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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던 스물넷 새색시, 매화 꽃잎을 마주하다
광양 백운산 자락에 섬진강을 끼고 빼곡히 자리 잡은 5천여 매화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3월이면 청매실농원의 매화나무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5~6월이면 꽃향기를 그대로 담은 녹색 열매를 맺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운 열매에는 홍쌍리 명인의 70여 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홍쌍리 명인은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로 잔뼈가 굵기로 소문난 열여섯 소녀였다. 키도 크고, 옷맵시가 좋아 미스코리아 나가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외모가 수려했다. 성격 또한 소탕하고 야무졌다. 그런 홍 명인을 며느릿감으로 눈여겨본 이가 바로 시아버지인 김오천 선생이다.
“시아버지는 내를 며느리 삼으려고 5년을 기다렸다 하더라고. 내 가시아버지였으면 내 같은 며느리 안 본다.(웃음) 스물넷에 부산서 온 시건방진 가스나였으니 우리 집에서는 내가 도망이나 안 가고 잘 지낼까 생각했다 하더라. 시집왔을 때는 산꼭대기에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는데, 전화도 없고 전기도 없고 몇 날 며칠을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11년을 살고 나니 인제 도망 못 가겠더라.”
어여쁠 나이 스물넷. 그러나 그녀에게는 험난한 시집살이와 고단한 육체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복되는 농사일에 아픈 남편을 보살피며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는 홍 명인. 섬진강에 몸을 던질까 무서운 생각까지 할 정도로 홍 명인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보듬어 준 것은 매화꽃의 속삭임이었다. 매화꽃 향기가 그윽하던 어느 날, 눈물을 훔치고 있는 홍 명인에게 “엄마, 울지 말고 나랑 살자”는 꽃의 목소리가 명인의 귓가를 맴돌았고, 그녀의 텅빈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다. 힘이 들 때마다 꽃과 들풀, 강과 바람이 그녀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고, 그런 마음을 글로 새기며 외로움을 달랬다. ‘어둡고 괴로운 마음 섬진강에 다 띄워 보내고 가실 때는 매화 향을 가슴 가득히 보듬고 가이소’ 그 당시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한 구절을 외우는 홍 명인에게서 어린 시절 소녀의 모습이 겹쳤다.
홍 명인은 결혼 후 힘든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그래도 광양으로 시집와 시아버지를 알게 되고, 매화를 만났기에 여태껏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말한다.
“시아버지가 계셨기에 청매실농원을 꾸릴 수 있었재. 나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었어. 시아버지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13년간 광부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밤나무랑 매화나무를 사서 광양 야산에 심었어. 이후에 내가 밤나무를 베어내고 매화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의 청매실농원이 된 거고.”
한때 주변에서는 돈 되는 밤나무를 베고 매화를 심겠다는 홍 명인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고, 시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11년 만에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지금의 청매실농원은 그녀의 고집이 이뤄낸 아름다운 결과이다.
매실에 대한 고집, 국내 최초 명인이 되다
홍 명인은 ‘매화꽃 천국을 만들면 사람들이 와서 외롭지 않겠재’ 라는 생각으로 매화나무를 심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외로움을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사를 짓느라 얼룩진 손으로 매실을 주웠는데 손이 깨끗하게 닦이는 것을 보고 매실에 궁금증을 갖게 되었고, 매실 하나를 먹으니 속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느낌을 받은 후 매실로 사람 몸속도 청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실제로 매실은 약재로 쓰일 만큼 영양이 풍부하여 농축액부터 차, 절임류 등 다양하게 쓰인다. 해독과 항균 작용으로 배탈이 났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푸른 보약’이라 불리는 매실의 효능을 미리 알아본 홍 명인은 홀로 매실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식품으로까지 개발 영역을 넓혔고, 이러한 노력은 맛좋고 건강한 매실 ‘홍쌍리 매실’로 이어지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홍 명인의 농사 철학은 매화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것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나무에 병이 생기면 약을 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뿌리째 뽑아 태워버린다. 다른 농작물들도 예외는 없다.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도 한번 병이 오면 홍 명인 손에 살아남지 못한다. “농사는 살아있는 작품이라. 흙이 밥이고 산천이 반찬이니 물도 식품도 손님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 내야재. 우리 집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무향, 무색소, 무방부제라서 유통기한이 3~4일밖에 안 된다. 내는 장사를 안 하면 안 했지 몸에 나쁜 기는 절대로 안 한다. 돈 못 벌어도 건강한 식품 만드는 게 내 고집이다.” 이러한 고집이 있었기에 국내 최초로 ‘식품명인’에 지정될 수 있었으리라.
