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증도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선정된 곳이다. 증도에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새로 지은 멋진 펜션보다는 면소재지에 있는 털털한 민박에 하룻밤 묵으며, 자식 수발에 농사지으며 평생을 보냈다는 주인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도 건네야 제 멋이다.
증도의 갯벌염전은 우리나라 최대규모다. 태평염전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섬의 향기 간직한 우체국들
증도 우체국은 섬사람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면 소재지에 위치해 있다. 새벽이면 닭이 울고, 밤 골목에 개가 짖는 수더분한 동네로, 간이슈퍼와 백반식당을 찾아 증도의 골목길을 서성거리는 게 의미 깊은 일과다.
신안의 우체국들은 섬의 윤곽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암태 우체국은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에워싼 암태도에 자리해 있고, 암태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새 여덟마리가 모여 있는 모양새의 팔금도가 있다.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하고 작은 섬마을에 팔금 우체국이 있다. 안좌 우체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고향인 안좌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자은도 우체국은 ‘자애롭고 은혜롭다’는 의미를 지닌 자은도의 골목 한편을 채운다. 자은도는 여름이면 분계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최근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완공되며 신안의 섬들은 보물 같은 풍광을 하나둘 뭍사람들에게 풀어놓고 있다. 증도 역시 길이 뚫린 뒤 우전해변 쪽이 번잡해졌지만, 세월과 탈 것의 빠름이 섬의 인심조차 앗아가지는 않았다. 면 소재지에서 태평염전, 짱뚱어 다리, 한반도 해송 숲까지는 제법 멋진 길들이 기다리고 있다.
비치파라솔이 늘어선 이국적 풍경의 우전해수욕장
갯벌염전의 역사를 간직한 소금박물관
호젓한 해변과 일몰이 아름다운 짱뚱어해수욕장
해변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한반도 해송숲
근대문화유산인 태평염전
이른 새벽이면 태평염전 길을 걷는다. 고요한 새벽이면 느리게 숨 쉬는 이 길이 좋다. 해무가 걷힐 무렵 염전 길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갯벌 염전 위에는 소금 창고들이 가지런하게 도열해 있다. 그 길이가 3km에 달한다. 이곳 갯벌 염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전체 크기가 약 460만㎡로 여의도 면적의 2배다. 태평염전 전체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길을 지나치다 보면 허투르게 스쳐 지났던 염전의 숨은 진면목이 드러난다. 세월에 빛이 바랜 나무창고와 소금을 싣고 오가던 나무수레들이 낯설게 다가선다. 나무창고 가득 쌓여있는 천일염은 한때 천시받았던 염부들의 땀방울로 얻어낸 귀한 결과물들이다. 증도가 세계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도 갯벌 염전이 중요한 이유가 됐다.
태평염전 길 끝자락에는 소금 박물관과 염전체험장이 기다리고 있다. 소금 박물관은 초창기 창고였던 곳을 박물관으로 재단장한 곳이다. 소금밭 전망대에 오르면 염전과 염생 식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둑판처럼 연결된 소금밭에 세모 지붕의 창고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 바다가 이어진 아득한 풍경이 연출된다. 전망대 아래로는 소금 가게, 소금 레스토랑, 소금 동굴 등 소금을 테마로 한 공간들이 조성돼 있다. 커피와 아이스크림에도 ‘소금’ 수식어가 붙어 있어 미각을 자극한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 무대가 된 화도
갯벌위 노둣길 열리는 화도
소금 박물관 앞에는 외지인들을 위한 자전거 대여소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섬과 갯벌 사이를 지나는 풋풋한 목적지인 화도로 가는 길이 흥미롭다. 화도는 물이 빠지면 섬을 잇는 1.2km 노둣길이 열리는곳이다. 노둣길 좌우로는 증도의 갯벌이 가깝게 드러난다.
증도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갯벌도립공원은 이곳 화도까지 광활하게 연결된다. 물이 빠지면 짱뚱어, 농게, 칠게 등의 향연이 펼쳐진다. 화도는 장혁과 공효진이 주연했던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 무대가 되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촬영지였던 집 뒷편으로는 인적이 드문 증도의 진짜 바다가 펼쳐진다.
늦은 오후에는 짱뚱어 다리를 건너 우전해변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4km가 넘는 우전해변은 짱뚱어해수욕장과 갯벌센터가 있는 우전해수욕장으로 나뉜다. 모래해변은 짱뚱어해수욕장쪽이 한결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우전 해변과 나란히 들어선 해송숲길은 10만여 그루의 소나무가 동행이 된다. 해송숲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 모양을 닮아 ‘한반도 해송숲’으로 불린다.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됐던 솔숲은 이제는 이방인들의 안식처가 됐다. 숲길에서 일몰의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은 증도 나들이의 방점을 찍는다.
TIP ‘집배원이 전해 드리는 여행’ 둘러볼 곳
반월도
반월도는 섬 속의 섬이다. 본섬인 안좌도와 나무다리로 연결된 섬은 걷기 좋은 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반월도는 신안의 1,004개의 섬 중 아름다운 숲을 간직한 섬이다. 반월 당숲은 1982년에 보호림으로 지정되었으며, 제14회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했다. 전라남도에서 선정한 ‘가고 싶은 섬’에도 뽑힌 반월도는 썰물때면 갯벌로 둘러싸인 아늑한 정경을 만들어낸다.
짱뚱어 다리
짱뚱어 다리는 증도의 대표 명물로 갯벌 위에 떠 있는 470m 길이의 나무다리다. 다리는 갯벌 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으며 다리 아래로는 짱뚱어, 칠게, 농게 등이 살고 있다. 다리의 교각은 짱뚱어가 뛰어가는 모습으로 형상화 돼 있다. 물이 빠지면 다양한 갯벌 생물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으며, 목교에서 바라본 증도의 일몰이 아름답다.
신안 해저유물 발굴기념비
증도 방축리는 중국 해저유물이 발굴된 곳이다. 1975년 방축리 도덕도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중국 청자가 최초로 발견된 뒤 백자, 동전, 생활용품 등 약 28,000여 점의 해저유물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쏟아져 나왔다. 이 발굴로 고대 무역선의 실체를 알게 됐으며, 이를 기려 발굴기념비를 세웠고 발굴해역은 국가사적 274호로 지정돼 있다.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전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