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송선아(구리시 인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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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퇴근하는데 동료가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뭐냐고 묻자, 봄나물이란다. 고향에 갔다 냉이를 캤다는 것이다. 하우스 재배가 아닌 겨울을 견뎌낸 냉이라 향이 진하고 단맛도 강하단다. 내가 미안해하자 많이 캐왔다며 가져가라 했다.
집에 와서 냉이를 펼치자마자 집안이 봄 향기로 가득 찼다. 냉이는 다듬기가 힘든데 손질까지 된 상태였다. 냉이 된장국과 냉이 무침을 하려고 살짝 데쳤더니 금세 파랗게 변하면서 향기가 더 진해졌다. 냉이는 맛도 좋지만, 영양이 풍부하다. 무엇보다 봄을 대표하는 귀한 식재료다. 덕분에 봄을 담은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었다.
태생이 시골인 내게도 봄은 늘 반가운 계절이었다. 그만큼 겨울이 길고 추웠던 까닭이다. 봄이 되면 밖에 나가 놀 수 있어서 좋았다. 시골아이들에게 논다는 건, 자연과 함께한다는 의미였다. 들판에 널린 게 봄나물이었고, 나물 캐는 일은 주로 아이들의 몫이었다.
봄나물 중 제일 먼저 얼굴을 내미는 게 냉이고 그다음이 달래였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쑥이 쑥쑥 올라오고, 취나물도 향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우리 또래의 조무래기들은 옆구리에 바구니를 하나씩 끼고 콧노래를 부르며 들로 나갔다.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계절임에도 햇살은 포근했다. 봄꽃이 곧 필 거라는 징조였다. 냉이와 달래는 뿌리째 뽑아야 했다. 냉이는 쉽게 뿌리가 뽑혔지만, 달래는 기술이 필요했다. 긴 달래를 뿌리까지 뽑기 위해 빙빙 돌려가며 흙을 파내던 기억이 새롭다.나물 중에서는 쑥을 캐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그때는 쑥이 많아 한자리에서도 바구니를 채울 수 있었다. 나물을 캐다 힘들면 양지바른 곳에 모여앉아 고구마를 까먹기도 했다. 나른한 봄볕에 눈이 감기던 그때, 우리는 봄의 향기를 먹고 자랐던 것 같다. 향기로운 봄을 맞게 해준 동료가 고마웠다. 나도 조만간 쑥떡이라도 해서 여러 사람과 함께 봄을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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