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규제 완화에 따라 스키보험, 운전자보험, 펫보험 등 다양
짧은 보장기간, 명확한 보장내용, 저렴한 보험료
우리가 보통 ‘미니보험’이라고 부르는 이 보험상품의 공식 명칭은 ‘소액단기보험(단종보험)’이다. 일본은 그야말로 이 미니보험의 천국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아직 낯선 게 사실이다. 그나마 국내에선 ‘여행자보험’을 떠올려 보면 이 미니보험에 대한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국내 또는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
2~7,000원 정도의 소액 보험료로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커버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미니보험으로 불리는 ‘소액단기보험’ 은 보험기간이 짧고 보장 폭이 좁은 대신 소액으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다. 미니보험은 크게 3가지 특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보험 가입 기간(보장기간)이 상대적으로 ‘매우’ 짧다. 일회성인 경우가 많고, 2~3일 혹은 길어도 1~2년 미만이 대부분이다. 둘째, 보험료가 비교적 소액이다. 월 보험료 기준으로 보면 2~3,000원이 주를 이루며, 비싼 상품도 월 9,900원으로 1만 원을 넘지 않는다. “커피값 아껴서 보험 들어볼까?”라는 말이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닌 것이다. 셋째, 이것이 실은 미니보험의 ‘존재이유’이기도 한데 위험보장 내용이 단순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앞서 ‘스키보험’처럼 명확한 기간에, 자신이 가장 걱정하는 두려움(사고)을, 상대적으로 싼 보험료로 대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니보험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당국의 규제 완화에 따라 올해 들어 꽤 많은 미니보험이 선보이고 있다. 특히 미니보험의 경우 온라인쇼핑몰 등 전자금융업자의 보험판매를 허용하면서 그간 굉장히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던 보험사들도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니보험이 싸다고 해서 가격만 보고 가입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핵심은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것. 또한 한 개로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닌 개별적 보장이니만큼 가입자 스스로 발품을 파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니보험, 보험업계 새로운 탈출구
국내에선 그동안 미니보험이 부진했다. 바로 규제 때문이었다. 보통 금융업은 당국의 규제가 가장 강한 편인데, 그중에서도 보험업은 규제의 집합체라고 할 만큼 가장 강력하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이 미니보험만큼은 계속해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 전문보험사들의 진입 장벽을 낮춰 특화 보험사가 나올 수 있도록 보험업법을 개정하겠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우선 국민 생활의 다양성이 커지면서 보험이라는 상품도 이를 함께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가령 해외여행도 많아졌고, 또 해외여행에서 다양한 레저활동을 하면서 접하는 위험도 다양하고, 여행기간 중 홀로 남은 반려동물도 챙겨야 하는 등 삶의 패턴이 바뀌었기에 보험상품도 이를 따라 가야 한다는 취지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미니보험을 통해 보험업계에선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간 미니보험은 보험사들에겐 그리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었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않아 비용부담이 막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니보험 시장이 장기적으로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가령 요즘 젊은 세대들은 보험을 떠나고 있다. 실제 취업난, 경제난으로 여유가 부족한 청년층에서 보험 지출을 줄이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6년 30대의 보험 전체 가입건수는 총 1,416만 건으로 전년도 대비 47만 건이 줄었고, 감소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칫 청년층이 ‘보험’ 고객에서 대거 이탈하는 일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커피값 정도로 가입 가능한 미니 보험이 청년층을 공략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 미니보험은 온라인으로 직접 가입하는 형태인데 이 또한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 맞아떨어진다.
운전자 보험에서부터 펫보험까지
그렇다면 현재 만날 수 있는 미니보험 유형을 살펴보자. 우선 운전자보험이 다양해졌다. 가령 A손해보험은 ‘월 1,500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1년 만기 운전자보험을 내놓았다. 이렇게 월 1천 원대까지 보험료가 내려갈 수 있는 건 ‘짧은 만기’ 때문이다. 그간 운전자보험은 가입기간이 5년 이상이었지만 만기를 1년으로 줄이고 보장도 자동차 사고 선임비용과 교통사고 처리지원금 등으로 최소화했다. 국민 대부분이 실비보험에 가입하고 있어 굳이 운전자보험에까지 병원비 보장을 중복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는 분석이다. B생명다이렉트는 월 9,900원의 치아보험을 출시했다. 보험료가 너무 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상품은 대신 20~30대만 가입 가능하다. 따라서 보장내용에 2030연령대에 발생 가능성이 낮은 임플란트 같은 보철치료가 빠진다. 대신 해당 연령대 치료 비율이 높은 충전치료, 크라운치료를 개수 제한 없이 보장한다.
올해 초 C해상은 2,300원짜리 모바일 스키보험을 출시했다. 금요일에 가입하면 일요일까지 보장을 받는다. 스키를 타다 다치면 최고 5천만 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 보험료 2,300원에 최고 5천만 원 보장?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생각할 수 있지만 포인트는 역시 ‘만기’에 있다. 보장 기간이 3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D보험사는 딱 입원비와 수술비만집중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았고, E보험사의 경우 모든 암 중에서도 오직 유방암만 집중 보장하면서 보험료를 크게 낮춘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 상품은 최저 보험료가 자판기 커피보다도 저렴한 ‘월 180원’으로 유방암만 커버하는데 가입 기간 5년 동안 유방암 확진 시 500만 원을 보장한다.
