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성이 가득 묻어나는 시인 고정희의 '가을편지'

글. 고정희

가을의 감성이 가득 묻어나는 시인 고정희의 '가을편지'

 

 

 

 

여러분은 '가을'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소복이 쌓이는 낙엽과 선선한 바람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산문 한 편이 이어서 떠오르네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께 가을과 잘 어울리는 산문 한 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시인 고정희자신의 선배인 '시인 신달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제목은 '가을 편지'입니다.

친한 친구들과 만났어도 지독한 소외감이 들어, 눈물 나도록 외로웠던 기억이 있는데요. 시인 고정희는 시인 신달자에게 붓을 들어 이런 외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산문인데도 보고 있으면 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잔잔히 흘러내리는 글들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가을 편지'. 그럼, 지금부터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가을편지>

-신 선배님께

보내주신 아름다운 산문집을 받고 너무 크고 벅찬 기쁨에 젖었습니다.
시인은 모름지기 글에는 능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만 어쭙잖은 시에 비길 바 아닌 선배님 산문의 편편
그 고독과 우수 어린 방랑을 직감하면서 많은 위안과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지금은 아주 늦은 밤입니다. 외출에서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문득 선배님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또 미루다가 답장이 늦어지면 안 되겠기에 이 밤 선배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오늘 밤 저는 많은 쓸쓸함을 안고 귀가했습니다. 선배님은 더욱 잘 아시겠지만 평소에 친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도 사실은 울고 싶도록 고독한 소외감 같은 거 있지요.
꼭 그것이 필요할 때는 주어지지 않고 안 줘도 되는 자리에만 무더기로 주어지는 그런 인정 같은 거 말입니다.

저는 그런 외로움 속에서 시종일관 들러리로 앉아 있다 돌아왔지요.
시골서 올라온 친구가 편히 묵고 갈 방 한 칸 없는 저로서는 저보다 훨씬 잘 사는 선배님께 그 친구를 돌려드리고 돌아왔습니다.
느슨한 빗방울이 제 눈물처럼 외로운 귀갓길을 하염없이 젖어내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에너지라는 것을 생각하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편한 방식으로 서로 다른 성을 구축하며 살아갈 거라 생각하면 왜일까요? 그다음이 외롭고 고달픕니다.

요즘 너무너무 바쁘시겠죠? 그러더라도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가을이 가기 전에 우리 차 한잔 나누면 어떨까요? 제가 차를 살게요. 문화방송국 부근의 난다랑에서 말이에요. 그럼 안녕.

 


-1982년 11월 3일 정희 올림

 


 

편지에는 상대방의 새로 나온 산문집에 대한 감상이 적혀 있는데요~ 넘치지 않는 예찬과 정겨운 축하의 말들. 그리고는 쓰는 사람의 내면의 풍경이 그려집니다. 늦은 밤인데, 자기는 오늘 '많은 쓸쓸함을 안고 귀가'하여 울고 싶도록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불필요할 때만 주어지는 인정의 어긋남 같은 것에 대하여 지금 '선배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붓을 들었다는 내용입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만나자는 제안으로 이 편지는 끝납니다. 하지만 산에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이승을 떠난 저자는 이제 누구와도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정담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 되지요. 이승을 떠나기 전, 맛있는 찻집에서 사랑하는 선배와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가셨을지 궁금해집니다. 가을, 낭만과 운치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이 밀려드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친구에게 편지 한 편 적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혹시 외로움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