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 방송 환경의 변화는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통신과 방송에 대한 기존의 규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법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통신 · 방송산업이 급변하고 있다. 디지털화 · 광대역화 등 기술 발전으로 종전까지 각각 별도의 영역으로 존재하던 방송과 통신 분야가 서로 융합함으로써 기존의 미디어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방송사업자와 통신사업자가 합쳐지고, 통신망과 방송망이 융합하여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방송과 통신 서비스가 동시에 제공되고 있으며. 인터넷방송 · VOD 등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통신 · 방송 환경의 변화는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통신과 방송에 대한 기존의 규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법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최근 통신 · 방송사업자간의 상호 진출을 허용하는 등 통신과 방송의 융합 추세에 적극 대처하고 있는 바, 우리 나라도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서는 통신 · 방송 융합의 의미와 전개 과정, 주요 선진국의 정책 동향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통신과 방송 융합의 전개
전통적으로 통신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음성이나 문자 정보를 양방향으로 제공하며 그 효과가 개인적이고 헌법상 통신의 비밀이 보장되어온데 반하여, 방송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영상 정보를 일방향으로 제공하며 그 효과가 공개적이고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구분되어 왔다. 기술적 측면에서 통신과 방송은 상하향 대역 배분 및 네트워크 구조면에서 서로 상이한 시스템으로 운영 · 발전되어 왔다. 특히 방송은 주파수의 희소성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인해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방송국의 소유 등 진입 규제외에도 엄격히 내용 규제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기술을 중심으로 통신과 방송의 전송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방송에서도 쌍방향 정보 전송이 가능해지고, 통신에서도 다수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등 전통적 의미의 통신과 방송간의 영역 구분을 없애기 시작하여 융합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란 통신과 방송의 두 분야로 나누어 왔던 기술적인 차이와 기존의 규제적인 적용이 점차로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융합 현상은 망의 융합, 서비스의 융합, 기업의 융합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세계적인 미디어시장의 자유화 및 규제 완화 추세에 힘입어 더욱 가속화되는 주세이다.
망의 융합
망의 융합은 통신망과 방송망의 구분이 점차 불명확해지는 것을 말한다. 즉. 통신이 방송망을 통하여도 전송되고, 또 방송이 통신망을 통해서도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망의 융합은 통신 망의 광대역, 초고속화, 방송망의 쌍방향화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짐으로써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은 21세기 정보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바, 미국의 NII유럽의 TEN, 일본의 신사회자본, 우리나라도 초고속정보통신망 계획이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정보고속도로가 구축되면 기존의 통신 · 방송 등 개별 매체들이 제공했던 서비스를 통합한 서비스(full service network)와 쌍방향성을 통한 고도 서비스가 실현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망의 융합이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서비스의 융합
최근 디지털기술 · 쌍방향기술 그리고 망의 진화에 따라 기존의 방송과 통신의 기준에서 볼 때 구분이 불분명한 경계영역적 서비스가 새롭게 출현하고 있다. 주문형비디오(VOD) · 인터넷/PC방송 · 전광판 뉴스 등은 통신망을 이용한 방송 서비스이고, CATV망을 이용한 전화 및 인터넷 서비스, FM 방송전파를 이용한 무선호줄 서비스의 제공 등이 방송망을 이용한 통신 서비스라 하겠다. 신규 서비스의 등장은 기존 법제도 틀에서 정의되어 있지 않아 적용 법규가 애매하고, 이에 따라 규제제도의 개편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업의 융합
방송 · 통신 · 영화 · 신문 등 미디어산업간에는 사업상 진입 규제를 유지한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다. 그러나 망과 서비스의 융합은 통신 · 방송산업 간의 융합으로 이어지고 있다. 멀티미디어시대에 정보통신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최근 선진 주요국은 신문 · 방송 · 통신매체간 겸영을 허용하는 추세이다. 미국의 대표적 통신사업자인 AT&T가 위성방송업체인 DirecTv와 제휴하는 등 사업자간 상호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정책 동향
통신과 방송의 융합은 단순한 기술 차원에서의 융합이 아니라, 네트워크 · 기기 · 서비스 · 사업자 간의 융합을 의미하는 혁명적인 미디어 구조 개편이라 할 것이다. 미국 · 영국 등 선진 각국은 이러한 변화를 제도적으로 적극 수용하고 있다. 공통적 정책 방향은 통신사업자와 방송사업자의 융합을 허용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며, 서비스의 융합 족진을 통해 소비자의 편의를 증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미국
1996년 통신법을 개정하여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구분해온 전화사업자와 CATV 사업자간의 상호 진입을 허용하고, 방송국 네트워크와 CATV의 동시 소유 허용 등 방송사의 소유 규제를 완화하였다. 이에 따라 전화 · CATV · 컴퓨터회사들간의 합병 · 인수 및 전략적 제휴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예 : 마이크로소프트와 NBC의 MSNBC 설립).
