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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의 열정, 최고의 우전차를 재현해내다
삼국사기를 보면 흥덕왕 3년(서기 828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 종자를 가져와 따뜻한 지리산 화개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하동이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임을 증명하는 자료다. 우리나라의 3대 산지로는 화개, 보성, 제주도가 있는데, 이 중 화개차만이 야생 토착화된 독특한 차다. 천 년을 이어온 화개차는 서로 열성 번식하여 차마다 찻잎 모양과 색 등이 다르고 품종이 들쭉날쭉한 것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차의 본고장인 지리산 화개동에서 태어난 김동곤 명인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차를 접하며 자랐다. 김 명인의 할머니는 감기가 들면 차에 생강을 넣어 폭폭 삶아 주셨고, 배가 아프다 하면 칡을 넣어 삶아 주셨는데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나았다. 차를 배울 때는 쌍계사 스님과 교류하며 자연스레 차와 가까워졌다. 그에게 있어 차는 최고의 음료이자 음식이자 약이었다. 집안 대대로 차를 마셔왔지만 김동곤 명인이 본격적으로 차 공장을 설립한 것은 1975년에 들어서서다. “군 생활을 마친 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직접 차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쌍계명차를 시작하며 장사꾼의 마음으로 차를 파는 게 아니라 차 문화를 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지리산의 화개 문화와 다도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손자까지 13대째 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김동곤 명인이 차 농사를 짓고 공장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43년이 흘렀다. 차에 대한 명인의 고집은 ‘우전차(무쇠솥덖음녹차) 제조 기능 보유자’란 타이틀로 연결되었다. 우리나라 고전을 보면 차는 우전차가 가장 좋다고 쓰여 있는데, 김 명인은 그 문헌 속 우전차를 완벽히 재현해낸 것이다. 그 전까지는 우전차를 제대로 재현하거나 만든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다. 이후 일본의 쪄서 만드는 기계가 들어왔지만 김 명인은 오직 무쇠솥에 덖는 전통 덖음차만을 고집했다.
2005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우전차 제조 기능과 가치를 인정받았고, 국내 최초로 국제명차품평대회에 출전하여 최고상인 대상과 금상을 수차례 수상했으며, 차와 지리산의 문화를 엮어 책을 쓰기도 했다. 차와 관련된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서는 그는 일흔하나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화개 지천으로 널려 있는 차를 특산물로 만들고 차 문화를 알리기에 힘쓴다. 차에 대한 노력과 애정은 그를 명인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다. 2006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28호’로 지정된 김동곤 명인은 우리 전통 차 문화를 어떻게 고양시키고 전승시키며 보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명감으로 차 연구와 문화 발전에 더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 특산물을 넘어 전통과 역사를 지켜나가다
40여 년간 쌍계명차를 이끌어온 명인에게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2006년 차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차의 소비가 대폭 감소했지요. 타격을 받아 곤두박질칠 때 커피와 홍차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우리 차가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차를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가슴 아프고 어려웠던 시기죠.”
농약 사건이 일어났던 그때, 우리나라는 수준 높은 차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차의 소비나 차를 소비하는 고객층은 아주 적었다. 일본이나 중국은 농약의 함량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 그 기준을 넘지 않으면 농약을 사용해도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농약의 표준이 없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나라는 무조건 유기농으로 재배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김동곤 명인은 100% 유기농으로 키운 우리나라 차가 수입차에 밀려 사랑받지 못하는 현실이 야속하다며,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말한다.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라면 우리 것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이에 그는 ‘전통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명인은 신품종을 심지 않고, 화개차만을 전통 그대로 발전시켜 많은 이야기를 만들자는 생각에 전통을 지켜나가려 했다. 화개 사람 모두 명인과 한마음이었기에 지금의 화개차가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었으리라.
지역의 특산물을 넘어 차의 역사와 문화를 살리고자 한 김 명인은 차의 등급을 세분화하고 더욱 고급스러운 차를 만들고자 했다. 쌍계명차에는 녹차 이외에도 도라지차, 황도라지차, 우엉차 등 다양한 차가 판매된다. 이러한 판매의 시초에 우체국쇼핑이 있었다. “1986년 우리나라에서 우편판매라는 것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부산과 하동 우체국에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차의 고향인 하동에서 차 제품을 내야 하는데 쌍계명차에서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때는 통신판매가 뭔지도 모를 때였는데 엉겁결에 하게 되었죠. 아마 우체국쇼핑 1회 멤버일 거예요. 처음에는 대단했었죠. 성수기나 설·추석 명절 포스터와 플래카드에 쌍계명차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명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소위 잘나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팔리는 상품은 소비자에게 검증된 새로운 상품으로 교체하고, 성수기에는 선물용으로 대용량 패키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성기와 침체기를 함께해온 우체국쇼핑과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고 부흥하기를 바라는 김 명인의 마음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화개의 집, 차와 함께한 세월을 담아내다
김동곤 명인이 말하는 차는 지리산 화개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고향이다. 화개동천에서 자라온 그에게 화개차는 생활이었다. 평소 차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화개차를 맛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바람으로 건립된 것이 바로 쌍계명차 박물관 ‘화개의 집’이다. 쌍계명차를 설립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에 들어선 차 박물관에는 차와 함께 자란 김 명인의 세월과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물관 1층에는 계단식 강의실과 차 판매장, 시음장으로 꾸며 많은 이들이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도록 했다. 2층에는 청자, 백자, 찻잔류 등 명인이 평생 모았던 것들이 전시되어 있고, 명인의 증조할아버지께서 직접 판각한 동의보감 25권 전질이 진열되어 있다고. 차 박물관에서는 전시도 보고 향 가득한 차도 마시고 창밖의 차밭을 바라보는 여유를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차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안다면 금상첨화. 김 명인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첫째로 찻잎이 좋아야겠죠. 두 번째로는 물이 좋아야 합니다. 책을 찾아보면 ‘우려 놓은 찻잎은 차의 정신이고 물은 몸이 된다. 정신이 맑아야 맛있는 차가 되고 몸이 똑발라야 차가 맛있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찻잎과 좋은 물로 차를 다려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여기에 차를 즐길 수 있는 다기가 있다면 더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김 명인은 차의 어떤 점이 좋아 평생을 함께했을까. 또한 차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으요. 그때는 참 밥도 못 묵을 때인데 산나물에 시락국(시래기국) 해서 배부르게 밥을 묵으면 임금님 묵은 수라상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맛이 있겠으요? 그래서 배부르고 난 뒤에 최고로 맛있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다 그거야. 그게 바로 차라는 거지. 그래서 선조들은 식후에 가장 맛있는 것, 식후의 일미는 차밖에 없다고 한 거예요. 차는 맑고 깨끗한 도의 음료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기대되는 쌍계명차는 명인의 둘째 아들이 대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전통을 지켜나가는 쌍계명차를 다음 세대에 맡기고 명인은 책을 쓰는 꿈을 갖고 있다. “저는 평생을 차와 함께했습니다. 죽기 전에 지리산 화개에 대한 책을 시리즈로 내는 것을 계획하고 있어요. 총 10권은 쓰고 죽을라꼬.(웃음) 그래서 우리 차 문화가 좀 잘되고, 차가 좋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좋겠어요. 허허.”
쌍계명차 김동곤 명인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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