볼 수 있게끔 생활의 중심도 잡게 되었다.
장영범씨가 우체국에 도착한 시각은 8시 30분, 그가 늘 일하는 천정이 높다란 작업장과 전날 밤을 꼬박 새워 일한 동료 우편원들이 눈짓으로 그를 반긴다. 장씨는 이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오늘 일과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우편물 자루는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가, 우편물 구분작업을 위한 각종 장비들은 작동이 완벽한가를 그는 유심히 살핀다.
그러는 사이 오늘의 근무조에 편성된 우편원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나타내고, 그들에 의해 오늘의 업무태세는 차츰 제대로 갖추어진다. 그리고 9시가 되자 전날의 근무조와 오늘의 근무조는 서로 “수고하셨읍니다. ” “수고하십시요.” 하는 인사를 나누며 업무를 인수 • 인계한다.
서울시내에서의 우편물 대중계국은 서울중앙 우체국•동대문우체국•여의도우체국 등 3군 데이다. 여의도우체국도 마찬가지지만, 이들 대중계국의 발착업무는 발송 • 도착 • 중계의 세 부문으로 크게 구분되어진다.
우선 발송 부문의 작업 내용을 보면, 이곳 여의도우체국의 우편원들은 자국의 창구에서 접수된 우편물과, 관내의 14개 우체국 및 4개의 우편취급소에서 수집된 우편물을 처리해야 한다. 아울러 관내의 약 200개에 달하는 우체통에서 수집된 우편물을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구로우체국 • 화곡우체국 • 광명우체국 관내의 17개 우체국에서 수집된 우편물도 처리해야 한다. 여기서의 우편물량이 하루 약 20만통에 이르는데, 이 엄청나게 많은 우편물을 일일이 표리정리•소인•구분•파속•체결•송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도착 부문의 작업 내용을 보면, 전국의 대 • 소 중계국에서 여의도우체국 앞으로 보내온 모든 우편물을 또한 처리해야 한다. 이 우편물량이 하루 약 12만통에 달한다.
그리고 중계 부문의 작업 내용을 보면, 인천 • 강화 • 구로 방면에서 오가는 하루 약 17만 통의 우편물을 처리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여의도우체국의 발착 담당 우편원이 모두 44명이고, 또 이들은 격일 2교대제로 근무 하고 있으니까 한 근무조에 편성된 22명의 우편원들이 24시간 동안에 처리해야 할 우편물량은 약 49만통에 이르는 셈 이다.
“힘 들다고 생각하면 못하죠. 원활한 우편물 소통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꼭 해야만 하는 일 이니까, 그저 사명감 하나로 업무에 매달리지 요.”
건강 문제가 가장 신경 쓰여
시 씨 는 오늘 출근하자마자 서둘러 10시에 6 영등포우체국과 해군본부로 나갈 우편물을 발송했다. 그리고는 11시 10분에 서울중앙 우체국으로 출발되는 시내교환 2호편의 발송작업에 오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잠시나마 다리를 쉬고 자리에 앉게 되는 때는 12시부터 시작되는 점심시간. 이때는 뜨끈한 국물도 마시며 동료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편원들은 1시간 동안의 점심시간이지만 이를 아끼고자 재빨리 식사를 끝내고는 낮잠을 청한다. 야간작업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여 두자는 생각에서 이다. 이런 점심시간은 유독 짧은 듯하고, 벨 소리는 야속할이 만큼 크게 울린다.
오후 1시 10분, 시내수집 2호편과 중앙선을 타고 올라온 우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또 1시 30분에는 구로 • 화곡방면과 여의도 관내 우체국 등 3개 순로로 나갈 우편물이 발송되었는데, 이를 전송 2호편이라 불렀다. 2시 50분에는 전송 수집1호편이 들어왔고, 3시 10분에는 시내교환 3호편이 발송되었으며, 3시 30분이 되어서는 인천 방면으로 나가는 우편물이 발송되었다. 5시 10분에는 시내수집 3호편이 들어왔으며, 5시 50분에는 전송3호편이 발송되었다.
6시부터 30분 동안은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짧은 겨울해가 지고, 밖은 어둡고 점점 추워 가는데 연신 차들이 들락거리는 발착계 작업장은 한데나 다름없었다. 장씨 등의 우편원들은 빠르게 저녁식사를 마쳤다. 이제부터가 우편원들 에게는 하루 중 가장 일이 밀리는 때여서 몸을 녹이거나 할 그럴 겨를이 없었다.