홍 명인의 고집스러움은 판매에서도 나타난다. 명인이 손수 만든 갖가지 매실 식품들을 판매할 수는 있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명인의 식품은 가끔 난항을 겪기도 한다고. 그럼에도 건강한 식품을 판매하겠다는 고집은 절대 꺾을 수 없다고 말한다. ‘홍쌍리’라는 이름으로 매실을 판매하게 된 건 농사를 시작하고 30년이지난 뒤부터다. 홍 명인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그녀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에게 ‘감기에 좋데이’, ‘배 아플 때 먹으면 좋데이’하며 손수 발효한 매실을 손에 꼭 쥐여 보냈다. 이후 90년대에 들어 지인으로부터 판매와 유통 경로를 소개받았다. “지인이 우체국을 소개해줬어. ‘그래 팔아보자’ 했지만 속으로는 ‘우리를 받아주겄나’ 생각했지.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되어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거야. 그때는 라디오에서도 판매했는데 너무 잘됐지. 명절이면 특판이 되기도 했고. 매실로 만든 건강한 식품을 전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줄 수 있다니, 우체국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 그때 당시 ‘지금은 라디오 시대’ 를 진행하던 최유라, 이종환 씨와도 인연을 맺었지. 이종환 씨가 항상 그 소릴 했어. 어떻게 매실을 가지고 반찬을 할 생각을 했냐고 말이야. 박사도 아닌데 농사지으며 음식을 연구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
우체국을 통해 좋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는 홍 명인.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번졌다.
모두가 행복한, 매화꽃피는 청매실농원
‘매화나무에 꽃 피우니 자연은 천국이요, 이에 나는 천사로다’ 시를 읊조리듯 명인은 매화나무를 심으니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 되었고, 자신이 천사가 되었다고 했다. 혼자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쉬워 사람들과 나눴고, 그들이 꽃향기를 가슴 가득 안고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청매실농원이 탄생되었고, 꽃피는 3월이면 매화꽃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광양 매화축제’가 열린다. 명인의 바람처럼 청매실농원은 매년 100만 명이 오가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홍 명인은 다음 세대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로 마음의 찌꺼기인 미움, 증오, 욕심 이 세 가지를 섬진강에 다 버려야 해. 내 몸이 편하고 건강해야 되니까. 두 번째는 맑은 마음을 가져야 밝은 표정이 만들어져. 세 번째는 이 세상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그것이 안 되면 따뜻한 손으로라도 꼭 잡아주어야 해. 네 번째는 보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야. 이것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는데? 백만장자 돼서 뭐 하려고? 전부 구정물로 들어서는 기라.”
명인은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돈이라는 것에 얽매이다 보면 외롭고 불행해진다는 것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매실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매실 명인으로서 끊임없이 연구하고자 하는 홍쌍리 명인의 열정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식을 줄 모른다. 젊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농사 일에도 열심이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쉴 때도 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엄마, 나 좀 봐도’하는 내 새끼들이 있으니 고단하지 않다고. 힘들 때 눈물로 함께해준 꽃들을 이야기할 때 명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내한테는 매화나무에 핀 꽃은 딸이고 열매는 아들이라. 지금이 7학년 6반인데(76세) 앞으로 여든 살까지는 일하며 천국을 만들어야지. 꽃반지, 꽃왕관 만들어 꽃은 춤추고 나는 노래하고 이런 천국에 살고 싶어. 내는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게 너무 재미있어. 아이고 사는게 와이래 재밌노~”
홍쌍리 명인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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