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다. 3남 4녀 중 막내딸인 나를 엄마가 마흔 살이 넘어서 낳으셨으니, 큰언니와 나는 20년이 넘게 차이 나고 조카들 역시도 장성하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늦둥이 막내딸이라면 그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행복하신 만큼 나를 예쁘게 키워주셨다. 몇 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기력이 부쩍 쇠약해지셨다.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들이 모시겠다고 하여도 며느리에게 미안하고 아직은 시골동네가 좋다고 하시며, 텃밭 채소를 일구어 자식들에게 주는 재미로 살고 계시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자식들에게 주려고 김장김치를 담그시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다들 식당을 하는 걸로 오해할 정도이니 엄마가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싶다.
작년부터 허리가 안 좋아지신 엄마가 김장 걱정을 며칠씩이나 하시길래, 걱정하시지 말라고 나도 자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동안, 옆에서 보조를 하고 김장을 도왔기에 자신만만하게 “그래! 내가 올해부터 한번 해 볼까?”싶어서 근교에 사는 언니와 지난 주말에 담갔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몸살이 날정도로 온몸이 쑤시고 아프기만 하다.
김장김치를 담그면서 맛보는 내내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엄마가 해주신 김치 맛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알려주신 대로 양념을 하고 재료를 넣었는데 왜 이럴까 싶었으니, 역시 엄마표 손맛과 사랑이 들어있지 않았나보다. 보쌈과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면서 “엄마도 함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싶은 생각에 잠시 눈물이 났다. 평생 엄마가 해 주신 김치만 먹을 줄 알았던 철부지였던 나.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가 김치 담그실 때 옆에서 눈 여겨 보는 건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겨우내 드실 김장김치를 엄마께 택배로 보내드렸더니 전화가 왔다. 나는 당연히 맛이 이게 뭐냐고 폭풍 잔소리를 하실 줄 알았는데, “우리 막내딸이 이젠 제법 엄마 손맛을 따라오는구먼. 음식도 못하는 철없는 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너희들 김장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먼” 하시면서 너무 맛나서 이웃주민들에게도 나누어주셨다고 하시는 말씀에 어깨가 으쓱거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막내는 더 애틋하고 사랑스러운가보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엄마의 마음을 알겠다. 나도 내 딸을 마흔 무렵에 낳았으니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데 우리 엄마도 아마 이런 심정으로 나를 애지중지 키우지 않았나 싶다.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춥다고 한다. 기름값이 걱정스러워 겨울에도 마음껏 보일러를 틀지 못하는 엄마를 이번 겨울만이라도 내가 모시고 와서 엄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좋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엄마! 어느덧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젠, 엄마 건강만 생각하시면서 내 걱정일랑 그만 하시고 엄마 몸을 챙기세요. 오늘은, 유난히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하얀 쌀밥에 손으로 찢어주시던 김치 맛이그립고 먹고 싶네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역시 ‘엄마 밥’ 이면서 ‘엄마 김치’인 것 같네요. 사랑합니다.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