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느 때 찾아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우체국이 있다고 하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평소 경직되어 있다고만 생각해온 우체국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밝고 깨끗한 환경에 음악까지 들을 수 있으니 분위기 좋은 어느 커피전문점 정도로 착각되기도 한다. 더욱이 ‘어서 오십시오.’ 하는 친절한 여직원의 인사말이 상냥한 미소와 함께 방송을 타고 나오면왠지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정말 잘못 들어왔나 싶어 주변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우체국이 틀림없다.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4동에 위치해 있는 서면우체국 이곳은 서면지역 주민들에게 우편 및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편안하고 즐거운 휴식 공간도 마련해 두고 있다. 서면은 지리적으로 부산역 • 동래 • 사상공업단지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철물상가 • 전자상가단지와 금융가 및 대형 재래시장이 혼재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의 하나이다. 또한 부산시가 팽창함에 따라 위치적으로 중앙에 자리잡게 되어 현재는 부산시 부도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곳에 서면우체국이 개국된 것은 1992년 1월 부산진구 전포2 · 4동, 부전1 · 2동 및 범전동 일원을 관할하고 있는 서면우체국은 6급 주사국으로서 1만 1,600세대 4만여명의 주민들에게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면우체국이 개국되기 이전, 서면지역에는 부전우체국(현 동부산우체국)이 유일한 우체국이었으며 부산진전화국 건물 내에서 공중실을 같이 사용하는 등 고객들에게 매우 불편을 주고 있었다. 이에 부산체신청에서는 서면지역 주민들이 우체국을 이용하는데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계획 아래 이 지역을 동서남북으로 4동분하여 4개 우체국(동 : 전포동, 서 : 부전1동, 남 : 부전2동, 북 : 서면)을 개국하였다.
‘하면 된다’ 는 신념으로 뛰어들어
1966년부터 체신공무원을 시작한 白泰文 서면우체국장은 부산전신전화국 • 마산우체국 • 동래우체국을 거쳐 1990년 부산 대연4동우체국장을 역임했다. 그 후 1992년 1월 서면우체국장에 발령을 받아 초대 국장으로 부임했다.
'처음 발령 소식을 들었을 때 제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면우체국은 신설국일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금융기관들이 밀집해 있어 과연 제 능력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서 부딪치며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했고, 와서 지내는 동안 여기에서 남은 정열을 다 쏟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나 개국 초기에는 막상 부딪치며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우선 15층 대형 오피스텔에 자리잡은 우체국 건물내에, 옆에는 부산에서 가장 큰 은행인 부산은행의 서면 지점이 이전하였으며, 위층에는 증권사 1개, 보험 회사 4개 등 금융기관이 들어서서 고객 유치를 위한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됐다. 백국장은 다른 금융기관보다 먼저 개국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3일만에 집기류를 들여놓고 창구를개설하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다른 금융기관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경쟁에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직원들의 역량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개국 당시 우체국 직원은 국장을 포함하여 모두 13명. 이 중에는 창구업무를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신규자가 무려 6명이나 되어 업무처리가 더디고 고충사항이 많았다.
또한 직원들이 부산 외에 양산 • 창원 • 거창 등 여러 곳에서 모여 구성되었기 때문에 직원들간의 단합에도 애로가 있었다.
처음 들어선 서면우체국은 공사가 완공되지 않아 흙 먼지와 각종 건축자재들로 가득했고, 내부시설도 완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개국하자마자 온라인 창구는 매일같이 줄을 선 고객들로 붐볐고, 우표창구 여직원은 하루 종일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항상 일어선 상태에서 근무하였으며, 고객들도 차례를 지키지 않으면 20~30분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아직 체계적인 조직이 완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직원 수에 비해 과다한 업무량으로 인해, 밀려오는 고객에게 친절봉사라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매일같이 고객과 우편물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친절봉사만이 살 길
다른 금융기관과의 경쟁, 처음 만난 인연에 의한 낯설은 인간관계, 생소한 업무, 과다한 업무량, 열악한 시설 등 신설국인 서면우체국이 헤쳐 나가야 할 난제는 내외적으로 산적해 있었다.
