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 우리 가족의 휴가 여행지는 ‘시댁’과 ‘친정’이다.
신혼 때는 남들처럼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 든 두 홀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뵐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휴가철을 기다린다.
남편과 나는 형제 많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 덕에 이제 5살인 우리 딸아이는
할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팔순이 넘으신 친정엄마와 구순을 바라보는
시어머님에게 딸아이가 재롱을 피우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는 것 같다” 하시며
막내 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그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 누구보다 강하고 억척스러운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어 한 해 한 해 힘들어 하시는 게 눈에 보인다.
두 분의 어머님은 우리가 모시고 살고 싶다고 해도 혹시나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
극구 손사래를 치신다. “나는 답답한 아파트가 싫구먼. 여기는 대문만 나가면
천지가 놀이터이고, 동네 노인들이 다 친구구먼” 하시는 통에, 더 이상 말을 할 수도 없다.
그 탓에 이른 아침 어머님들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덜컥 겁부터 나곤 한다.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닌지, 힘이 없어 식사를 못하시는 건 아닌지 모든 게 걱정이다.
두 분이 지금처럼만 건강히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한다.
어머님들께 효도하는 딸, 며느리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다. 그래도 두 분이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한 번 더 전화 드리면서 행복만 드리고 싶다.
다행히 남편과 내가 초등학교 동창인 덕에 시댁과 친정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니,
두 어머님을 모시고 외식도 종종 할 수 있다. 게다가 두 분이 노후에 그 어렵다는
사돈이 아닌 서로 친구처럼 지내시는 걸 보니 행복할 따름이다.
딸을 키워보고 나서야 자식에게는 모든 걸 주고 싶은
부모 마음을 헤아리며, 양가 어머님도 평생 같은 심정이셨음을 깨닫는다.
오늘도 두 분이 나의 어머님들이라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