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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문화

양반전과 열하일기로
조선 사회를 고발하고
대가를 치르다

연암 박지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식 깊은 지식인들은 시대를 각성시키는 벼락같은 화두를 던졌지만, 당대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양반전>과 <열하일기>로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연암 박지원의 삶도 그러했다.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눈을 얻은 대신, 그가 치렀던 대가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청춘의 연암은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글. 이동섭(예술인문학자)

<양반전>과 <열하일기>로 조선 사회를 고발하고 대가를 치르다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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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가물가물하고 몸 둘 곳을 모르는 산모의 심정 




일러스트 하고고



“내 젊은 날 심병을 앓았는데, 세상 부인들이 첫아이를 낳으면 너무도 지쳐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 만일 잠결에라도 젖이 아이의 입을 눌러 혹 질식하지는 않을까 밤중에 일어나방황하고 몸 둘 곳을 몰라 하는 산모의 심정 같은 마음이 그 무렵의 내 마음과 흡사했습니다.”

구촌 조카 박종악이 우의정에 제수되자 연암은 축하 편지에서 자신이 젊은 날 겪은 우울증을 털어놓는다. 연암이 태어나살았던 18세기 영정조 시대는 조선이 자본주의적 사회로대세가 기울었으나 여전히 과거의 세력이 힘을 가진 상태였다. 연암은 시대와 불화하여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자신을 ‘귓병 앓는 아이’로 비유했다. 잠에서 깨면 책을 보고 그러다 다시 잠이 들고,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길이 없어 집 밖에 나가 “지금이 아침이오, 저녁이오?” 물었다고 한다. 스승 이양천이 죽기 직전 연암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리 한가한가? 급류를 만난 듯 서둘러라!”라고 쓰여 있다. 소설을 쓰고 게으름을 피우던 제자를 향해 스승은 그 재능이 헛되이 소비될까 걱정하며 일갈한 것이다. 

<양반전>을 비롯한 걸출한 소설을 남겼으나, 시대를 앞서간 탓에 외로움과 가난을 대가로 치러야 했던 연암 박지원. 영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는 파벌과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들을 대거 등용했는데, 규장각의 검서관(책을 만들고 관리하는 직책)에 연암의 제자들인 형암(이덕무)과 초정(박제가)이 발탁됐다. 연암은 이에 대한 걱정과 시샘이 뒤섞인 심정을 담헌 홍대용에게 편지로 털어놓았다. 여기에 조선 후기의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 연암이 치렀던 두 번째 대가인 출세한 동료에 대한 부러움과 세속에 머문 자신의 외로움을 확인할 수 있다.





외로움과 부러움, 질투와 시니컬의 연암


“형! 형암과 초정이 벼슬에 오른 것은 다행입니다. 이들이 좋은 세상에 훌륭한 재주를 품고 있어 응당 이제부터라도 조그만 녹봉이나마 받아서 굶어 죽지는 않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지요. 그런데 내가 이들을 좀 책망해야겠습니다. 이들이 중국을 다녀온 이후로는 마음과 눈이 잔뜩 높아져서 웬만한 일쯤이야 모두 우습게 여깁니다. 또한 지나치게 날카롭고 튀는 기색이 때때로 얼굴에까지 드러난답니다. 그들이 하도 떠드는 통에 저는 노구교(북경의 중요한 나루터)를 얼마나 건넜는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아니, 이제 다리가 아플 지경이라니까요.” 

나는 못 가본 중국을 제자들이 갔다 와서 하는 말들이 다 자랑처럼 들려서 듣기 싫어 죽겠다는 연암의 불편한 심사가 전해진다. 그 와중에도 해학이 깃든 문장은 역시 연암답다. 훗날 연암도 청나라 연행에 올랐고, 그의 진보적인 사상과 청나라의 풍부한 견문이 어우러진 <열하일기>를 썼다. 20여 년 전 신분제 사회 조선의 폐해를 날카롭게 까발린 <양반전>에 이어 <열하일기>로 조선 지식인 사회를 다시 한 번 뒤흔들었다. 특히 고문형식인 문어체를 탈피하여 마치 작가가 편안하게 말해주는 듯한 문체(백화체)를 사용하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엄청난 인기를 끌며 필사되어 팔려나갔고, 청나라를 배우자는 열풍이 덩달아 생겨났다. 이에 청을 오랑캐로 취급하던 조선의 기득권(노론)은 청나라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열하일기> 열풍을 몹시 싫어했다. 정조도 연암의 문체를 문제 삼아 여러 번 ‘올바르게’ 쓰기를 권유했으나, 연암은 말을 듣지 않았고, 50세가 되어서야 선공감 감역(건축물의 신축보수 공사 감독관)에 임명되었다. 연암은 꿋꿋하게 자기다움을 유지하여 주류세력과 갈등관계에 놓였고, 그것이 그의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였다. 



