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물류 혁신으로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워라밸 우체국

집배물류 혁신으로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워라밸 우체국

스페셜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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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물류 혁신으로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워라밸 우체국

북부산우체국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열풍이 거세다. 저녁이 있는 삶,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을 꿈꾸는게 점점 당연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만히 둘러보면 제비 문양 그려진 빨간색 우체국 오토바이는 토요일에도 쉬지 않고 동네 곳곳을 누빈다. 모바일로 안부 인사, 업무 지시, 은행 업무까지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니 집배원의 숨통도 조금은 트일 것 같은데 이들의 삶은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이 와중에 주 5일 근무 딱딱 지키고 연가 사용도 자유롭게 한다는 우체국이 있다고 하여 부산으로 향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었던 물음표를 ‘이게 이렇게 되네!’라는 느낌표로 바꿔준 북부산우체국. 우정사업본부의 집배 물류 혁신 과제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하여 집배원들의 표정부터가 남달랐던 북부산우체국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전보경 + 사진. 조철우

집배물류 혁신으로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워라밸 우체국

현장이지 말입니다! 철저한 현장 분석으로 혁신을 시작하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손편지가 줄어들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집배원 아저씨’는 참 반가운 손님이다. ‘안전 택배의 대명사’ 우체국택배를 책임지며 주요 우편물은 여전히 집배원의 손을 거쳐 전달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집배원’이라 하면 중노동을 떠올리며 ‘극한 직업’으로 분류하곤 한다. 북부산우체국은 이러한 현상을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분석하고 개선의 여지를 모색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집배물류 혁신전략 10대 추진과제를 발표한 작년 12월 무렵부터 북부산우체국 자체적으로 ‘집배·물류 혁신 TFT’를 구성·운영하기 시작했다. 집배구역 조정반, 소통계획 조정반, 전산정보 개선반으로 구성된 TF팀은 김대주 우편물류과장이 이끌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자기 분석’이다. 김대주 과장은 북부산우체국의 현황과 환경 변화를 냉철하게 분석했다. 















“통상구/소포구 분리가 되면서 토요일에 쉬게 되니 가족들이 참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아빠와 함께하는 주말을 무척이나 기다립니다. 주말마다 쉬고 초과근무도 적어져서 급여가 좀 줄긴 했고,

아이들 데리고 한 번이라도 더 나가게 되니 지출이 는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선택하라면 집배물류혁신을 추진하고 난 지금이 더 좋아요.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으니까요.”

- 신철주 주무관(통상구 담당)


“북부산우체국의 집배원 1인당 일일 소통 물량은 1,860통으로 전국 평균(1,845)과 비슷한 수준입니다만, 연간 노동 시간은 전국 평균(2,531)을 훨씬 웃도는 2,618시간이었죠. 집배원의 업무 소요시간을 수치로 계산해 노동 강도를 측정하는 집배부하량을 보면, 2016년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국은 1.037입니다. 그런데 이게 많은 물량을 처리하며 더 짧게 일하는 숙련자와 그렇지 않은 기량 미달자 간 편차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였어요. 우리 우체국은 관할 면적이 좁은 편이라 최장거리 배달지가 5km 이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배달 환경이 비교적 좋은 곳이니까 방법을 조금만 달리하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구체적인 목표와 세부 과제를 정리했어요.”

최근 10년간 통상우편은 31% 줄고 소포배달은 230% 이상 증가했다. 앞으로도 온라인 주문과 택배가 늘면 늘었지 결코 줄진 않을 것이다. 북부산우체국은 이 점에 주목하여 소포배달 체계가개편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곧장 실천의 밑거름이 되어 북부산우체국만의 12개 추진과제, 이른바 ‘액션플랜(Action Plan)’을 낳았다. 가장 큰 쟁점은 통상구와 소포구를 분리하는 것. 기존에는 집배원이라면 관할구역의 일반우편이든 소포든 가릴 것 없이 배달해야 했다. 새로움을 거부하며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TF팀은 좌절하지 않고 집배원들의 진짜 속마음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근무시간은 줄고 작업은 쉬워지고, 혁신은 좋은 것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직원설명회를 열어 우리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수시로 알렸고, 액션플랜을 마련한 뒤 집배원 60명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12개의 내용 중 주요 쟁점이 될 만한 것을 추려 보니 ▲통상구/소포구 분리 ▲대팀제 실시 ▲업무 평준화 ▲초과근무명령 차등, 이렇게 네 가지였어요. 설문 결과 평균 88%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습니다.”