실내는 우편물이 묻혀 온 먼지, 우편물 자루들이 추스려질 때마다 번져 나는 먼지, 그리고 “탕탕” 소인이 찍혀질 때마다 일어나는 먼지들 로 매우 혼탁하였다. 그래서 우편원 중에는 마스크를 쓴 이도 있었지만, 마스크는 커녕 줄담 배를 피워대는 이도 있었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면 담배를 줄여야만 하는 데, 일은 고되고 먼지로 목 안도 텁텁하고 또 적당한 휴식시간도 갖지 못하다 보니까 오히려 토막 담배 질이 더 잦아지게 마련인가봐요. 하루 18시간 이상을 꼬박 서서 일하는데다, 또 무게가 보통 20kg은 되는 우편물자루를 우편원 한 사람이 하루에 약 200개씩을 다루게 되니 ‘노가다판’이라는 말을 들을 만도 하지요. 강력한 공기청정기나 집진기 시설이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
그렇게 바쁘게들 저녁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서울역에서 경부선과 중앙선 열차에 실려 지방으로 내려갈 우편물이 이곳 여의도우체국에서는 6시 50분에 발송되는데 때 맞추어 또 다시 우편원들은 종종걸음을 친다. 또한 7시 10분에는 전송 수집2호편이 도착되었고, 7시 50분에는 호남선 • 여수선 • 강릉선 앞 우편물이 발송됐다.
이뿐만이 아니라 여의도우체국의 창구에서 수집된 우편물은 낮 동안 수시로 밀어 닥쳤고, 자국 관내의 우체통에서 수집된 우편물이 하루 중 세 차례 도착되었다. 그리고 각 회사들이 직접 한 차 가득 싣고 들어오는 요금별납 • 후납 우편물 차량이 10대 가량 있었다.
도대체 치워도 치워도 다시 쌓이고, 미어지게 나간다 싶으면 또 한차례 왁자하게 들이닥 치는 저 우편물의 홍수는 언제쯤 멎을 것인가. 아무래도 바닥이 말끔히 드러나는 그런 기적은 영영 일어나지 않을 성 싶었다. 이 땅에 사람이 살고 이 사람들 사이에 끊임없이 오가는 사연이 있는 한 저같은 우편물의 폭주 사태는 24시 간내내, 1년내내 계속될 기미였다.
다시 밤 8시 50분, 구로 • 화곡 방면 우편물 도착. 9시 40분, 시내교환 4호편 및 인천 방면 우편물 발송, 동시에 경부선 • 호남선편 우편물 도착. 11시 10분, 시내수집 4호편 도착. 참으로 뒤따라 다녀 보기조차 숨찬 작업이었다.
자정이 지나 새날이 되었어도 사정은 매한 가지였다. 모든 사람이 곤히 잠든 시간일 텐데도 이곳은 여전히 불이 대낮처럼 밝았고, 들고 나는 차량들의 소음과 우편원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여러가지 기계음들로 여전히 시끌쩍했다.
이튿날 새벽 1시 10분이 되자 인천 방면의 우편물이 마치 우편원들의 무거워진 눈꺼풀을 흔들어 깨우기라도 하듯 기세 좋게 몰려들었다. 곧 이어 2시 20분에는 시내교환 1호편과 함께 중앙선에 댈 우편물이 발송되었으며, 3시 10분에는 경부선 • 호남선에 실려 갈 우편물이 발송되 었다.
그리고 새벽 4시 정각, 시내수집 1호편 우편물 도착. 4시 30분, 구로 • 광명 • 강화 방면 우편물 발송. 5시 20분, 인천 방면 우편물 발송. 6시, 경부선 • 호남선 우편물 도착. 8시, 여수선 • 대구선 • 강릉선 우편물 도착. 8시 10분, 구로 방면 우편물 발송.
드디어 아침 8시 40분, 강화 방면에서 실려 온 우편물을 받아 들이는 작업을 끝으로 장영범씨는 그 길고도 고되었던 우편물과의 싸움을 마칠 수 있었다. 이때 비로소 그는 닳아빠진 목장갑을 벗고, 뻣뻣하게 굳어진 팔다리와 목덜미를 주무르기도 하며 훤히 밝아 두팔을 활짝 벌리고 섰는 새 아침의 품안에 하루하루를 진정 열심히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가슴 뿌듯함으로 안겨든다.
“ 우편원들의 경우에는 위장과 허리가 많이 망가져요. 허리 고장은 줄곧 서서 일하는데다 늘 무거운 짐을 부리는데서 올테고, 위장병은 남들 잠잘 때 자지 않고 남들 일 할때 자야니까 자연히 식사가 불규칙하여 생겨나겠죠. 하루 일하고 하루 쉰다지만 사람으로서 하루 24시간 노동은 아무래도 벅찹니다. ”
장영범씨도 여느 우편원들처럼 작업 인원이 좀더 늘어서 작업 시간이 줄어들고, 좋은 우편 작업 장비들이 많이 생겨 육체적인 노력이 보다 덜어졌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언제까지나 건강한 몸으로 자신의 업무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그는 소원한다.
이제 때탄 몸을 씻고 지친 몸을 쉬도록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우편원 장영범씨를 여의도지역의 고층건물들이 저마다 창문을 번쩍이며 반긴다. 그토록 많은 우편물을 쏟아내던 여러 회사들이 마치 그의 수고를 알기나 하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