연말 또는 내년 상반기쯤엔 국내에서도 다양한 ‘펫보험’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도 펫보험 상품이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매우 떨어졌던 게 사실. 그런데 최근 보험개발원이 직접 ‘참조 요율표’를 제시해 펫보험 대중화를 앞당겼다. 현재 만 6세 이하로 제한된 반려동물 가입연령도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략 월 2만 원대 보험료에 동물병원에서 150만 원이 드는 수술 또는 하루 15만 원 정도 드는 치료를 연간 20일 한도로 받는 보장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결국 ‘미끼보험’이 될 거라고?
하지만 일각에선 미니보험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사실 금융당국의 미니보험에 대한 규제완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에도 단종보험대리점 제도를 도입해 미니보험 활성화를 유도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잘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이 미니보험이 수익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니보험의 경우 저렴한 보험료에 대비 상대적으로 위험이 크다. 아주 불티나게 많이 팔린다면 몰라도 마진이 결코 높지 않다. 즉, 소비자(가입자) 입장에서는 보험료가 적고, 보장내역도 상당해 유리하지만 보험사들 입장에선 썩 내키지 않는 분야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험사들은 상품 출시 등에 있어 소극적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일본’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일본은 미니보험의 천국으로 불린다. 100여 개의 미니보험 상품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데 펫보험·암보험뿐만 아니라 결혼식의 불상사를 대비하는 결혼식보험, 휴가 날씨에 따른 피해를 만회하려는 날씨보험 등 독창적인 미니보험도 많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렇게 미니보험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을까.
첫째, 미니보험만 담당하는 소액·단기 보험사를 등록제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허가제로 운영되는 일반보험사와 달리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 이 틈을 타신규 소형 보험사들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최저 자본금도 우리나라의 1/100수준인 1천만 엔만 있으면 된다. 둘째, 우리 금융당국도 가장 먼저 규제를 풀었던 것으로 온라인 가입을 통한 ‘가입절차 간소화’이다. 설계사를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즉시 가입하면 사무실 임대료 및 관리비, 설계사 수당 등을 제외할 수 있어 보험사의 숨통이 트인다. 셋째, 생활 속 작은 위험이라도 미리 대비하려는 일본의 국민성도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가령 ‘날씨보험’을 예를 들어보자. 날씨보험은 스포츠 경기나 박람회, 야유회 등을 계획했는데 날씨 때문에 행사가 취소됐을 경우 피해를 보상하는 방식부터 기업의 경제적 손실을 보장하는 재정손실보험, 기상이변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보상하는 농작물보험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 날씨보험은 이미 국내에서도 출시했던 상품이다. 처음엔 아주 적극적이었지만 이후 반응이 시큰둥해졌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 날씨보험이 미니보험 형태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한 일본의 날씨보험상품을 보면, 우천으로 여행이 곤란해질 경우 비가 내린 시간에 따라 보상받는 형식인데 보험료는 500엔, 한화로 5천 원 수준이다. 3시간 동안 비가 오면 2,500엔, 6시간이면 5천 엔, 10시간이면 1만 엔을 지급받는다. 일본에선 날씨보험 시장규모만 해도 한화로 약 1조 원대에 달한다. 따라서 이제 막 국내에서도 본격화하려는 미니보험이 단순 ‘미끼보험’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런 일본의 성공요인을 참조해야 한다. 국민(가입자)들도 가성비를 따져 미니보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도 필요한데, 국내 보험사들의 미니보험에 대한 적극적 접근도 매우 중요한 성공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여행자보험과 레저보험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된 미니보험 시장은 역시 ‘여행자보험’이다. 작년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주요 3개 손해보험사의 여행자보험 실적을 보면 신규 가입은 총 144만 건, 수입보험료는 600억 원에 달한다. 2년 전과 비교해 건수는 30%, 금액으로는 26% 성장했다. 올해 국내에는 8개 보험사가 여행자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데 국내여행 보험의 경우 보험료가 1회 2천 원(1988년생, 30세 기준) 정도인 상품도 나왔다. 보험료가 이토록 저렴한데도 상해사망·후유장해 시 1억 원을 보장한다. 반면 해외여행 보험으로 가면 4천 원 정도로 보험료는 비싸진다. 다만 여행자보험에 가입했어도 여행 중 암·빙벽등반, 글라이더 조종, 스카이· 스쿠버다이빙, 행글라이딩, 수상보트,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전문적인 활동’까지 커버할 순 없어 별도의 보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 ‘(미니) 레저보험’도 성장하고 있는데 K보험사의 경우 ‘등산보험’을 통해 일 보험료 730원으로 하루 등산을 보장해준다. 등산보험은 어쩌면 경제성보다 심적 안정감이 더 큰 효과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