특히나 통상구와 소포구를 분리하자는 의견에 집배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직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이들은 집배물류 혁신을 위한 기본 계획을 수립했다. 중노동 부담 해소, 작업시간 단축, 노동조건 형평성 보장이라는 세 가지 가치 추구를 12개의 액션플랜이 뒷받침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중노동 부담을 덜면 작업시간도 줄고 자연스레 업무 형평성도 맞춰진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통상구/소포구 분리에 앞서 진행한 것이 위탁배달구 지역 전담제 실시와 실버위탁 확대였습니다. 종전에는 이륜차로 배달하는 집배원과 위탁배달원이 같은 구역에서 활동하고 있었어요. 위탁배달원이 북구 전체에 넓게 분포되니 운행거리는 길고 취급물량은 적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물량이 많은 화요일이나 가을철 대형 농산물 택배가 오게 되면 집중국에서 위탁배달원이 물량을 선점하면서 배달하기 쉬운 지역의 부피가 작은 것들만 가져가더군요. 이렇게 되면 결국 집배원이 이륜차로 가기 어려운 급경사 주택지역과 고중량 택배를 배달할 수밖에 없으니 화물차 위탁 취지가 무색하게 된 셈이죠. 집배원의 중노동 부담과 장시간 근로의 큰 원인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상황을 설명하며 위탁업체에게 관할 범위를 급경사가 많은 배달 난지역 3개동(구포, 덕천, 만덕)으로 축소하여 모든 택배를 책임지도록 하는 지역 전담제를 요청했습니다. 대신 종전 150개에서 약 170개 수준으로 할당량을 좀 더 많이 가져가도록 허용했죠. 처음엔 난색을 표하던 위탁배달원들이 이제는 배달 지역이 좁아져서 유류비는 적게 들고 수입이 늘었다며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북부산우체국은 위탁배달구 지역 전담제에 이어 실버위탁을 확대했다. 실버위탁은 부산북구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이 맡아서 하고 있는 ‘아파트지킴이 택배사업단’을 뜻한다. 북부산우체국은 실버위탁 시범 관서로서 8천 세대였던 위탁 대상을 올해 1만 6천여 세대까지 늘렸다. 이렇게 위탁배달 개편과 실버위탁 확대 작업을 통해 집배원들의 소포배달 부담을 일부 정리하는 한편 노인 일자리까지 창출되는 효자 노릇도 가능하게 되었다. 고중량 우편물과 난지역 배달이 해결되자 통상구/소포구 분리의 기틀이 갖춰졌다. 종전에는 통상구 53명과 특급구 5명 전원이 통상과 소포 배달을 겸하여 중노동 부담이 있었고, 통상 다량기간에는 외근 후에도 순로를 구분하느라 초과 근무를 이어갔다. 그러나 지역 전체의 배달점과 물량을 평준화하여 재설계하니 통상구 43명과 소포구 15명으로 최종 분리가 가능해졌다. 소포물량을 전혀 취급하지 않게 된 통상구는 몸이 다소 편해졌고, 이렇게 비축된 에너지를 소포구 동료들에게 나눠준다. 매일 아침 50여 개의 소포 파렛트를 통상구 집배원들이 수동 컨베이어를 활용하여 행선지별·아파트별로까지 완벽하게 구분한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직원은 ‘무거운 소포 1초 이상 들지 않기’를 실천한다. 통상구가 담당 구역 소포우편물을 딱딱 구분해서 전달하니 오구분은 거의 없다. 소포 순로구분시간이 대폭 줄어들면서 소포구뿐만 아니라 통상구 담당도 노동량과 근무시간이 단축된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는데 일은 더욱 빠르고 정확히 끝나게 된 북부산우체국. 이에 그치지 않고 대팀제 편성과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여 보다 확실히 집배원들의 휴식이 보장되는 환경을 조성했다. 한 팀당 7~15명의 소팀제로 운영하던 기존에는 연가를 사용하면 동료에게 겸배(집배 인원에 결원이 생기면 집배원들이 배달 몫을 나눠 맡는 것) 부담이 전가되고 자신도 업무에 복귀하면 일이 쌓여 있어 마음 놓고 쉴 수가 없는 구조였다. 이에 팀당 인원을 15~30명의 대팀제로 개편하고 휴가자 1인이 발생하면 전체 팀원이 1/n 형태로 업무량을 분담하니 연가 사용자와 나머지 동료 모두의 부담이 줄었다. 토요 택배에 대한 근무 부담도 해소해야 할 선결 과제였다. 종전에는 소포 배달을 위해 전 직원이 격주 토요일마다 순번제로 근무했던 것을 통상구/소포구의 분리 작업을 하고 나서 통상구는 월~금. 소포구는 화~토 근무제로 변경했다. 그렇다면 월요일에 발생하는 소포는 소포구 담당이 출근하는 화요일까지 쌓아 두는 걸까? 걱정은 금물이다. 월요일 소포는 양이 적으므로 통상구 43명이 통상우편물과 함께 배달하면 그만이다. 다량 배달처와 대형 소포는 특급담당 대팀장 2명이전담하니 1인당 7~11개 소형 소포만 책임지면 되니까 부담이적다. 집배원 주 5일 근무제가 쉽게 정착되는 걸 보며 좀 더 일찍 검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소포구는 화~토요일 근무를 하니까 한쪽에서는 ‘완전한 주 5일제’가 아니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은행 및 공공기관 업무나 각종 건강검진을 연차를 안 쓰고도 월요일에 하면 되니까 실제로 소포구 집배원들은 화~토 근무제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운동이나 낚시를 다시시작한 동료들도 많아요. 저도 한동안 못 했던 헬스를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 서용습 집배실장


