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창립 20주년 을 맞았다. 1976년 12월 31일에 한국과학 기술연구소 (KIST)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로 출범한 지 꼭 20년이 된 것이다.

글. 최상국 전자신문 기자

[특집]한국전자통신연구소20년 - 한국전자통신연구소 20년의 업적과 과제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창립 20주년 을 맞았다. 1976년 12월 31일에 한국과학 기술연구소 (KIST)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로 출범한 지 꼭 20년이 된 것이다.

ETRI의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는 것은 한국의 전자 · 통신기술의 20년 역사를 돌아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ETRI의 발전사는 곧 한국의 전자 · 통신기술 발전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TRI가 수행했던 프로젝트를 일람하면 그 시대에 한국의 전자 · 통신산업이 필요로 했던 기술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ETRI가 해냈던 프로젝트가 현재 한국의 전자 · 통신산업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기본 토대라는 것에 이의를 달 필요가 없다.

축적된 기술도 자본도 없던 시절에 국가 주도로 기술 개발을 선도하기 위해 세워진 다른 모든 정부출연연구 기관들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ETRI는 한국의 전자 · 통신산업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고 오늘 같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 하는 원동력 역할을 해낸 것이다.

기술 개발에 실패가 없었을 리 없지만 ETRI가 과거 20년 동안 정부출연연구소로서 해낸 일들은 기술, 제품. 인력 등 유형 · 무형의 자산으로 한국 전자 · 통신산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ETRI가 수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중요한 것만 보더라도 전전자교환기 (TDX), 국산주전산기(TICOM), 위성통신지구국, 동기식 광전송 시스템, CDMA 이동통신시스템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다. 여기에다 이들 시스템에 들어가는 각종 수동 · 능동 부품들, 주문형반도체, 소프트웨어, 설계도구 등 연관기술들까지 거론한다면 ETRI는 참으로 보배 같은 존재이다.

최근에는 국책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축적된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초전도체, 양자물리 등 기초과학 분야에도 투자, 국책과제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적인 연구소들과 어깨를 겨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올해 1월에는 과기처 산하 KIST 부설기관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링 분야의 전문연구소였던 시스템공학연구소 (SERI)까지 통합함으로써 ETRI는 소프트웨어 · 하드웨어를 망라한 매머드급 국책연구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연혁

연혁을 살펴보면, ETRI는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통폐합의 변화를 적게 겪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ETRI도 1976년 설립 이후 여러 차례 조직이 바뀌었다. 큰 틀에서 현재 ETRI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85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한국전기통신연구소의 통합 이후이다.


1976년 12월 31일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부설기관으로 발족한 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1977년 12월 9일 한국통신기술연구소(KTRI)로 바뀐 뒤 1980년말 신군부의 연구소 강제 통폐합 조치에 따라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와 합쳐 한국전기통신연구소(KETRI)로 덩치를 불렸다.

한국전기통신연구소의 출범 이후에도 계속 거론되던 관련 연구기관의 통폐합작업은 1984년 12월 29일에 열린 제48차 경제장관협의회에서 한국전기통신연구소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의 통합을 의결함으로써 오늘의 한국전자통신 연구소(ETRI)를 탄생시켰으며 당시 전기통신 연구소가 수행하던 전기 부문은 분리, 현재 한국전기연구소로 이어져 오고 있다. ETRI는 그 후 올해초 SERI를 흡수한 것을 제외하고는 통폐합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그 소속이 1992년에 과기처에서 체신부로, 1995년에 다시 정보통신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이같은 통폐합 과정은 전자기술과 통신기술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결과적으로 ETRI의 출범은 당시까지 제 각각의 길을 가던 전자(컴퓨터와 반도체) 부문과 통신 부문이 기술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합쳐진 결과로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기술 개발에 대한 노력은 많은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하이테크 혁명'의 바람은 컴퓨터 · 반도체 · 통신 등 개별적으로 발전해온 기술들의 융합을 부채질했다. 통신기술은 더 이상 음성통신에만 그치지 않고 데이타 · 영상 등의 다양한 정보를 송수신하는 이른바 ‘정보통신’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컴퓨터 · 반도체 · 통신기술의 결합을 예고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정부 부처가 서로 다른 연구기관에서 이들 기술들을 개별적으로 개발하던 체제를 하나로 통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시대적 요구였다.