초야에 은둔하겠다 


이렇게 후학들이 세상에 나가서 자리를 잡은 반면, 연암은 과거시험 1차에 장원을 하여 영조를 직접 알현하기도 했으면서 2차 시험에는 백지를 내는 등 실력보다 인맥과 파벌로 얼룩진 조정으로 나가지 않고 세상을 등졌다. 비참할 정도의 가난함이 세 번째 대가였다. 

“이제 저는 초야에 은둔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양 한밤중에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입에서 신물이 나곤 합니다. 명예와 권세는 기름입니다. 기름을 가까이 했다가는 옷만 더럽힐 뿐이지요. 명예, 권세, 잇속을 버리고 비로소 밝은 눈으로 이른바 벗이란 것을 찾으니 도무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형은 벗을 사귀는 일에 올곧고 강개한 기질을 가지고 계신 줄 알기에 이제 일단의 울적한 마음으로 하릴없이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후학과 동료들이 관직을 잡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 마흔이 넘은 연암은 점점 더 세상과 담을 쌓았다. 혼자 버려진 듯한 외로움과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가에 대한 회의로 연암은 고뇌했고, 홍대용에게 울적함을 토로한다. 이에 연암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된 홍대용은 소 두 마리, 농기구 다섯 가지, 공책 스무 권, 돈 2백냥을 편지와 함께 보낸다. 

“소와 농기구를 보냅니다. 산중에 계신 지금 밭을 사서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그 일에 보태 쓰세요. 그리고 거친 논밭일을 하더라도 공이 할 일은 책을 저술하여 후세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훗날 홍대용이 죽자, 연암은 음악을 끊을 정도로 몹시 슬퍼했다. 청나라 다녀왔다고 유세하는 꼴이 보기 싫다던 박제가에게도 편지로 돈을 구해야만 했다. 연암은 박제가를 “지나치게 날카롭고 제 고집대로만 하려는 성질”이 있다고 평했지만, 성미는 급해도 뒤끝이 없는 박제가에게 돈 이야기를 하기는 편했던 듯싶다.





빈 술병도 함께 보내네 


“공자가 7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니 도를 생각할 겨를이 없네.  남 앞에 굽실거려 본 적이 하도 오래고 보니, 사는 형편이 자네처럼 좋은 벼슬에 있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가 없네. 내 서둘러 절하며 부탁하니 돈 좀 꾸어 주시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네. 보내는 김에 빈 술병도 함께 보내니 술을 가득 담아 보내 주면 참으로 고맙겠네.” 

예나 지금이나 시류에 부합하지 않으려는 지식인의 처지는 비슷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스스로 부를 축적할 영악함이 부족했으니 가난은 숙명이었다. 돈을 빌려 농장 경영을 한다고 덤볐다가 실패하고 오히려 막대한 빚까지 짊어졌고, 무려 13년 동안이나 쪼들린 삶을 살아야 했으니 말이다. 궁색한 처지에도 빈 술병을 함께 보낸 연암의 유머가 재밌지만, 돈을 빌려달라는 스승의 편지에 대한 박제가의 답장도 걸출하다. 

“열흘 장맛비에 밥이라도 싸들고 직접 찾아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돈 200냥을 편지를 전하는 하인 편에 보냅니다. 술은 보내드리지 못합니다. 세상에 한꺼번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야 있겠습니까? 욕심도 과하시지요. 허허허.”   깍듯하게 예를 갖추되 친구처럼 편안하게 당시로서도 거금인 돈을 빌려주고, 이에 재치를 더한 답장에 연암이 빙긋 웃었을 법하다. 돈 빌리는 사람의 비참한 심정을 잘 아는 연암은 돈이 필요한 동료에게 알아서 보내기도 했다.       