환상의 팀워크를 발휘하며 노동이 행복한 우체국

북부산우체국의 개선된 이 모든 현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전 7시 40분, 집배원들이 하나둘 출근하여 모이기 시작했다. 8시 정각부터 일사불란하게 시작된 소포 구분 작업은 한 편의 행위예술처럼 정교하게 펼쳐졌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소포가 가득 담긴 파렛트가 도착하자 이를 아파트별(행선지별)로 구분하여 수동 컨베이어에 척척 올려주는 통상구 담당. 구분된 파렛트를 그대로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소포구 담당. 월요일까지 쉬고 온 덕분인지 소포팀장이 밝게 웃으며 팀원들을 독려한다.

“오늘따라 찌그러진 상자가 와이리 많노. 배달할 때 신경 좀 써래이.”, “좀 이따 다 패집니다. 걱정 마소.” 다소 묵직해 보이는 물건을 주고받는데도 농담이 오간다. 누구 하나 찌푸린 사람 없이 웃음이 넘치는 현장. ‘혁신’은 어쩌면 이런 일상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8시 30분이 되자 집배실이 텅 비었다. 소포구 집배원들은 그 많던 소포들을 속속 파렛트에 실어 나갔고, 동료를 돕던 통상구 집배원들도 통상우편을 들고 제 구역으로 떠났다. 구분 안 된 소포가 혼재하여 전 직원이 행정동별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아파트별(행선지별)로 나누는 데 1시간 반에서 2시간까지도 소요되던 작업을 정확히 30분 만에 끝낸 것이다.

“오늘은 주말에 쌓인 소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화요일이라 좀 더 오래 걸렸어요. 보통 20분이면 끝나죠.”

