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 궁사’ 김제덕의 금빛 외침

‘파이팅 궁사’ 김제덕의 금빛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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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궁사’
김제덕의 금빛 외침

역대 대한민국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최연소지만 당차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고요한 양궁 경기장에서 우렁차게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김제덕(17·경북일고)이 2020 도쿄올림픽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글. 최희진 경향신문 기자

‘파이팅 궁사’ 김제덕의 금빛 외침

재능 발견 후 거침없는 성장세

김제덕이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전 및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까지의 여정은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만큼 극적이었다. 

양궁 명문인 경북 예천초등학교에 다니던 김제덕은 3학년이던 2013년 친구와 장난처럼 양궁부에 발을 들였다가 재능을 발견했다. 2014년 선수로 변신한 그는 2015년 전국남녀 초등학교 양궁대회 남자부 금메달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6학년이던 2016년에는 전국남녀 양궁종별 선수권대회 초등부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를 땄고 같은 해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며 ‘신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해 SBS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 출연하기도 했다.

예천중학교로 진학한 후에도 김제덕은 거침없었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금메달이란 금메달은 모조리 땄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2019년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 양궁에는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궁사들이 태극마크를 위해 양보 없는 대결을 펼친다. 김제덕은 살벌한 경쟁 속에서도 1차 선발전을 14위로 통과했다. 

그런데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김제덕은 쉬는 날도 없이 학교 훈련장에 나가 성에 찰 때까지 활을 쏘던 연습벌레였다. 강도 높은 훈련이 어깨충돌증후군 증상을 초래했다.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는 듯했던 그때,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올림픽이 1년 연기됐다. 올림픽이 예정대로 2020년 개최됐다면 우리는 활시위를 당기던 김제덕의 다부진 표정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기가 막힌 우연과 타이밍이 김제덕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무명의 젊은 피가 대표팀 에이스로

공정하기로 명성이 높은 대한양궁협회는 1년 연기된 올림픽을 위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원점부터 다시 치렀다. 종전에는 기존 국가대표들에게 1, 2차 선발전을 건너뛰고 3차전부터 참가할 수 있도록 했으나 이번엔 모두가 1차전부터 참가하도록 했다. 이런 시스템이 김제덕에게 기회가 됐다. 김제덕은 쟁쟁한 형들을 제치고 ‘바늘구멍’을 통과해 태극마크를 차지했다. 

태극마크를 단 후에도 경쟁은 계속됐다. 도쿄올림픽에 양궁 혼성 종목이 처음 채택됐는데, 양궁 대표팀은 혼성전 출전 선수가 미정인 상태로 도쿄에 도착했다. 양궁협회는 올림픽 랭킹라운드(예선)를 혼성전 선수 선발의 지표로 삼았다. 올림픽 현장에서도 경쟁을 붙여 점수가 가장 좋은 선수를 혼성전에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김제덕과 안산(20)이 각각 남녀부 1위를 차지하고 혼성전 출전 티켓을 거머쥐었다. 

김제덕은 혼성전 도중 쉼 없이 “코리아 파이팅!”을 외쳤다. 본인 차례가 돌아와 사선에 섰을 때는 긴장한 기색 없이 대담하게 슈팅해 10점을 쐈다. 금메달 시상대에 오른 17세 천재 궁사는 실력과 태도 면에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고도 남을 만한 매력을 발산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진혁(40), 김우진(32)과 단체전에 출전했을 때도 김제덕은 베테랑들에게 밀리지 않는 자신감을 앞세워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2024년 파리올림픽, 금빛 외침 기대

김제덕은 ‘소년가장’이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고 아버지는 뇌출혈이 세 차례 찾아와 몸의 왼쪽에 마비 증상이 있다. 17세는 아직 부모의 우산 아래 있어야 하는 나이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김제덕은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입장”이라고 의젓하게 말한다. 그래도 햄버거와 망고,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여느 10대와 다르지 않다. 3년 후면 2024 파리 올림픽이 개최된다. 김제덕의 “파이팅!” 소리와 애국가가 파리에서 울려 퍼질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