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특별기획I]영화 같았던 19년, 우표 디자이너의 삶
전 우표 디자이너 모지원

모지원 전 우표 디자이너 인터뷰가 실린
《우체국과 사람들》 2015년 6월호
10대 시절 그녀의 꿈은 우표 디자이너였다. 우표 디자이너에게 편지를 보내 어떻게 하면 우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현직 디자이너가 몇 안 되는 매우 희소한 직업이었기에, 그 문턱은 세상에서 가장 좁은 취업 문처럼 느껴졌다. 꿈은 이루어졌고, 19년 동안 우표 디자이너 삶을 살았다. 그 시간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국내외 다양한 이슈를 한 장의 우표로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쓸 때는 호러 영화를 찍는 듯했다. 어느 날은 초콜릿처럼 달콤한 로맨틱 영화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또 다른 날은 한 시대의 역사를 담아내는 장대한 스케일의 대서사시를 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제주경관 디자이너의 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외국 유학을 떠났다. 세상을 향한 이해가 깊어질 무렵,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제주에서의 삶을 결심했다.
제주로 이주한 후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제주특별자치도 경관 디자인 팀장이 된 것이다. 제주가 보낸 러브레터를 받은 것 같았다.
우표 디자인이 평면의 예술이라면 도시 디자인은 입체의 예술이었다. 건축, 경관부터 공공 디자인, 상징물 디자인까지 아우르는 업무는 우표 디자인 못지않게 흥미로웠다. 전직 우표 디자이너로서 쌓은 세밀한 감각은 경관 디자인 업무를 더욱 심도 있게 수행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일곱 마리의 가족, 나누며 사는 삶
모 팀장이 사는 곳은 제주 도심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어느 날 주인 없는 강아지 한 마리가 집으로 찾아왔고, 그녀는 기꺼이 녀석을 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안쓰러운 유기견들을 하나둘 입양하다 보니 어느덧 일곱 마리가 한 가족이 됐다.
쉬는 날엔 작은 귤밭을 일구며 건강한 삶을 일궈나간다.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정기적인 헌혈도 시작했다. 지난해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30회 유공패 은장을 받았다. 앞으로 목표는 50회를 달성해야 받는 금장이다. 여느 여자들처럼 빈혈기가 있어서 퇴직 전까지 받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모 팀장은 말했다.

모지원 전 우표 디자이너의 첫 작품인 ‘사랑나누기 특별’ 우표

마음 캔버스에 담은 제주
제주를 우표에 담는다면 무엇을 채우고 싶으냐고 물었다.
“제주의 멋진 풍광도 좋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제주 사람’을 담고 싶어요. 제가 제주에 살면서 만났던 친절한 눈빛들, 한겨울에도 붉은 꽃이 피는 이국적인 풍경, 그 안에 녹아든 제주 4·3의 역사와 독특한 해녀 문화도 그려 넣고 싶어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캔버스에서 시작된 소녀의 꿈. 이제 그 소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정겹고 때로는 사랑스러운 선과 면. 그리고 따뜻한 제주의 색. 마치 그녀는 제주가 보낸 러브레터에 답장을 쓰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