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마음, 정성으로 빚어온 명주
“함양 솔송주는 지리산의 맑은 물, 함양의 좋은 쌀, 푸르고 향기로운 송순과 솔잎, 누룩에 선한 마음과 정성을 더해 완성하는 술입니다. 술을 빚는 마음은 비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이나 다름없어요. 똑같은 재료, 똑같은 방법으로 담가도 발효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지거든요. 발효는 정말 전적으로, 하늘의 기운에 달린 일이에요. 스스로 그러한 자연, 우주의 법칙을 따르죠. 그래서 저는 늘 좋은 마음, 정갈한 정신, 겸손한 자세로 술을 빚으려고 노력합니다. 40여 년 술을 빚으며 변함없이 지켜 온 단 하나의 마음이에요.”
‘좌안동 우함양(左安東 右咸陽)’. 조선시대 영남 유학자들의 맥을 논할 때 사용하던 표현이다. 그중에서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하동 정 씨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으로 오랜 시간 선비들의 고을이라 불려왔다. 지리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나즈막한 마을, 계곡을 따라 옹기종기 늘어선 다섯 개의 정자에서 선비들은 학문에 정진하는 동시에 시와 풍류를 즐겼다. 그리고 그 운치 있는 자리엔 늘 푸르고 곧은 선비의 절개를 꼭 닮은 명주, 솔송주가 함께했다.
솔송주가 품은 푸르고 곧은 솔의 기운을 나눠가진 건 비단 선비들뿐만이 아니었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정성과 진심을 담아 솔송주를 빚어왔다는 박흥선 명인이야말로 그 기운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조선 5현(朝鮮五賢) 가운데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500년 된 고택에 시집온 16대손 며느리, 박 명인은 시집올 당시만 해도 누룩 냄새는커녕, 술이라면 입에 대기만 해도 가슴이 쿵쿵 뛰고 얼굴이 붉어지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냉장 시설조차 변변치 않던 시절, 시어머니가 서늘한 방 안에 가득 담가둔 술 항아리를 보며 기분 좋은 설렘을 느꼈다.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를 말살하려 드는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술을 담가 꼭꼭 숨겨두며 명맥이 끊길까, 노심초사했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며느리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느새 가문의 술, 지리산 솔송주의 푸른 맥을 이어가겠다는 굳은 결심이 섰고, 지금은 자부심을 가지고 솔송주를 이어가는 명인이라 불리고 있다.
“술이요? 지금도 한 잔도 못해요. 하지만 시집와서 솔송주를 마셨다면 주당이 됐지, 이렇게 우리 문화를 이어가는 명인이 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술을 못하니, 혀끝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만드는 동시에 귀를 활짝 열고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자 노력했어요.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또 사계절. 몇 년 내내 술을 직접 담그고 온몸으로 느끼다 보니 저만의 기준과 주관, 레시피가 생겼죠. 지금은 한 병 한 병, 술 마다 담아내는 자긍심과 보람이 저의 전부예요. 참 맛 좋다, 하며 거듭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정진, 또 정진하려고 하죠.”
시간과 호흡하며 짙어지는 솔향
매년 4월에서 5월,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개평마을 인근 지리산 자락에 푸른 송순이 돋아난다. 1년에 딱 보름 가량, 그 송순을 채취하고 잘 말리는 것이 솔송주 담그기의 시작이다.
“고두밥을 짓고 누룩을 섞어 독에서 발효해 밑술을 만들어요. 거기에 다시 식힌 고두밥과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 살짝 찐 송순, 솔잎을 넣어 보름 정도 숙성하죠. 천천히 숙성해서 채와 창호지에 거른 다음 다시 서늘한 곳에 20일에서 한 달가량 보관합니다. 그 독을 열어 떠내는 맑은 윗술. 그게 바로 솔송주예요. 숙성되는 동안 자연이 깃들고, 정성이 깃들어 깊은 맛이 나죠.” 발효와 숙성은 술맛을 결정한다. 그래서 술은 시간과의 주고받음, 하나의 호흡이다. 증류주인 담솔이야 말로 시간을 견디며 탄생하는 술이다. 13도의 약술, 솔송주를 증류하고 냉각하여 한 방울, 한 방울 다시 받아내는 그 과정 끝에 완성되는 담솔은 40도의 고도주지만 목넘김이 부드럽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맛을 낸다. 명인은 이 숙성과 발효의 과정에서 노하우를 발휘한다. 신중한 태도로 당분을 조절하는데, 당분이 없으면 너무 독한 술이 되고 많으면 많은 대로 고유의 술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균형과 조화를 고려한 결과 만날 수 있는 잔잔하고 기품 있는 솔송주의 맛은 명인의 기도와 매일매일 날씨를 살피고 온도를 조절하는 정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술잔을 받은 고객들이 상쾌한 솔향과 부드러운 목넘김, 깔끔한 뒷맛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그 정성에 있다.
