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증가, 물량폭증으로 언제 터질지 몰랐던 '시한폭탄우체국'
포털사이트에 ‘화성동탄우체국’을 검색해보면 ‘배송시점’에 대한 문의가 여럿 보인다. 오늘내일 중 받을 수 있겠냐는 질문부터 이 우체국을 거치면 배송이 유독 늦는 것 같다는 불만까지. 좀 더 살펴보면 지역 커뮤니티에서 우체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집배원을 응원하는 게시글도 눈에 띈다. 고객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풍성한 우체국, 도대체 어떤 곳일까?
“2009년 경기 오산시와 화성 동부지역 집배를 총괄하는 5급관서 화성우체국으로 개국했습니다. 신도시 유입인구가 늘면서 개국 3년 만에 화성시만 관할하는 4급 총괄국으로 승격한 뒤, 동탄2신도시의 인구는 더욱 급증했죠. 2019년부턴 기존 향남우체국을 화성우체국으로 개칭하여 화성시 서부지역 총괄국으로 지정하고, 동탄신도시를 비롯한 동부지역은 화성동탄우체국으로 개칭한 이곳에서 관할하고 있습니다. 상급관서로의 승격, 관할지 분할과 국명 개칭 등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대규모 인구 증가로 인한 일들이었죠.”
개국 10년을 갓 넘긴 우체국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할지역인 화성동탄신도시는 동탄SRT 완공과 화성동탄 일반산업단지 건설 등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 남부 중심도시로 성장해왔다. 급격한 인구 유입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최근 2년간 4만여 세대가 입주하면서 새로 들어온 인구만 9만 5천 명이 넘습니다. 그러니 우편물량도 폭발적으로 늘었죠. 통상우편은 14%, 소포는 69%나 증가했습니다. 당시 우리 국 인력과 업무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물리적 한계에 다다랐죠. 당일 도착한 우편물을 그날 바로 내보내지 못하니까 여기저기서 불만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편을 초래했으니 질타를 받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엔 저희도 밤낮없이 고생하며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불과 1년 전 우체국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는 정태식 집배실장의 설명을 따라 고속 성장한 신도시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제때 나가지 못한 미배달 우편물이 더 이상 보관 장소도 없을 만큼 쌓여갔다고. 고객 민원으로 인해 화성동탄우체국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우체국’이 되고 있었다.
지역주민, 우정가족의 힘으로 시작된 우체국 정상화
연일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화성동탄우체국에 병가자가 늘면서 실제 근무하는 직원들의 업무강도도 세졌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건, 놀랍게도 지역주민들이었다.
“주문한 택배물품을 받기 위해 우체국에 내방하신 주민들께서 저희 상황을 직접 보시곤 비로소 이해해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여성 고객들께서 회원 수 25만 명이 넘는 지역맘 카페에 우체국 사정을 알리며 배달 지연을 이해한다는 내용의 글을 속속 올리고, 우체국 현황을 실시간 공유해주셨어요. 민원실 전화 통화가 안 된다는 게시글 밑엔 영업과나 지원과로 전화를 걸면 통화할 수 있다는 답글까지 달리곤 했습니다. 급기야 ‘(화성)동탄우체국 집배원 충원요청’이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오더군요. 말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고객들께 송구하고 감사하다는 우편물류과 박준영 과장. 그의 말대로 화성동탄우체국의 정상화는 지역주민들에 의해 시작됐고, 우정사업본부 차원의 조치도 뒷받침됐다. 전국 모든 접수창구에서 ‘동탄 지역으로 보내는 우편물은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 팝업이 설치됐고, 민원 전화를 응대하기 위해 우체국콜센터 상담사 2명이 화성동탄우체국에 임시 상주하며 수화기를 놓지 않았다. 부족한 작업장을 확보하기 위해 청사 구조를 변경하는 등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변 우체국의 지원이었다.
"쌓여있는 물량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다른 국에 도움을 청했더니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오산, 수원, 동수원, 서수원우체국 등 인근 우체국 집배원들이 2주 연속 주말을 반납하고 배달을 지원했습니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정이고, 우정가족의 힘이라는 걸 느꼈어요."
우정사업본부를 거슬러 올라가 우정청 역사 이래 처음 있을 법한 협업이었다. 포괄적인 업무 지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화성동탄우체국의 상부기관인 경인지방우정청이 주변 국의 베테랑 집배실장 3명과 집배전문관을 파견하여 배달순로를 포함한 업무환경을 정비하며 집배의 효율성을 높였다. 안양우체국의 정태식 집배전문관이 화성동탄우체국에 온 것도 이때였다.
“여기 와보니 다른 국에 비해 집배원 평균연령이 낮지만 다들 근속연수가 현저히 낮아 업무 요령은 부족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우편물 폭주에 대한 대처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죠. 집배코드와 구분방법을 개선하여 공동작업 시간을 줄였더니 출국 시간이 2시간이나 당겨졌어요. 이젠 오전 9시쯤 휑한 작업장을 볼 때면 업무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걸 실감합니다.”
우체국 혁신을 함께 추진 중인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화성동탄우체국의 집배실장으로 ‘눌러앉았다’며 웃는 정태식 실장. 옆에 있던 유재영 물류실장의 얼굴도 덩달아 환해진다.
모두가 3박 4일 여름휴가 떠나는 행복 우체국을 향해
이들은 작업공간을 개선하고 인력구성을 재편하며 혁신을 이어간다. 이륜차 주차장의 발착시설을 개선하여 작업장으로 사용 중이고, 연결공간의 창고를 철거하여 작업동선을 줄였다. 6개로 운영되던 집배팀은 대팀제로 조정하고 신도시 집배구를 3개 팀에 배정, 집배업무 평준화를 이뤘다. 작년 10월부턴 ‘우편물류 효율화 추진반’을 구성하여 업무개선, 환경개선, 복무관리, 인력관리, 지원협력 등 5개 분야의 물류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일터가 즐거운 행복 우체국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1년 전 이맘때를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안정화 단계입니다. 당시 하루 1만 3천여 통의 택배를 처리하지 못했던 건데 이젠 2만 통도 문제없어요. 그래도 혁신은 계속됩니다. 날씨 영향 안 받고 작업할 수 있도록 공동작업장을 조만간 실내로 옮길 예정이에요. 올해 목표요? 전 직원이 3박 4일 여름휴가 떠나는 우체국이 되는 거죠!”
화성동탄우체국 혁신의 최종 목표는 모두가 일하고 싶은 명품 우체국이 되는 것. 다 함께 추진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온기가 배어 있기에 이들의 혁신은 이미 명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