백국장은 이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원간담회 때마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의욕'과 '하면 된다'는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고, '부산시내 우체국 중 제일 일을 많이 하고 제일 친절한 우체국이 되자'고 독려했다.
개국 1개월이 됐을 때는 「우리의 다짐」이라는 글을 써서 신설국의 어려움을 다함께 극복해 나가자고 전직원이 서명과 함께 결의했다.
"우리국은 같은 건물에 옆에는 은행, 위층에는 보험회사 • 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6개가 있어 노출된 공무원의 자질과 친절 등을 보고 있기 때문 에 자기의 몸가짐을 잘하고 고객에게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체신공무원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열심히 일하여 슬기롭게 현실을 헤쳐나가 좋은 결과가 오기를 같이 노력합시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다짐」은 개국 100일과 반년, 1주년째 다시 결의했고, 2주년째 마감하게 되었다. 이 같은 백국장의 독특한 의식개혁 방법은 큰 성과를 거두었고 직원들이 의식의 대전환을 이루는데 많은 보탬이 되었다.
의식개혁이 일단 긍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이를 바탕으로 친절봉사 교육에 박차를 가하였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친절봉사밖에 없기 때문에 더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백국장은 '우체국을 내 집같이', '모든 일을 내 일같이', '동료를 내 가족같이', '고객을 내 부모 형제같이'를 중점 교육 사항으로 정하고 항상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특히 '고객을 내 부모 형제같이'는 친절봉사의 핵심으로 전직원은 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생활화하라고 당부했고, 찾아 온 고객을 마치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맞이하듯 밝은 표정과 성의있는 태도로 응대토록 했다.
"저는 직원들에게 유능한 세일즈맨이 아니라 최고의 서비스맨이 되라고 주문합니다. 서비스야 말로 저희 체신공무원이 가져야 할 가장 가치있는 일이니까요."
서비스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전직원은 매일 아침 1시간 일찍 출근하여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편하게 우체국을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해 서로 토론했으며, 백국장은 수시로 창구에 직접 나가 손님들의 어려운 점이나 문의 등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창구에 6개의 마이크를 설치하여 인사 방송을 실시했다. 이는 특정인이 방송을 한다든 지, 녹음을 해둔 것이 아닌 생생한 육성으로 고객이 오는 것을 먼저 본 사람이 너 나 할 것 없이 "어서 오십시오."라고 인사하고, 용무를 다마치고 돌아가는 손님에게 "안녕히 가십시오." 하며 또 인사했다.
"지금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인사가 나오지만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인사말이 입안에서만 맴돌았어요. 그래서 서로 마주 보고 인사하는 연습을 반복했고 서로의 장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하는 등 자세와 어투, 그리고 표정까지 하나하나 교정해 나갔어요."
행정 서무를 맡고 있는 정성혜씨가 개국 당시를 상기하며 일러 주었다.
또한 다른 은행에 들러 그곳 은행에서 하고 있는 인사 방법을 보고 돌아와 서로 비교 •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친절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어 예전에 관료적이고 딱딱한 이미지를 받던 고객들도 일반 은행이나 디른 서비스기관보다 더 친절하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 방송시설을 통해 명절 때에는 적절한 인사말과 함께 우체국 특산품 주문판매를 홍보하기도 했고, 온라인 장애시라든지 칭구가 혼잡할 때 친절히 상황 안내를 하기도 해 고객들에게 친근한 우체국으로 다가섰다.