물론 힘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것의 한계를 느낀 박 명인이 1996년 대량생산에 도전하기 위해 양조장을 차렸을 때,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으나 집에서 술을 빚는 것과 양조장에서 대량으로 빚는 것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술이 발효되며 내뿜는 온도를 조절하지 못해 열 독 가량의 술을 버리기도 했다. 쌀 100가마에 해당하는 양. 절망할 시간도 없이 밤새 책을 보고 술독을 뒤적이며,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렇게 밤새 술독과 씨름을 하고 나면 온몸이 다 술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꿋꿋이 그 시간을 견뎌냈다. 그 결과 명인은 다시 방법을 찾았고, 안정감 있게 500년 가양주의 깊은 맛을 재현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노력은 전국 각지에서 솔송주를 기다리는 고객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어가는 전통
“아마 1999년부터였을 거예요. 우체국쇼핑 덕분에 전국에 우리 술을 기다리는 고객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죠.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명절이 다가오면 박 명인의 남편은 새벽부터 우체국 직원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고 늘 7~900병의 주문과 함께 돌아와, 아르바이트생을 다섯 명씩 두며 주소를 하나하나 수기로 써 붙였다. 팔이 마비되고 밤을 새도 모자랄 정도로 주문량이 많았지만, 그 과정엔 늘 설렘이 있었다.
“빠르고 정확했던 우체국쇼핑이 항상 고마웠어요. 지금도 명절이면 우체국쇼핑을 1순위로 생각합니다. 전국에서 우리 술을 알아준다는 자긍심을 함께 만든 최고의 파트너니까요.”
세월이 흘러 고객을 만나는 방식은 더욱 다양해졌다. 특히 2015년 박 명인의 술도가, 명가원이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되면서 다양한 고객과 직접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전통주에 관심을 갖고 멀리서 온 고객들을 정성껏 대접하는 박 명인. 함께 술을 내리거나 칵테일을 만들고, 솔송주를 나누는 것도 모자라 여운이 가시지 않은 손님들은 자고가라며 집 한 칸을 내주기도 한다.
“미국, 캐나다 가릴 것 없이 다양한 곳에서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죠. 어떻게 맞아야 할지 항상 고민하지만 결론은 똑같아요. 온 마음 다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걸 전부 드리는 것. 진심은 통하는 듯 대체로 정말 좋아해 주세요. 지금처럼 소박하지만 우리답게 솔송주의 매력을 전한다면, 더 많은 분들이 우리 술을 찾아 마음으로 느끼고 명맥이 이어지지 않을까요? 주거니 받거니, 술로 전하는 진심을 다하기 위해 저는 계속 노력할 뿐입니다.”
모든 나무가 그렇듯 솔송주의 재료인 소나무 역시 뿌리가 튼튼할수록 더 곧고 향기롭게 자란다. 박 명인은 항상 그 뿌리를 생각하며,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켜나간다. 바른 재료로, 정직한 노동으로, 마음이 용납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술을 담그는 것. 그러면서도 고객과 만날 때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유로이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처럼 부드러워지려 한다. 그렇게 탄생하는 지고지순한 맛. 진화를 거듭하는 디자인과 서비스. 솔송주 한 병이 탄생하기 위해 타협을 모르고 맑은 정신으로 정직하게 술을 빚는 한 사람, 박흥선 명인이 있다.
솔송주 박흥선 명인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7호
안심쇼핑 1번지 우체국쇼핑을 통해 박흥선 명인의 정성이 가득 담긴 상품을 구입해보세요.
인터넷 : https://mall.epost.go.kr 전화 : 1588-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