전자기술연구소와 전기통신연구소를 합친 ETRI의 탄생은 따라서 전자와 통신이 결합한 제3의 기술. 즉, 정보통신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세계 정상 연구소로의 도약

ETRI 하면 누구나 맨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전전자교환기 (TDX)이다. 국책연구과제의 성공 사례를 거론할 때면 어김없이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TDX이다. TDX의 개발과 상품화는 한국이 단기간에 선진국 기술 수준에 접근해낸 모범적인 기술 개발 사례로 기록된다.

1986년 2월 28일 우리 손으로 개발한 TDX-1이 무주 · 가평 · 전곡 · 고령 등 4개 지역에서 일제히 개통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10번째 전전자교환기 개발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고,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년간 연인원 1,300명의 연구인력과 56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TDX-10은 ETRI가 세계 정상 연구소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TDX-10은 현재까지 국내 통신망의 주력 교환기로 자리잡아 매년 2천억원의 외화를 절약하게 했을 뿐 아니라. 대우통신 · 삼성전자 · 엘지정보통신 · 한화전자정보통신 등 이른바 교환기 4社가 우리의 통신기술로 세계를 누빌 수 있게 한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TDX의 개발은 또 국내 통신기술이 선진국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는 결국 선진국들의 기술패권주의에 맞서 CDMA 이동통신시스템 개발에 성공, 세계 통신시장에 당당히 명함을 내놓을 수 있게 만든 배경이 됐음도 부인할 수 없다.

ETRI를 상징하는 것은 이처럼 TDX, CDMA 등 통신기술 분야임에 틀림없지만 반도체, 컴퓨터 등 전자기술 분야와 전자와 통신을 결합한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의 업적도 빼놓을 수 없다.

메모리반도체는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임을 자신하는 분야로 이것 역시 ETRI가 중심이 된 작품이다. 1986년부터 삼성반도체통신과 금성반도체, 현대전자산업 등과 공동으로 시작한 메모리반도체 프로젝트는 4M DRAM에서부터 6M, 64M, 256M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 지금은 차세대 초고집적 메모리반도체인 1G DRAM을 개발하고 있다.

非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도 각종 주문형반 도체(ASIC)는 물론 광소자용 화합물반도체와 이동통신 수요에 대응한 갈륨비소 화합물반도체 소자들을 잇따라 개발, 비메모리 반도체기술의 축적을 선도하고 있다.

컴퓨터 분야에서도 ETRI는 행정전산망용 주 전산기 타이컴 Ⅰ · Ⅱ의 개발에 성공해 중형컴 퓨터의 국산화시대 개막을 주도하였을 뿐 아니라, 앞으로 대형컴퓨터의 개발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등 컴퓨터산업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 할을 수행했다. 행정전산망용 주전산기 외에도 지능형 멀티미디어 컴퓨터 개발, 분산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등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 했다. 1994년 7월에는 멀티미디어 워크스테이션 (콤비스테이션)의 개발을 완료했으며, 1994년 2월부터는 국산 주전산기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고속 병렬컴퓨터 공동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기초기술 분야의 성과도 커

이와 같은 제품 개발 외에도 ETRI가 세계 정상 연구소로의 도약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온 기초기술 분야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988년 신경망 모델 연구, 광신호 처리 연구, 유기박막 연구, 초전도체 연구, 반도체 단원자층 증착 연구 등 7개 과제를 수행하면서 기초 기술연구부를 출범시킨 ETRI는 1991년 신경망 칩. 신경망 컴퓨터를 시현하고 고온초전도박막, 고주파수동소자, 광교환용 광신소재 합성, 유기물 분자박막장치 등을 개발하는 데 잇따라 성공함으로써 기조과학 분야의 연구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기초기술연구부는 이밖에도 피코초 극초단광펄스 생성, 홀로그램 광논리 개념 창출, 광교환, 완전 광통신 기본 개념 창출, 전자의 양자 파동 현상 규명. 인공조격자 생성 등에 이어 저전력 고출력 표면방출 마이크로 레이저 시현, 10G급 마이크로파 고속 양자소자 창출, 유기물 고분자를 이용한 능동 및 수동 편광 조절기 소자 등에 이르기까지 날로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ETRI의 20년 역사는 이처럼 눈부신 성장의 역사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그 동안 ETRI를 지탱해 온 경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ETRI도 체질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우선 내년 2월 타결을 목표로 진행중인 WTO 기본통신협상은 국내 통신시장의 전면 대외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은 더 이상 정부출연연구소에 돈을 대고 연구소가 개발한 표준 제품을 똑같이 생산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이제 자본과 기술을 충분히 축적했음을 자신할 뿐 아니라 더 이상 정부출 연연구소의 기술에만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그 동안 주로 출연연구를 통한 기술 개발에 의존하던 한국통신을 비롯한 통신사업자들이 자체 연구 기능을 확보해 나가고 있으며, 국내 통신시장 자체의 전면 경쟁체제로의 재편은 출연연구소의 역할이 바뀌어야 할 때가 됐음을 말해준다.