집배원들이 소포 파렛트를 구분하는 동안 특수실에서는 집배원별로 익일특급우편물 구분에 한창이다.

“익일특급으로 부쳐져 오늘 안으로 배달돼야 할 등기우편물들입니다. 도로명 주소만으로는 집배원별 구분에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집배코드의 완벽한 활용으로 특수실 2명이 단 20분 만에 완벽하게 구분합니다. 배달점 전산자료를 현행화하고, 국가기초구역 기반으로 통상구를 전면 조정한 덕분입니다. 집배코드로 구분하는 것은 통상구 담당이 아니어도 숫자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작업시간이 저절로 단축되고 통상구 직원의 공동작업은 없어지게 되는 셈이에요.”

사람이 하는 일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면 실수가 줄고 노동력을 비축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철저한 분석 위에 형성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갖춰진 작업 시스템. 견고한 시스템이 불러온 혁신은 그만큼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북부산우체국 근처에는 5천 세대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다. 이곳의 택배 배달을 서른여덟 분의 어르신이 전담하고 있다하여 찾아갔다. 2016년부터 실버위탁을 맡고 있는 이들은 모두 부산북구시니어클럽 소속이다. 집중국에서 택배우편물을 아파트 단지 안까지 운송해주면 어르신들이 자신의 구역별로 정리하여 배달하는데, 하루 2~3시간씩 운동 삼아 일도 하고 돈도 버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며 희망자가 꽤 많다고 한다.

“60세 이상의 건강하신 분들 위주로 구성된 실버위탁 어르신들은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 세상 이치에 밝고 또렷하십니다. 연세가 지긋한데도 ‘고객님’이라는 호칭을 꼭 붙이며 간혹 어린이들의 안전까지도 확인해주시니까 주민들도 함부로 하지 않고 예의를 갖춰 대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 소포가 쌓인 수레 옆에 영어교재와 단어가 빽빽이 적힌 노트가 눈에 띈다.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공부도 해볼까 싶어 영어책을 펴게 됐다는 어르신의 얼굴에 노동의 기쁨과 만학도의 즐거움이 서려 있다. 이렇게 나이 들 수 있다는 게 참 멋지다.

다시 우체국으로 들어와 벽에 붙은 게시판을 살펴보니 ‘초과근무 사전신청 기준’이라고 쓰인 표가 붙어 있다. 힘들고 피곤한데 초과근무를 사전신청까지 해야 하나, 의문스런 얼굴로 쳐다보자 김대주 과장이 명쾌하게 알려준다.

“예전에는 업무가 늦게 끝나게 되면 담당자 한 사람만 남아 일하고 나머지는 모두 퇴근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당일 우편물량에 따라 팀별로 적용하여 서로 도와주고 다 같이 퇴근하도록 바꿨습니다. 1일 2시간 30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팀 평균 1인당 환산물량 2천 통 기준 250통씩 증가할 때마다 30분 단위로 초과근무를 편성하고 팀별 초과근무신청 기준시간을 매일 오후 3시경에 게시합니다. 1인의 과도한 연장근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단 한 명도 주 12시간 넘게 근무하지 않습니다. 우편물이 많아도 팀원 모두 남아서 함께 처리하고 같이 퇴근하는 체계로 바뀐 것이죠.”

동화 <파랑새>에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먼 길을 떠났던 남매 틸틸과 미틸은 집에서 기르던 새가 파랑새임을 알게 된다. 북부산우체국의 집배물류 혁신을 보며 전국 1만 6천여 명 집배원들의 파랑새도 결국 우체국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김대주 과장은 “아직도 집배부하량 평준화가 완전히 이뤄진 건 아니라서 갈 길이 남아 있다”고 말하지만 한쪽에선 집배원들끼리 모여 여름휴가 계획을 이야기하며 일정을 맞추고 있다. 부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여름휴가를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고 돌아오면 좋겠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려하여 완벽한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는 이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