일본
일본은 특히 CATV망을 통한 전화 · 인터넷 등 통신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멀티미디어화(Full Service Network)를 통한 통신 · 방송 융합 촉진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CATV 서비스의 구역 제한 완화. MSO 허용 등 CATV 규제를 완화하고. 1994년 7월에는 CATV사업자에 대한 제1종 전기통신사업 겸영을 허용하였다. 한편. 1996년 6월 우정성 산하 「21세기 방송과 통신 융합에 관한 간담회」에서는 관계 법령을 개정하여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촉진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영국
영국은 1984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CATV 사업자와 전화사업자의 상호 참여를 인정하였으며, 1996년에는 방송법을 개정하여 미디어 소유규제완화정책을 주진하고 있다. 즉, 신문사와 지상파TV도 케이블 · 위성방송에의 진입을 허용하였으며, 거대 통신사업자인 BT도 방송산업 진출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96 국가정보화백서를 통해 독립텔레비전위원회(ITV)와 전기통신청(OFTEL)으로 이원화된 방송과 통신 규제정책기관을 1998년까지 일원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우리나라의 통신 · 방송 융합 현황
우리나라에서도 사업자들의 통신 · 방송 융합 서비스 추진 등 융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통신은 서울 등 6대 도시 1,500가입자를 대상으로 VOD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1995년 12월부터 여의도 중심으로 사무실과 주택가를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지역 단위의 초고속정보통신망 실험운용계획에 VOD, 원격교육, 영상전화, 전자신문 등을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여러 신문사에서 전광판 방송을 시행하고 있고, 특히 조선일보는 자체 위성지구국을 설치, 무궁화위성을 통해 영상 정보를 30여개 전광판과 2.000여개 은행 지점의 옥내 전광판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
SK텔레콤 · 금호텔레콤 등이 1996년부터 무선 CATV 시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고, 두루넷은 CATV망을 이용한 상용 인터넷 서비스를 금년 7월 중에 제공할 예정이며, 방송사뿐만 아니라 (주)사조커뮤니케이션의 큐넷온라인 등에서 인터넷 방송이 실시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도 통신과 방송의 융합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통신과 방송에 관한 법령. 규제기관 정책 수립 및 집행 등이 이원화되어, 통신 · 방송 융합에 대비한 종합적인 정책 수립과 제도 개혁, 관련 산업 육성이 미흡한 실정이다.