이같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ETRI를 비롯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기능 재정립에 관한 논의가 1990년대에 들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혹자는 자금 출연一공동 개발一표준화一기술 전수로 이어지는 국책연구과제의 수행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정부출연연구소는 기업이 수행하기 어려울 만큼 실패 위험이 크고 장기적인 투자가 계속돼야 하는 기초 기술, 핵심기반기술 개발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ETRI가 개방된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 출연'이라는 딱지를 떼고서도 과제 수탁고가 넘칠 만큼 경쟁력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연구소에 비해서도 ETRI는 맨 먼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초고속정보화시대 기술 개발의 선도자가 돼야

이같은 시대적 요구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누구보다 ETRI 자신이다. ETRI는 ‘기술, 분야에서의 전면경쟁체제 아래에서도 여전히 한국의 전자 · 통신 분야 최고 연구소의 지위를 유지하고 나아가서 세계적인 연구소의 대열에 들기 위한 싸움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효율성 ·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PBS)도 ETRI는 일찌감치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기술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없다면 연구소의 존재 이유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기관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의 하나인 지적재산권의 경우 ETRI가 공을 들이는 분야 중 하나이다. 특허 관련 업무를 전산화하고 대외유통망을 형성하며, 조직과 인력을 확장하고 특허청의 전자출원에 대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Patent-2000’ 계획은 ETRI의 지적재산권 관리정책의 핵심이다.

지적재산권 관리에 이처럼 심혈을 기울임에 따라 1992년의 경우 특허출원이 국내 350건, 국제 19건, 컴퓨터 프로그램 등록이 381건이던 것이1995년에는 특허출원 국내 1,034건, 국제 178건, 컴퓨터 프로그램 등록 1,676건에 이르러 1994년도에 ETRI는 국내 특허 다출원법인 6위. 1995년 상반기 다등록법인 5위의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이로 인해 1995년 9월 12에는 특허 출원 3,000건, 등록 1,000건을 돌파하기도 했다.

국제공동연구를 확대하고 외국 연구소와의 기술 교류를 강화하는 것 또한 ETRI가 세계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주요 정책 중의 하나이다. 1992년의 경우 한 해 동안 4건의 국제공동 연구계약을 체결했으나 1993년에는 11건, 1994년에는 26건으로 늘어났다. 또 1995년에는 11개 기관과 14건의 연구과제에 대해 국제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연구소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길에는 이밖에도 다양한 국제기구활동을 들 수 있다. ETRI는 정보통신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는 국제기구인 ITU, ISO 등을 중심으로 표준 제정과 표준화 기술의 연구활동에 참여해 왔다. 1993년 3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ITU WTSC 회의에서 임주환 정보통신연구센터장이 TSS SG7 부의장에 피선된 것을 필두로 ATM 포럼. DAVIC 등 각종 국제 표준화에서 ETRI 연구원들은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1970년대의 설립기와 1980년대 통폐합 이후의 도약기를 지나 이제 설립 20주년을 맞는 ETRI는 2000년대 초고속정보화시대 기술 개발의 선도자가 돼야 할 것이다. ETRI가 추구하는 IMPH( Intelligent, Multimedia, Personal, Human)의 이념이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어 풍요한 미래 사회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