공교롭게 한 닢이 남아서 보내오
 

“꽃병에 열한 송이 꽃을 꽂아 동전 스무 닢을 얻었소. 형수님께 열 닢을 드리고 아내에게 세 닢을, 그리고 작은 딸에게 한 닢, 형님 방에 땔나무 값으로 두 닢, 내 방에도 두 닢, 담배 사느라 한 닢을 쓰고 나니 공교롭게 한 닢이 남았소. 이에 올려 보내니 웃고 받아주시오.”       

꽃병의 꽃은 밀랍을 녹여 만든 가짜 매화였고, 그런 조화를 집 안에 두고 감상하는 사람이 늘었는데, 연암이 그 일을 하고 번 돈을 피차 궁핍한 처지였던 이덕무에게 보낸 것이다. 서얼 출신으로 학식은 깊었으나 관직에 나갈 수 없었던 이덕무는 창호지 붙일 풀을 살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던 차였다. 그런 그에게 연암은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돈과 편지를 보냈다. 선비들에게 가난이 부끄러움은 아니겠지만, 이들의 마음에 가난이 그늘을 지게 했던 건 사실일 터. 하지만 서로 품은 뜻이 같고, 처지를 알아서 콩 한쪽도 나눠주는 동료가 있었으니 견딜만 했다. 



참고서적  <그냥 아롱으로 살아라>(김용관 저, 돋을새김)

<내 아들 딸들아 세상은 너의 것이다>(박지원 저, 안장환 엮음, 큰산)






오늘의 편지 이야기


항상 축구 열심히 하는 오빠에게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어린이부/가족 <동상> 김해린


오빠, 나 해린이야! 난 항상 축구를 하는 오빠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왜냐면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오빠가 매일 말라 오거든. 원래도 말랐지만 한 번 올 때마다 더 말라 오는 것 같아. 오빠가 초등학교 때는 나한테 심부름도 많이 시키고 그래서 좀… 오빠가 올 때마다 짜증이 났거든? 근데 꼭 오빠가 나이가 올라가면서 고1때 나한테 너무 잘해주길래 왜 그러지? 했는데 오빠는 앞으로는 표현을 못하는데 마음으로는 표현하는 거 알게 됐어. 내가 놀다가 무서우면 집 앞에서 기다려주고 내가 먹고 싶은 거나 사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해주고 내가 심심할 때 놀아주고 내가 학교나 밖에서 놀림 받았을 때나 싸우고 있을 때 오빠는 뭐라고 해주고, 항상 나를 지켜준 것 같아!난 오빠가 좋아. 내가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다른 오빠들보단 오빠가 낫더라. 내가 장난을 쳐도 받아주고, 다른 오빠들은 장난치면 분명 똑같이 장난칠 텐데…. 

오빠는 다른 오빠들보다 잘해주니까 난 오빠가 좋아!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 항상 내 곁에 있어주고 장난도 받아주고 날 지켜주는 슈퍼맨?

듬직한 우리 오빠, 내가 잘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해해주고 배려해줘서 고마워. 항상 집에만 오면 다투고 싸우고 삐지고 울고 어쩔 땐 언니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필요 없어. 가족에 대해 발표할 때 오빠 자랑하고 싶고, “너희 오빠 잘생겼다.”라는 말도 듣고 싶어.오빠,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행복한 남매와 가족이 되자. 오빠에 대해 얘기할 건 많지만, 오빠 얘기를 쓰려면 100년은 넘을 것 같아서. 앞으로도 20살까지 아니 내가 죽을 때까지 같이 있어주고 행복하게 싸우지 않는 남매가 되자.

오빠, 태어나주어서 고마워. 오빠가 국가대표가 되는 걸 응원할게. 오빠가 국가대표 되려고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까 부상도 많이 당하고 병이 드는 것 같아. 오빠가 처음으로 초등학교 때 공 넣은 날 아빠, 엄마, 나 모두 엄청 신났어. 웃음이 그치질 않더라. 나도 그때 정말 신났어!오빠, 축구도 공부도 열심히 해. 내가 열심히 뒤에서 응원할게!



- 오빠를 사랑하는 동생 해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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