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역사
전체글 117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조선책략’과 ‘이언’
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클레망세와 미륜사
외국인 가운데 대한제국 우편사업에 실질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프랑스인 클레망세(Clemencet; 吉孟世)였다. 1898년 프랑스 체신성에 근무하던 클레망세를 우체교사로 채용한 데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오늘날의 국제우편 업무를 담당할 관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실제로 국제우편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불어를 하는 인텔리 우체국장
두 인력거꾼은 벌써 30분 이상을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인 철도역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예 멈추지 않을 생각인 듯 계속 뛰기만 했다. 길모퉁이마다 회전을 했고, 머지않아 나는 그들이 발 가는 대로 뛰고 있음을 알았다.
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한때 항공 · 가스 · 기상 업무도'
초창기의 체신부가 전기사업을 담당했고, 해운업무까지 담당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항공업무까지 관장했으리라는 생각은 쉽사리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그뿐 아니다. 체신부는 한때 기상관측업무까지 담당했다.
1884년 우정총국에서 우편업무를, 1885년 한성전보총국에서 전신업무를, 다시 1893년 전우총국에서 우편과 전신업무를 같이 취급함으로써 통신기관 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체신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정부 부처로 발전했으며, 또 그 동안의 관장사업은 어떻게 변모했을까?
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전화를 걸면 귀신이 붙는다'
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네 번 큰절 하고 두 손으로 공손히'
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외세에 의한 수난의 역사
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배 · 차 · 우체 · 전신 등은 나라의 급무'
오랫동안 '체신'이라는, 국민의 귀에 다소 낯설게 들리는 낱말로 포장되었던 우리나라 통신사업은 우정사업과 전기통신사업을 두 큰 기둥으로 삼고 있었다. 우정사업은 다시 우편과 금융으로 나뉘고, 전기통신사업은 전신과 전화로 나뉘었다. 그렇다면 성격이 서로 다른 우편과 금융 · 전신 · 전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체신사업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우정이ㆍ온정이의 시간여행먼 걱정, 가까운 근심
요즘 필자는 외도를 하고 있다. 작품을 쓰다 말고 엉뚱하게 역사책의 감수라는 걸 하고 있다. 이름 하여 <서울체신청 100년사> <부산체신청 100년사> 그리고 <전파연구소 40년사>. 이름으로 볼 땐 꽤나 거창한 역사책의 감수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통신 관련 잡지의 편집장으로 30년 가까이 밥을 얻어먹었고, <한국우정100년사>며 <한국전기통신100년사>의 편찬 작업에 관여한 바 있으니 외도랄 수 없다. 하지만 집필 중인 작품을 매조지하지 못한 채 한 눈을 팔고 있으니 외도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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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야기우리나라 근대 우정업무의 발상지 우정총국(郵征總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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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그 때 그 시절
내년 1월 15일은 개국 100주년을 맞는 강릉우체국(국장: 김정일)은 100년사 편찬을 준비하던 중 1950년대 후반의 강릉우체국 직원들의 근무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