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걷는 토요일,
마음이 자라는 시간

여름의 문턱에 선 7월의 어느 토요일 오전, 전주의 한 도서관에서 스무 살 대학생 전유빈 멘토와 멘티 하은(가명) 양이 반갑게 마주 앉았다.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인 전유빈 멘토의 토요일은 하은이와 함께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주인공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손을 잡고 도서관 주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걷는 동안 전유빈 멘토는 지난 한 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정하게 묻고, 하은이 역시 눈을 반짝이며 궁금했던 것들을 되묻는다.
이들이 함께하는 활동은 소박하지만 알차다. 지적장애가 있어 표현이 서툰 하은이를 위해 전유빈 멘토는 맞춤형 학습을 진행한다. 연필을 바르게 잡는 법부터 국어의 첫걸음까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발을 맞춘다.
두 사람이 토요일마다 함께하는 또 다른 활동은 건강관리다. 성장멘토링은 시작과 종료 시점에 인바디 검사를 진행해 신체활동과 식사·위생 관리 계획을 세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장애가정 아동을 위해 전열기구나 부엌 가구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도 함께 알려준다. 여기에 연 4회 아이가 원하는 영화관, 야구장, 애견카페 등을 찾는 문화체험과 멘토· 멘티가 함께 떠나는 ‘우리두리 캠프’까지 더해져 두 사람의 주말은 매번 새로운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13년 전 받은 마음,
또 하나의 인연으로 잇다
지금은 든든한 멘토로서 하은이의 곁을 지키는 전유빈 멘토지만, 사실 13년 전 그에게도 토요일마다 찾아오던 대학생 멘토가 있었다.
“저는 외동이라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는데, 그때 만난 멘토 언니가 정말 잘해줬어요. 지금도 연락하면서 지내고, 언니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모습까지 다 봤죠. 당시 가장 좋았던 건 '나에게도 편하게 마음을 나눌 언니가 생겼다'는 느낌이었어요.”
어릴 적 받았던 따뜻한 기억은 열세 해를 건너 대학생이 된 그를 다시 이 자리로 이끌었다. 자신이 받은 따뜻한 마음과 행복을 누군가에게 꼭 나눠주고 싶었다는 전유빈 멘토는 13년 전 멘티에서, 이제는 하은이의 ‘든든한 언니’이자 멘토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이처럼 특별한 만남을 갖도록 이어준 것은 우체국공익재단이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함께 전국 17개 시·도에서 운영하는 ‘2026년 장애가정 아동 성장멘토링’이다. 본인이나 부모, 형제자매가 장애를 가진 중위소득 100% 이하 가정의 7~14세 아동을 대상으로, 대학(원)생 및 일반인 멘토가 1:1로 짝을 이뤄 2월부터 12월까지 한 해를 함께하는 사업이다. 아이가 건강과 학습, 일상을 스스로 관리할 힘을 기르고, 멘토 역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에 둔다.
올해는 전국 35개 공동수행기관을 통해 멘티 300명, 멘토 300명, 보호자 300명 등 총 900명이 참여하고 있다. 멘토와 멘티의 매칭 기준은 성적이나 거리가 아니다. 아이의 꿈과 취미, 가정의 특성(한부모·다문화·조손 등)을 다각도로 살펴 가장 잘 어울리는 서로를 찾아 매칭한다.

통장에 쌓이는 미래,
마음에 피어나는 미소
성장멘토링으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지난 3월, 다 함께 모인 식사 자리에서 전유빈 멘토는 “하은이에게 건네야 할 말 한마디가 잘 안 나오더라”고 회상한다. 낯가림이 심하고 표정이 없던 하은이였지만, 매주 토요일이 쌓이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전북장애인재활지원센터 정서이 사회복지사는 “처음엔 나이 차이도 나고 공감대도 달라서 어색해하는데, 8회차쯤 지나면 멘토와 멘티 사이에 신뢰가 쌓이는 게 느껴지더라고요.”라며 “하은이는 자기표현을 어려워하는 아이였는데, 멘토 선생님이 다정하게 챙겨주니까 점점 밝게 웃더라고요. 그게 가장 인상 깊었어요.”라고 전했다. 전유빈 멘토 역시 “이젠 하은이가 먼저 ‘선생님, 저 오늘 뭐 했어요.’ 하고 이야기를 건네줘요. 그럴 때 정말 행복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성장멘토링에는 우체국만의 아주 특별한 금융 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멘티로 선정되면 아이 이름으로 우체국 통장을 개설하는데, 아이가 매달 1만 원을 저축하면 우체국이 3만 원을 더해 매달 4만 원씩 적립해 준다. 연 8회, 1년이면 아이의 이름으로 든든한 자립 자금이 쌓인다.
여기에 우체국금융개발원과 연계하여 ‘현명하게 돈을 모으고 쓰는 법’에 대한 금융교육이 더해진다. 통장의 숫자가 늘어나는 경험과 그 숫자를 다루는 법을 나란히 배우는 셈이다. 이 통장은 11월 종결식에서 아이의 손에 직접 전달된다. 1년의 활동 소감을 발표하고, 수료증을 받고, 자기 이름이 적힌 통장을 건네받는 것으로 한 해가 마무리된다.
이 사업은 장애가정 아동뿐 아니라 멘토 또한 성장하는 사업이다. 멘토들은 자기효능감과 자아존중감을 향상시킬 수 있다. 발대식에서의 서약서 작성, 전문 슈퍼비전 및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포함된 멘토 간담회, 양육 정보 공유를 위한 보호자 간담회 등 촘촘한 지원 체계는 멘토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성장까지 든든하게 받쳐준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새로운 경험을 함께하는 든든한 멘토가 생긴다는 것,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을 경험하는 폭을 넓혀간다는 점이야말로 성장멘토링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함께 걸어갈 내일을 꿈꾸며
어느덧 4개월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에게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들이 가득하다.
“하은이의 꿈이 제빵사예요. 앞으로는 빵 만들기 체험이나 박물관, 체험관 같은 곳에 자주 가보고 싶어요. 공부나 그림 그리기 같은 정적인 활동을 넘어, 밖으로 나가서 더 다채롭고 활동적인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전유빈 멘토는 하은이에게 거창한 선생님보다는, 언제든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언니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제가 어릴 때 멘토 언니에게 느꼈던 것처럼, 하은이도 ‘언제든 마음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편한 언니가 생겼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 언제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늘 뒤에서 응원하고 있는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전국 어디에나 위치하며 사람과 마음을 이어온 우체국. 13년 전 한 아이가 품었던 작은 행복이 오늘 또 다른 아이를 보듬는 든든한 그늘이 되어주듯, 아이들의 밝은 내일을 이어주는 우체국의 성장멘토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따뜻하게 이어지고 있다.
MINI INTERVIEW
정서이 사회복지사(전북장애인재활지원센터)
Q1. 사회복지사는 멘토링 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맡나요?
저는 활동 현장에 직접 나가지 않지만, 아이의 안전한 귀가를 확인하고 멘토가 제출한 활동일지를 토대로 피드백을 드립니다. 매주 쌓이는 기록을 통해 두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살피고 지원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Q2. 멘토로 참여하는 분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이에게는 사회성을 키우고 또래 관계를 넓히는 기회가 되며, 대학생이나 일반인 멘토에게도 타인과 깊게 교감하는 뜻깊은 성장의 계기가 됩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갈 청년들에게 매우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경험이 되는 만큼, 이 활동이 더 널리 알려지고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