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장희지(대구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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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불혹을 넘겼다. 1980년대에는 최신식 아파트였지만 이제는 키가 작고 낡아빠진 5층짜리 아파트에 불과하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에 우리 집은 집주인의 요청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엄마가 지금의 집을 골랐지만, 전세금을 돌려받아도 집을 살 수 없어서 대출이 필요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엄마는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우리 집은 스무 살을 넘긴 청년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옆 동네로 이사를 왔을 뿐인데 나는 뭔가 모르게 이 집과 동네가 좋았다. 아파트의 조그마한 마당에 겨울 즈음이면 동백꽃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봄이면 철쭉이 피어나고 아파트 안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동네의 어느 아파트에서 재개발을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높이로 지어진 아파트였는데 재개발 공사를 거쳐 600세대가 넘는 대단지로 변했다.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나니 내가 살던 아파트는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봤다. 낡은 아파트지만 그동안 살아왔던 정이 묻어 있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서글플 일이다. 아파트의 운명이 언제까지 갈지는 예측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사는 집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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