방송국 허가는 공보처가 추천하고 정보통신부가 허가하는 2단계로 이루어져 민간의 불편과 행정 낭비를 초래하고, 방송정책상의 부처간 역할 마찰로 인하여 종합유선방송(CATV)과 중계유선방송 사업자간의 갈등, 위성방송 도입 지연 등 혼선이 야기되었고 앞으로도 갈등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방송은 방송위원회. CATV는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영화 · 비디오 · 새영상물은 한국공연예 술진흥협의회(종전 공연윤리위원회), 통신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각각 독립적인 심의 기준에따라 내용 규제를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동일 영상물이 방송 · CATV · CD-ROM · PC통신을 통해 각각 전송되거나 유통될 때, 사업자는 각각 별도로 심의를 받아야 하는 불편이 상존하고 있다. 멀티미디어시대에는 분산되어 있는 심의기구를 통합하여 운용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 전기통신기본법, 전파법, 방송법, 종합유선방송법 등 통신 · 방송 · CATV별로 분리된 법률 체계 및 진입 규제로 신규 서비스 도입 지연 및 관련 산업 발전의 저해 소지가 있다. 즉, VOD · 전광판 방송 등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통신법 아니면 방송법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법 적용상의 혼란과 규제 관할권을 둘러싼 다툼이 예상된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에 대응한 정책 방향
통신과 방송의 이원적 규제 체계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 추세에 따라 산업 구조의 재편에 걸맞는 통합된 규제정책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 나라도 1996년 12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CATV 망을 통한 통신 서비스의 제공을 허용하는 등 기술 발전과 세계적 추세에 대응하여 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다. 통신과 방송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고 관련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대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통신과 방송에 대한 정책 기능의 일원화
통신과 방송에 관한 정부의 정책 기능이 2원화 되어 정책 수행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다. 따라서 통신 · 방송의 융합으로 새롭게 전개될 산업 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고 신규 서비스 도입을 촉진하며, 일관된 정보통신망의 고도화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통신과 방송을 포괄하는 일원화된 행정체제가 시급히 구축되어야 한다. 미국의 FCC, 일본의 우정성, 호주의 통신예술성은 통신 · 방송을 함께 관장하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책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탈리아도 1997년에 통신 · 방송 통합규제 기관을 신설하는 등 융합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통신과 방송 관련 규제위원회들의 재정립
통신 · 방송 융합 주세에 따라 각종 규제위원회의 기능이 합리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정보통신 윤리위원회 · 방송위원회 · 종합유선방송위원회 등에 산재되어 있는 컨텐트의 내용 심의 · 규제 기능은 하나의 위원회. 가칭 ‘정보문화윤리위원회'로 통합하여 최소한의 사후 규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통신과 방송의 구분이 모호한 서비스가 속출하여 심의 주체, 심의 기준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심의기구를 통합하는 것이 미디어정책상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한편, 통신사업의 경쟁에 따라 부각되고 있는 공정경쟁 관련 기술경제적 규제는 통신위원회가 수행하고 있으나, 통신 분야뿐만 아니라 방송 분야의 공정경쟁 관련 규제도 담당할 수 있도록 가칭 ‘통신방송위원회'로 개편하여 전문 규제기관으로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통신 · 방송 관련 법제도의 정비
통신 · 방송 · CATV 등 매체별 규제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경계 영역적 서비스들을 수용하기 위해 통신과 방송을 종합적으로 규율하는 단일 법령 체계가 모색되어야 한다. 미국은 1996년 통신법내에 전기통신 · 방송 · 케이블 서비스를 포괄하고 있다. 단시일내에 통신과 방송 관련 법규를 하나로 묶기란 어려우므로 장기적으로 단일화를 추진하되, 단기적으로는 통신법과 방송법을 별도로 유지하는 과정에서 통신 · 방송 융합에 부응하여 각각의 법률을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방송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통합방송법안의 대기업 · 언론사의 위성방송 참여 허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으나, 방송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방송시장의 소유 및 진입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방송의 공공성을 강조하여 강력한 정부규제가 행해져 왔으나, 위성방송 · CATV 등 뉴미디어 출현으로 방송의 산업적 · 경제적 측면을 중 시하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WTO · IMF 체제하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의 우리나라 방송산업에 대한 개방 요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므로, 진입 장벽을 완화함으로써 국내 미디어기업들의 경쟁과 경영 다각화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ATV의 경우 통합방송법안에 있는 MSO뿐만 아니라, NO · SO · PP간의 상호 겸영 허용, 보급형 채널, 외국 프로그램 방영 비율 현실화 등 영업 규제의 완화도 검토되어야 한다.
영상컨텐트산업의 육성 지원
디지털 압축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통신과 방송 융합의 기술적 추세는 아날로그시대와 비교할 때 엄청난 영상 소프트 상품의 수요를 필요로 한다. 또한 영상 컨텐트는 하드웨어 발전 및 새로운 수요 창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산업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시장 개방은 고유한 민족문화를 위협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영상컨텐트 산업의 육성이 시급한 국가 과제로 대두된다고 하겠다.
지상파방송사의 외주 제작 의무 비율의 확대, 전문유통업체제도의 도입 등 영상물 유통시장의 활성화를 비롯한 컨텐트산업 육성시책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