고객들이 서면우체국을 더 편하고 친근한 우체국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매일 밝고 명랑한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체국에 찾아오는 고객의 연령층이 매우 다양한 것을 감안, 동요에서부터 민요 • 클래식 • 가요 • 팝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테이프 60여개를 구비하여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에 더하여 우체국 출입구 옆에 커피자판기 1대와 만남의 장소를 설치하여 주민들이 이곳을 약속 장소로 이용하게끔 했다. 이는 특별한 용무가 없는 사람이라도 우체국을 자주 찾도록 하자는 의도였는데, 그것이 그대로 적중되어 우체국문턱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고객용도서장을 설치하고 120여권의 책을 비치해두어 오래 기다리는 고객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주민들에 대한 친절봉사와 편의 제공에 힘쓴 결과 고객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그들과 깊은 유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제는 고객들이 우체국을 위해 자그마한 정성을 보내왔다. 어떤 고객은 자기가 소장하고 있던 책을 기중하기도 했고, 개국 후 1년 동안이나 손수 꽃꽂이룰 해준 사람도 있었다. 이같은 유대관계는 특히 공과금 • 예금 • 보험 실적 향상에 큰 영향을 끼쳐 친절뿐만 아니라 실적면에서도 다른 금융기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작년도 업무실적을 살펴보면, 세입은 7억 4,600만원 목표에 7억 7,300만원으로 103.5% 초과 달성, 예금은 13억 5, 000만원 목표에 17억 1,400만원으로 126.9% 초과 달성, 공과금은 95 억원 목표에 114억원으로 120.6% 초과 달성, 보험은 1,800만원 목표에 6,300만원으로 무려 349.1%나 초과 달성했다.
올해에도 보험은 2,400만원 목표를 2월 7일 이미 달성했고, 5월 현재 6,300만원의 실적을 올려 목표치를 훨씬 앞질렀다. 어느 한두 사람이 모집을 많이 한 것이 아니고 모두 '할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기 능력만큼 정한 목표액을 전직 원이 다 달성하였다.
이렇듯 서면우체국은 친절봉사면이나 실적면에서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더욱이 6급 주사국으로서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은행과 같은 거대한 금융기관들과 경쟁해서 쌓아 올린 것이므로 더욱 값진 일이었다.
인화가 성공의 열쇠
서면우체국이 이처럼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성공하게 된 이면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 있을까. 거기에는 국장과 직원간에 남다른 애착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동료들의 경조사 때나 특히 동고동락하던 직원이 다른 국으로 떠날때는 어김없이 그간의 정을 되새기기 위해 작은 정성을 모아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백국장은 직원들의 출산시 부산청 특산물인 미역을 우편주문으로 부쳐주는 등 이런 작은 정성들이 즐거움과보람이 샘솟는 우체국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휴게실에는 냉장고 • 드라이기 • 캐비닛과 좁은 장소에 다량의 문서 • 식지 • 물품 등을 저장할 수 있는 최첨단 문서 창고인 모빌랙도 구비되어 있어 우체국온 언제나 집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곳 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이처럼 두터운 동료애와 월등한 후생시설을 갖춘 서면우체국에서 근무하는 것을 긍지로 여기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은 고객들에 대한 편의 제공에 더욱 신경쓰고 있다. 창구에 5개의 사탕바구니를 비치하여 상냥한 응대에 더하여 즐겁고 친근한 우체국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우편 담당 직원들은 상가에서 박스를 모아 고객들의 소포 포장을 도와주기도 했다. 또한 항상 열려있는 마음으로 고객의 의견이라면 어떤 것도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도에서 '사랑의 메모글'을 비치해 두기도 했다.
이런 정성과 노력 끝에 1994년 모니터요원 점검에서도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았고, 본부에서 실시한 친절봉사 부산청 최우수국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백국장은 '고객에게 만족을' '동료에게 사랑을' '자신에게 보람을'이라는 것을 금년 모토로 삼고 전직원과 함께 대국민 서비스에 한층 진력하고 있다. 그의 서비스에 대한 열의는 남달랐다. "정년퇴직시까지 서비스맨이 되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그의 진지함이 이를 반영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